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 눈물로 위로하고, 기자회견열어 사회개혁 착수해야

   
▲ 정용화 전 청와대 연설기록 비서관
슬픔과 분노의 파도가 대한민국을 덮치고 있다. 젊은 영혼들이 수장되어가는 것을 그냥 지켜만 보면서 통곡과 절규, 미안함과 안타까움으로 온 국민이 몸과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

“과연 이게 나라인가?” “이 나라를 믿고 살 수 있는가?” “세금내고 애국할 대상인가?” “정부와 정치가 해줄 수 있는게 무엇인가?” 라는 절망섞인 질문에 정치학자이자 한때는 정치인이었던 나 자신이 부끄럽고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국가적 재난상황에 그 존재이유를 보여야 할 정치와 정치인들은 뒤로 숨기에 바쁘고 국민감정에 오히려 장애물이 되고 있다. 대통령의 책임 회피와 사과 지연에 분노한 국민은 야당지도자의 “네 탓” 공방에 남은 기대마저 거둬들이고 있다. 사과와 개각, 선거패배로 이 모든 것이 끝날 수 있는 일인가?

말발있는 사람들, 글발있는 사람들은 차제에 시스템과 구조개혁을 주장한다. 보수언론들은 ‘관피아’를 척결하고, 재난관리콘트롤센터를 만들고, 권한과 책임있는 장관임명 등 인사시스템을 개혁하고 나아가 국가개조론까지 나오고 있다.

이번 사고의 배경에 주목하는 진보언론들은 ‘비지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운 전 대통령의 책임부터 비정규직, 계약직의 노동조건에서는 책임감을 갖기 어렵기 때문에 비정규직을 철폐해야 하며, 돈이 지배하는 구조적 폭력이 자기만 살려는 비인간적인 사회를 만들었다면서 “진짜 살인자는 선장이 아니라 신자유주의”라고까지 주장한다. 양적성장 위주에서 질적 성장으로 국가발전노선을 전환하고 책임윤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대통령은 관련자를 엄벌하고 국가안전처를 신설하겠다고 한다.

이러한 대책이 유족을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을까? 국민들이 정부와 정치에서 새로운 희망과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지금 답답한 심정이 분노로 전환된 이유는 분초를 다투는 현장에서 서둘렀으면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을 죽게 내버려둔 당국의 무능과 절차위주의 행정, 자기 할 일은 안하고 윗선만 바라보는 담당자들의 행태, 그리고 정작 윗사람은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한 모습 때문이 아닌가? 문화한류와 스포츠스타들로 키워진 국민적 자부심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능한 정부” 아래서 살고 있다는 허탈과 분노로 대체되고 있다.

   
▲ 박근혜대통령이 진도실내체육관을 찾아가 유가족들과 대화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대통령과 안철수 김한길 대표 등 야당지도자부터 유가족에게 "내가 죄인입니다. 내탓입니다"라고 사과한 후 신속한 수습과 야당으로서의 협조등을 다짐해야 한다. 정과 의무감이 충만하고, 자비를 사랑하는 지도자라야 유가족과 국민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다.

대통령의 눈과 귀가 막혀있기를 이승만정권의 말기와 비교하는 사람도 있다. 역대정부를 “서민(만)공감정부”에 이어 “기업(만)공감정부”, 그리고 지금은 “무공감(아무도 공감하지 않는)정부”라는 비아냥도 들린다. 국민들은 자기책임이라며 미안해하고 안타까워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데 정작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국가, 그 중의 최종,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은 심판자, 관전자, 호통자로 남아있다.

이렇게 했다면 어땠을까?  대통령이 진도체육관에 찾아갔을 때 유족들 앞에 무릎을 꿇고 “모두 제 탓입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하고... 유족들을 부둥켜안고 같이 눈물흘리며 위로하고(국민의 어머니로서)... 현장상황에 불만을 표출한 유족들이 청와대로 향해갈 때 즉시 현장에 내려와 불만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제가 무한책임을 지겠습니다.”하면서 시정조치를 지시하고...기자회견을 열어 “우리 아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 전반을 재점검하겠다. 1년만 시간을 달라. 1년후 재신임을 묻겠다.” 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가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고 총리 사퇴를 비겁한 짓이라고 공격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보다 먼저 국민 앞에 무릎꿇고 “죄송합니다! 저희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야당 역할 제대로 하여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대통령이든 야당이든 여당이든 정치인을 불신하고 “우리하고는 다른 사람”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국민들과 정(情)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함께 슬퍼하고 함께 기뻐하면서도 국민의 안위에 대해서는 무한책임을 지는 자세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맹자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이라고 했고, 그 사례로 “홍수를 다스린 우임금님은 세상에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을 보면 마치 자기가 그를 물에 빠져 죽게 한 것처럼 여겼고, 농사를 가르친 후직은 세상에 굶주리는 이가 있으면 마치 자기가 그를 굶주리게 한 것처럼 여겼다”고 했다.아우구스티누스는 “다스리는 것은 권세욕 때문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의무감에서 하는 일이고, 권위를 자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비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정과 의무감을 가진 대통령이라면 비정규직 문제도, 신자유주의 문제도 눈에 들어왔을 것이고, 현장을 내몸과 같이 챙길 사람을 장관으로 임명했을 것이다. 내탓이 아니고 남의 탓만을 따지는 사회에서는 아무리 시스템이 잘 갖춰진다 한들 또 다른 이유를 찾아낼 것이다. 새로운 확신과 태도가 생겨나지 않은 채 구조만 바꾸면 그 구조는 오래지 않아 또 부패하고 비효율적인 것이 될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정치를 하면 먼저 이름을 바로잡겠다고 했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선장은 선장다워야 한다! 나는 나다운가? 나는 내 역할과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안산 임시분향소에서 비를 맞고 돌아오며 눈물 속에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내탓이오... 내탓이오... 내탓입니다!” /정용화 전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 현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교수(www.yong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