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들, 감시대상과 '안락한 동거계약' 단꿈 빠져, 책임의식 실종

   
▲ 황근 선문대교수
진도 앞바다 세월호 침몰 참사의 여파가 우리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마치 병든 나무의 겉에 드러난 썩은 줄기 하나를 자르다 보니,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진 땅밑 뿌리까지 모두 썩어 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급기야 이번 사건을 책임지고 수사했던 해양경찰청 담당국장도 구조작업을 벌였던 구조회사도 사건 당사자인 ‘청해진’이나 ‘세모’와 관련되어 있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마치 ‘도둑들’에서 홍콩 마파아 두목이 했던 ‘분명 상부에서 나 잡지말라 했을텐데?... 그런데... 한국에도 그런 놈이 있거든’ 대사가 퍼뜩 생각난다.
 

사건 초기에 승객들을 모두 버리고 먼저 도망친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에 맞추어졌던 비난의 화살이 정부의 허술한 초기 대응과 구조작업으로 옮겨갔다. 그러더니 ‘세월호’ 소유주인 ‘청해진’의 불법·탈법 행위가 문제되더니, 최근에는 이를 묵인해준 해양수산부 공무원들과의 견고한 유착관계가 드러나고 있다. 즉, ‘해피아’ 혹은 ‘해수피아’라고 하는 관료와 선박회사간의 고질적 공생관계가 문제되고 있다. 물론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정치권까지 유착의혹이 확대되고 있다.
 

또한 이제 언론보도는 ‘청해진’의 모기업인 세모그룹과 유병언 전 회장의 비리로 비화되고 있다. 여기에 1987년 있었던 ‘오대양 사건’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기독교구원파’라는 종교집단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번에는 드디어 중견 여자 탤런트 전모씨까지 깊이 연루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이제 세월호 참사는 ‘초대형 버라이어티 블록버스터’ 같이 커지고 있다. 즉, 대형 인명사고 수준을 넘어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 박혀 있던 부조리들이 총체적으로 드러나는 핵폭탄으로 진화하고 있는 느낌이다.  

   
▲ 세월호 참사는 언론사와 언론인들이 깨어있지 못한채 감시대상과 안락한 동거에 빠졌던 것도 주된 요인이다. 언론사들은 해수부 공무원들과 해운사간의 검은 유착관계를 파헤치지 못하고, 썩은 종교기업을 이끌고 있는 유병언씨의 온당치 못한 축재와 비윤리적이 사업방식에 대해 감시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 사건수사를 보면서 의아한 것은 사고 원인부터 사후처리 그리고 속속 드러나고 있는 구원파라는 종교를 배경으로 한 대규모 기업집단에 대해 우리 사회 누구도 그렇게 모르고 있을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1991년 오대양사건으로 실형을 받은 유병언씨의 보통사람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성공신화와 상식을 벗어난 선박 운영 등은 공권력의 의지가 반영된(?) 묵인 혹은 유착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선 오대양사건으로 4년 복역한 후 무일푼상태에서 짧은 시간에 다시 준재벌로 성장한 것도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드러난 세모그룹 기업들이 선박운항사업을 제외하고 그렇게 엄청난 축재를 할 만한 사업들이라고 보기 어렵다. 더구나 이들 기업들이 유병언 회장의 사진작품들을 몇 천만원에서 몇 억원씩에 사들였다면 도대체 이 기업들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두가지. 우선 많은 사이비 종교를 배경으로 성장한 기업들이 그렇듯이 신앙의 이름으로 종사자들을 약취하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국가기관과 결탁해 이권사업을 전유하는 것이다. 1987년에 발생했던 ‘오대양사건’이 앞의 사례라면, 이번에 ‘세월호 침몰사건’은 후자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물론 천차만별의 사람들이 함께 사는 세상에 이처럼 부조리한 행위가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또 부도덕하고 비정상적인 기업이나 종교가 국가 공권력과 결탁하는 것도 역사 이래 항상 있어왔던 일이다. 그렇지만 국가의 감시기관들을 비롯한 우리 사회 모든 영역이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썩은 냄새가 풀풀 나는 종교기업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솔직히 감시는 커녕 비호해 온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비정상적인 종교집단과 비상식적인 기업들과 이상한 사람들이 버젓이 활개치고 결국대형 참사를 일으킬 때까지 우리 사회의 그 많은 감시기구들을 무엇을 했다는 것인지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기업들이 성장하고 모든 편법을 동원해 축재하는 동안 그 많은 공권력들은 무얼 했는지 의문이다. 또 사고 당일 ‘세월호’ 운행을 모니터하고 사고를 탐지해야 하는 해경들이 모두 자고 있지 않았다면 일이 이렇게 커질 수 있었을까? 아마 이 중에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작동했다면 어린 학생들이 무더기로 희생되는 참사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 침몰한 세월호 주위에서 잠수부들이 필사적인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무슨 이유이든 공권력의 감시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감시 기능의 책무를 떠맡고 있는 곳이 언론이다. 기술발달로 수없이 많은 언론매체들이 난립하고, 아무 말이나 거침없이 떠들어 대는 인터넷 언론들이 창궐해도 사회감시 기능이라는 역할은 절대 변할 수도, 망각될 수도 언론사의 책무인 것이다. 더구나 어느 장소 어느 때 누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즉각 감시가 가능한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가 아닌가 말이다.
 

그럼에도 이런 대형 참사를 예방하지 못한 것은 결국 언론사와 언론인들의 ‘깨어 있는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인식을 망각하게 하는 것은 그런 문제들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안락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또 ‘안락함’은 언론사가 감시해야 할 대상들과 공존하면서 나오는 책임의식 실종에서 비롯된다. 어쩌면 지금 우리 언론은 감시대상과의 ‘안락한 계약 동거’의 단꿈에 빠져 있는지 모른다. 혹시 이번 사건을 통해 수많은 우리 사회의 부조리들을 드러내 앞장서서 돌을 던지고 있는 언론사들부터 먼저 반성해야만 하는 건 아닌가. /황근 선문대교수,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