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10)-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의 <여성종속론>
양성평등,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두 바퀴
남성우위 관습의 타파를 주장한 최초의 자유주의적 페미니즘
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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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귀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
요즘 우리나라의 정치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 가운데 여성들이 많다. 사회 각 분야에서도 여성들의 진출이 두드러지면서, 금녀의 영역은 거의 사라진 듯하다. 하지만 세상의 절반인 여성, 현생인류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를 번성시킨 모태인 여성이 지금처럼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받은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여성에 대한 세상의 고루한 인식을 단적으로 대변하는 예가 여성참정권 허용의 문제이다. 세계 최초로 여성에게 보통선거의 투표권이 주어진 나라는 뉴질랜드로 1893년의 일이었다. 선진국인 미국(1920)과 영국(1926)도 한참 뒤쳐졌다. 심지어 프랑스는 1946년까지 기다려야했다. 지금처럼 여성의 정치적 참여 기반이 신생독립국가를 포함한 전 세계에 보편적으로 확산된 지는 반세기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이 1869년 <여성의 종속(The Subjection of Women)>에서 여성참정권을 주장한 것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수천 년을 지배해 온 남성 중심적 이데올로기를 전면적으로 비판한 그의 이 저서가 페미니스트(feminist)에게 최초, 최고의 고전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 책에는 동양의 지식인들이 결코 꿈꾸지 못했던 남녀평등의 세계를 희구한 존 스튜어트 밀의 뜨거운 열정과 냉철한 비판이 담겨있다. 그는 완고한 남성들의 삐뚤어진 여성관을 깨기 위해 단순히 감성적 호소에 기대지 않고, 역사적 사례와 철학적 논리로 여성해방을 주장했다.
당시 여성이 종속된 사회현상을 밀은 인간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중대한 장애물로 파악하고, 완전평등의 원리로 대체되어 마땅하다고 역설한다. 그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열등하다는 전제아래 행해지는 모든 사회적 악폐가 근본적으로 남성들의 '힘의 법칙(law of force)'이 부당하게 인간사에까지 확장된 때문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사회의 일반적 문제들은 ‘힘의 법칙’이 아니라 ‘도덕법칙’(moral law)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예제나 절대군주제, 군인 독재의 경우에도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이 존재했었다. 반면 여성의 경우 남성이 지배하는 것이 자연에 부합된다는 근거 없는 논리가 보편적인 관습으로 굳어져왔다. 이로 인해 여성들이 집단적으로 남성들의 폭압에 대항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여성참정권이 여성의 ‘자기 보호의 수단’으로서 절실하다고 강조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남성지배관이 보편적 관습이 된 주요인으로 사회화의 영향을 꼽는다. 여성의 성장과정에서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에게 기대하는 여성상을 끊임없이 주입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남성들의 관점에서 주어진 ‘여성의 본성’은 실제 여성의 모습과 유리된 인위적인 것이다. 사회적 관습과 다수의 생각을 철칙처럼 따르도록 교육받고 자란 여성이 세상의 편견에 맞서 남성들의 생각에 도전하고 이를 타파해 나가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특히 남성들은 여성이 자유의지나 자율적인 삶이 아니라 남성에 복종하고 헌신하는 삶이 여성의 이상적 모습인양 가르치고 유포해 왔다는 것이다. 이는 남성들이 여성의 마음까지 지배하고 싶은 ‘고약한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밀의 일갈은 당시 남성들을 뜨끔하게 했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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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스튜어트 밀과 아내 해리엇 테일러 밀
출처: wikimedia commons |
존 스튜어트 밀은 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한 방식에서는 또 다른 진보적 시각을 드러낸다. 사회적 역할에서 남녀 간의 특혜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어떤 일에 대해 여성이 천성적으로 남성에 비해 특별한 강점을 갖고 있다면, 굳이 법과 사회적인 교육을 통해 여성에게 유리한 방향을 유도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무엇이든지 여성이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일이라면 자유 경쟁에 맡기는 것이 여성에게 가장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 대목에서는 자유주의적 시각의 냉철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가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선천적 또는 후천적 이유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열등할 수밖에 없는 분야에서 여성에게 특별한 우대를 통해 사회적 평등을 도모할 필요도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이런 차원에서 여성의 권익신장을 위해 현대의 많은 국가들이 도입하고 있는 ‘적극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의 당위성에 그도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여성고용할당제, 여성공천이나 비례대표 선발에서 여성을 우대하는 방안들이 이에 속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19세기 후반에 여성의 두드러진 불평등한 양태를 결혼과 가정생활에서 먼저 포착한다. 영국 관습법상 아내의 지위는 다른 나라의 노예들보다 못하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로마의 노예도 법적으로 개인 재산을 가질 수 있었지만, 영국 여성의 경우 상속받은 재산의 처분권조차 갖지 못한 점을 지적했다. 또한 노예도 주인의 성적인 요구를 거부할 수 있었지만, 아내의 경우 본인의 기분과 상관없이 남편의 동물적 욕구 충족을 위한 강요를 거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여성이 최악의 노예 상태나 다름없다고 개탄했다.
