[미디어펜=석명 기자] 1960~70년대 한국영화의 대표적인 흥행 감독이었던 김기덕 감독이 별세했다. 신성일 엄앵란 주연으로 청춘영화의 고전이 된 '맨발의 청춘'(1964)과 SF영화의 원조격인 '대괴수 용가리'(1967) 등을 연출한 바로 그 감독이다. 

   
▲ 고 김기덕 감독. /사진=연합뉴스


폐암 진단을 받고 투병해온 김기덕 감독은 7일 오후 숨을 거두었다. 향년 83세.(국제영화제를 통해 인정받고 있는 '피에타' '나쁜남자'의 김기덕 감독은 동명이인)

1950년대 후반 편집 일을 하며 영화계에 발을 디딘 고 김기덕 감독은 1961년 '5인의 해병'으로 감독 데뷔했다. 이후 마지막 연출작이 된 영광의 9회말'(1977년)까지 66편의 영화를 연출한 원로 감독이었다.

영화 팬들에게 아직도 회자되는 '맨발의 청춘'이 고인의 대표적인 흥행작이다. 배우 신성일과 엄앵란을 단번에 스타로 탄생시킨 이 영화는 개봉 당시 기록적이었던 23만여 관객을 모았다. 이후 신성일 엄앵란은 연인이 돼 결혼까지 골인하며 스타 커플의 인연을 맺어준 작품으로 더욱 화제가 되기도 했다.

   
▲ 고 김기덕 감독이 연출한 '맨발의 청춘' 주연배우였던 신성일과 엄앵란은 연인이 돼 결혼을 했다. /사진='맨발의 청춘' 스틸컷


고 김기덕 감독은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서 메가폰을 잡았다. '맨발의 청춘' 외에 '떠날 때는 말없이' '불타는 청춘' 같은 멜로물 뿐만 아니라 '남과 북' '용사는 살아있다' '124 군부대' 등의 전쟁영화, '친정어머니'같은 가족 영화는 물론 괴수영화 '대괴수 용가리'까지 필모그래피에 포함돼 있다.

영화 연출을 그만둔 이후에는 서울예술대학 학장, 동랑예술센터 총감독,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 등을 지내며 영화계의 어른으로 활동했다. 1962년 제1회 대종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했고, 2003년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영화계 인사들의 애도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고인의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됐다. 발인은 9일 오전 1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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