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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우석 언론인 |
근래 뉴스 중 가장 개운치 않은 게 여성 소설가 한강(47)의 뉴욕타임스 칼럼이다. '미국이 전쟁을 얘기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는 제목인데, 국가위기 국면에서 지식인이 얼마나 무책임할 수 있나를 보여주는 증거에 다름 아니다. 개인의 차원을 떠나 문단과 문화계 전체의 좌편향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보여주는 고약한 장면이기도 한다.
듣자니 그의 칼럼을 청와대가 공식 페이스북에 개재했다는데, 그래서 더욱 머리 지끈거린다. 소설 '채식주의자'로 영국의 맨부커문학상을 받은 이후 이러저런 매체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그의 이번 칼럼은 우선 동맹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못했다.
'미국이 전쟁을 얘기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는 제목부터 말이나 되는 소리일까? 마치 트럼프 때문에 한반도 전쟁 위기가 조성됐다는 잘못된 인상부터 심어준다. "우리(한국인)는 평화가 아닌 어떤 해결책도 의미 없으며, 승리라는 것은 비웃음거리이자, 텅 빈 슬로건임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대목도 문제다.
그럼 건국 이후 우리의 목표인 자유민주주의 원칙에 따른 통일과 북한 해방이란 과제가 그저 비웃음거리이자, 텅 빈 슬로건이란 뜻인가? 아니면 북핵을 머리 위에 올려놓은 가짜 평화 속에 남북이 공존하자는 얘기일까? 미국인이 얼마나 어이없어 할 것이며, 우릴 괘씸하게 볼까?
한강 "6.25는 강대국의 대리전"
"그런 말 들으려고 6.25전쟁 때 우리 젊은이를 파병해 사상자 5만 명을 발생시켰나?" 속으로 그러지 않을까? 한국인의 천하태평 강 건너 불구경 심리는 정말 중증 질환이다. 북핵 앞에 분노와 저항은커녕 거꾸로 평화타령을 반복하는 게 한강의 글 내용인데, 아니나 다를까 그의 현대사 인식부터 병들었다. "한국전쟁은 강대국들이 한반도에서 자행한 대리전이었다"는 대목이야말로 우리 눈을 의심케 한다.
6.25는 김일성이 모택동·스탈린과 사전 모의 끝에 일으킨 침략전쟁이었다는 것이 현대사의 진실인데, 대리전 운운하는 것은 숫제 망발에 속한다. 한강이 대한민국 정통사관과 사뭇 다른 이른바 수정주의적 현대사 인식에 물들었다는 증거다. 수정주의 사관은 1980년대 이후 대세인양 등장했고, 386세대가 지적 자양분으로 삼았다.
하지만 학문 패러다임으로 현대사 수정주의 물결이 한물간 지 오래이며 한국사회만 유독 초강세라는 사실을 시야 짧은 그가 알 리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단정하는 건 그가 속해있는 문단이란 게 대체 어떤 동네인가를 필자인 내가 좀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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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한강이 7일(현지시간)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에 '미국이 전쟁을 언급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는 제목의 글을 게재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한국문단은 "모국어를 볼모로 잡은 채 무책임한 좌편향을 능사로 하는 동네"인데, 그건 내 판단만이 아니다. 소설가 이문열도 "대한민국 문인은 열의 아홉, 아니면 열에 열 모두가 좌파"라고 지적하지 않았던가? 이문열은 3년 전 삼성 사장단회의 강연에서 "우리가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를 보위하는 진지는 그동안 대부분 함락됐다"고 지적한 바 있다.
문단에서 자신의 보수적 성향을 드러내는 일은 큰 각오 없이는 힘든 게 현실이다. 당시 그는 그람시의 '진지론'을 거론해 화제를 낳았다. 좌파가 잡고 있는 진지를 탈환해 와야 한다는 문제제기였다. "시장경제의 수혜자인 삼성과 같은 대기업은 국가를 구성하는 기본구조이면서 동시에 진지 역할도 해야 한다." 오죽했으면 그런 말을 이문열이 했겠는가?
어쨌거나 그 결과 좌파정서가 어찌 손을 써볼 여지가 없을 정도로 보편화되고, 구조화됐다. 문학만이 아니고 영화-연극-미술 등도 사정은 비슷하다. 문화의 옷을 걸친 채 반(反)대한민국 정서를 불어넣고, 문화예술을 사실상의 혁명투쟁의 장소로 삼아왔던 영역이 문화계이며 대표적인 게 영화 장르라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이러고도 나라가 온전하길 바라나
최근 몇 개월의 경과는 더욱 끔찍하다. 전 정부에서 일부 그런 비정상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블랙리스트니 뭐니 하면서 적폐 청산으로 몰아 때리고 있는 게 문재인 정부의 현주소다. 한 나라가 몰락하려면 긴 시일을 요하지 않으며, 삽시간에 주류사회가 멍들고 망가질 수 있다는 걸 요즘 우리는 절감하고 있다.
한강은 그걸 보여준 생생한 사례라서 더욱 우울한데, 그를 제대로 혼내주는 글도 가뭄에 콩 난다. 그러다가 조선일보 만물상 코너에서 한강 비판 글(10일자 '한강의 뉴욕타임스 기고')을 봤는데, 마지막 문장에서 적지 아니 놀랐다. 조선일보 글은 "그의 글이 트럼프도 싫지만, 김정은은 더 아니라고 했으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라고 마무리되어 있었다.
이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린가? 트럼프와 김정은, 둘이서 대한민국 안보위기에에 공동의 책임을 물어야 옳다는 논리인가? 이쯤 되면 헛똑똑이 한강이나, 그를 꾸짖는 조선일보나 오십보백보다. 서둘러 글을 마무리하려다 보니 나온 실수라고만 볼 수 없다.
한국은 희한한 나라다. 적이 핵무장을 했는데도 그에 대응하는 핵무장을 하는 걸 집권여당과 지식인들이 아직도 금기로 알며, 우리의 생명줄인 동맹 미국에 대한 능멸을 능사로 하는 고약한 나라다. 실은 지난 30년, 그런 짓을 해왔다. 그러고도 나라가 온전하길 바란다면, 그게 외려 이상한 일이 아닐까? /조우석 언론인
[조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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