아울러 그는 남성이나 여성이나 결혼 전에 취득한 재산은 결혼 후에도 모두 원소유자의 배타적 소유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는 완전한 동일체 의식을 느끼고 서로 모든 것을 공유한다는 조건이 충족된다면 재산 공동 소유에 찬성한다. 하지만, 남성이 여성의 재산을 자신의 것으로 전환하고 재산 처분권을 장악하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공동 소유에는 분명하게 반대한다.
존 스튜어트 밀이 소망하는 가정에서의 남편과 아내의 바람직한 모습은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권한을 누리고, 사소한 것이라도 체제나 원리에 변화를 주어야 할 때에는 상대방의 동의를 얻어야”하는 관계다. 이럴 경우에만 진정한 인생의 동반자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과 남성이 평등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존 스튜어트 밀은 남녀평등이 인간의 도덕 감정에 부합된다고 본다. 명령과 복종의 관계는 인간의 삶에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일 뿐, 평등한 사회가 인간 본성에 더 부합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여성들을 직업이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에서 배제시켜온 사회적 관습은 정의에 어긋나며,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또 하나의 동력을 잃게 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여성문필가와 정치가 등 여성들이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 역사적 예를 들면서, 남성의 우월성에 대한 믿음이 허구적임을 밝힌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창의성이 부족하고, 철학 등에서 뛰어난 업적을 보여주지 못했던 점을 남성 우월성의 근거로 드는 것도 공정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어떤 분야에 천착할 수 있는 가정적, 사회적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성의 경우 잡다한 일상적 가사의 책무가 멍에로 작용해서 여가 시간이나 정력, 사변철학과 창조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결국 여성과 남성의 성취의 차이는 생물학적 차이에 기인한다기보다, 사회적 환경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통찰한 것이다. 즉 기회의 평등이 전제된다면 여성이 남성에 비해 결코 열등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이런 통찰은 현대 사회에서 각종 남녀평등의 제도적 기반 아래 여성들이 여러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많은 사례를 보아도 더욱 적확해진다. 그는 오히려 여성이 남성이 비해 도덕적으로 우월하며, 직관적 지각 능력에서 뛰어나다는 점을 강조한다. 남성의 생각이 여성에게 넓이와 크기를 보태주듯, 여성의 생각도 남성에게 현실감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상호 보완적 관계가 사회적으로 유용한 결과를 낳는다는 점을 역설한다.
여성과 남성이 평등해지면 어떤 실익이 있을까? 공리주의자답게 존 스튜어트 밀은 여성해방이 만들어 낼 사회적 유익을 강조함으로써 남녀평등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있다. 첫째, 남녀의 인간관계에서 평등한 정의의 원리가 어릴 적부터 가정과 사회에서 교육되고 규율될 때 얻는 실익은 크다. 이런 남녀평등의 도덕규범이 뿌리내리면 누군가를 편들기 위해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 자제될 수 있고, 어른이 되어서도 정의의 법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여성에게 자신이 지닌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주고 남성과 똑같이 일할 수 있게 한다면, 인간사회를 보다 높은 단계를 발전시키는데 필요한 정신 능력이 두 배로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존 스튜어트 밀이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누리지 못하고 예속적 삶을 살고 있는 19세기 여성의 해방이 단지 사회적 유용성을 가져온다는 것만을 강조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남녀평등의 가장 큰 수혜는 굴종에서 해방된 ‘인류의 반이 누리게 될 사적 행복’에 있음을 상기시킨다.
특히 여성 해방의 당위성의 핵심에 자신의 삶을 자기 스스로 규율할 수 있는 자유가 자리 잡고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자유정부’(free government)는 모든 사람의 능력을 키우고 자기희생적인 공공 정신과 사회적 의무를 고양시켜 각 개인으로 하여금 전반적으로 도덕적이고 정신적이며 사회적인 존재로 만들어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런 토대가 진정한 남녀평등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할 것임은 물론이다.
존 스튜어트 밀의 <여성의 종속>의 인식 토대는 아내를 넘어 학문적 동반자였던, 그가 평생 사랑하고 존경하던 해리엇 테일러(Harriet Taylor)와의 실천적 삶에 소재하고 있다. 밀의 선구적 주장들은 참정권, 상속권과 소유권, 결혼과 이혼 등에 대한 19세기 자유주의적 페미니즘(feminism)의 선구적 화두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의미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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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엇 테일러 밀(1807–1858), 출처: wikimedia commons, 작가 미상, 런던 국립 초상화갤러리 소장 |
지금 우리 사회는 남녀평등의 수준은 어떠할까? 140여 년 전 존 스튜어트 밀이 번민하던 담론들은 모두 해결되었을까? 그동안 세계 여러 나라가 발전시켜 온 남녀평등의 법적, 제도적 수준은 우리 사회에서도 대부분 적용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의 인식 속에 똬리를 틀고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 여성의 능력 발휘를 가로 막는 과거와 또 다른 양태의 현실 속의 숱한 장애물들은 여성의 권익 향상을 위한 여권운동의 미완의 과제로 여전히 남아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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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 : 《여성의 종속》,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서병훈 옮김, 책세상(2009), 225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