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국방부장관과도 이견…미국의 일관된 대북제재와 궤 달리해
'편작(扁鵲)이 열이 와도 못 고친다'는 옛말이 있다. 전국시대의 명의였던 편작은 사람들의 얼굴빛과 소리만 듣고도 병을 진단할 정도로 신통하여 민간에서 신의(神醫)로 받들어졌다. 그의 전설 중에는 괵나라 태자를 살린 일화가 유명하다. 태자가 병에 걸려 모두 죽었다고 여겼을 때 편작이 "아직 따뜻한 기운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태자의 머리에 침을 놓아 살린 일화다. 

편작은 제나라 환공의 안색만 보고 그 병의 원인을 알아내기도 했다. 제나라 환공은 편작이 처음에는 살갗, 다음에는 피부, 다음에는 위장으로 병이 점차 깊어질 때까지 편작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 그러다가, 병이 골수까지 미쳤다는 것을 알고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함을 알았고, 며칠 후 왕은 죽고 말았다. 

편작에게는 두 형이 있었는데, 모두가 의원이었다. 어느 날 위문왕(魏文王)이 편작에게 물었다.

"그대의 집은 삼 형제가 모두 의원인데 누가 가장 의술이 뛰어난가?"

편작이 이렇게 대답했다.

"큰 형님이 가장 뛰어나고 그다음이 둘째 형님이며 전 가장 아래입니다."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미사일 발사 지시를 친필명령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화성-15'가 성공적으로 발사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달 29일 보도했다. 사진은 화성-15형 시험발사 모습./사진=연합뉴스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는 편작의 의술이 가장 낮다는 말에 왕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이유를 물었다. 의술이 가장 낮다는 편작이 왜 형들보다 더 유명해지고 '천하의 명의'로 알려졌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편작은 이렇게 설명했다.

"큰형님은 환자가 병이 걸리기도 전에 얼굴빛을 보며 앞으로 생길 병의 원인을 제거해줍니다. 둘째 형님은 환자의 병세가 미미할 때 미리 치료하여 큰 병이 되는 것을 막아줍니다. 두 형님은 사람들이 병에 대해 미처 모르고 있을 때 미리 병을 고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저 작은 병을 고친 것이라고 여깁니다. 반면에 저는 환자의 병이 커지고 고통으로 신음할 때야 병을 알고 치료합니다. 사람들은 중병에 걸린 자신을 제가 맥을 짚어 약을 먹이고, 살을 도려내어 병을 낫게 하는 행위를 보고서 비로소 자신의 병을 고쳤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때문에 두 형님보다 제가 명의로 소문이 난 것입니다."

편작의 말에 위문왕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일반적으로 어떤 조직이에위기가 닥쳤을 때 '야단법석형'이 있고 '차분한 대응형'이 있다. 외부에서 보면 야단법석을 떨며 나서는 사람이 유능한 사람으로 비친다. 하지만 실제로는 차분하게 대응하고 위기가 닥치기 전에 사전에 예방하는 사람이 훨씬 더 중요하다. '불을 예방하는 사람'이 '불을 끄는 사람'보다 훨씬 더 소중한 인재라는 의미다. 

지도자의 첫번째 자질은 위기에 대한 촉감

'사전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원칙은 국가에게는 더욱 더 중요하다. 위기가 오기 전에 미리 에방하지 않으면 국가 존망이 한순간에 결정되고, 한번 망한 이후에는 재기도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만큼 국가 위기의 최고책임로자서 '고도로 발달된 위기 촉감'은 지도자가 갖춰야 할 첫번째 자질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의 공영방송인 BBC가 2002년 100만 명 설문조사에서 '가장 위대한 영국인'으로 꼽은 인물이 윈스턴 처칠이다. 그는 1939년 전임자인 체임벌린 총리가 독일의 히틀러와 '뮌헨협정'을 체결하고 돌아와 "평화를 가지고 돌아왔다"고 발표하고 영국인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을 대 크게 분개하고 체임벌린에게 따졌다. 처칠은 "당신(체임벌린)에게 전쟁과 불명예 중 선택이 주어졌다. 당신은 불명예를 선택했으나 결국은 전쟁은 얻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역사는 누가 옳았는지를 증명해줬다.

처칠은 한때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의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루스벨트 대통령의 보스, 자신을 부관으로 칭했다. 한마디로 바짓가랑이 사이를 기어간 셈이다. 처칠이 자존심이 없고 용기가 없어서 그처럼 루스벨트에게 굽신거렸을까.

북한이 사거리 1만3000km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다. 이 탄도미사일은 워싱턴DC와 뉴욕까지 타격 가능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핵무력 완성'을 선언할 만한 성과를 올렸다. 

   
▲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지금까지 미사일 중 가장 진전된 것임은 분명하나, 재진입과 종말 단계 유도분야에서의 기술은 아직 입증되지 않았으며, 핵탄두 소형화 기술 확보 여부도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현실 인식에 대한 미국과 한국의 입장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은 걱정, 한국은 무사태평?

북한의 이같은 행패에 대해 미국은 걱정이 태산이다. 최근 미국 상원의 외교위 청문회에서 코리 가드너 상원의원이 "미국이 당면한 가장 긴급한 안보 위협은 북한이라고 생각하는 데 어떻게 보는가"라고 묻자, 미국 외교 안보의 두 축인 매티스 국방장관과 틸러슨 국무장관 모두 "그러한 견해에 동의한다."고 답변했다.

북핵을 머리맡에 두고 있는 한국의 최고 국정책임자 문재인 대통령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지금까지 미사일 중 가장 진전된 것임은 분명하나, 재진입과 종말 단계 유도분야에서의 기술은 아직 입증되지 않았으며, 핵탄두 소형화 기술 확보 여부도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를 전적으로 지지하는 한 언론매체는 자랑스럽게 '문 대통령 "화성-15 완성 안됐다"…'북-미, 예단말라' 메시지를 기사 제목으로 뽑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북한이 상황을 오판해 핵으로 위협하거나 미국이 선제타격을 염두에 두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어보면 지금까지 숱하게 있었던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우리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는 인식으로 비쳐진다. 과거 주사파의 생각을 이어받는 반미좌파에서 얘기하했던'북핵과 미사일은 정권보위용이며, 한국 위협용은 아니다.'는 인식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백브리핑에서 아예 "북핵 미사일 문제는 일차적으로 북한과 미국의 문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마치 남의 나라 얘기하듯이 한 것이다. 그러면서 송영무 국방장관이 1일 미국 정부가 북한에 대한 해상봉쇄 참여를 요구할 경우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자,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미국이 해상봉쇄 조치를 제안하면 이를 적극 검토하고 참여하는 방향으로 하겠다는 것은 송 장관 개인 의견"이라고 다른 말로 묵살했다. 전선에서 뼈가 굵은 전문가이자 국방의 실무총책임자를 청와대 정치세력이 간단히 제압해버린 셈이다.

문재인 정부는 제환공의 데자뷰?

한국의 역사는 외침에 시달린 역사였다. 하지만 늘 준비는 부족했다. 임진왜란 때 그렇게 호되게 당했는데도 늘 도덕과 관념론적인 허상에 매달렸다. 문제는 정신이요 도덕이라고 하면서 '무기 군대 군량미' 등 실질적인 대책은 말하지 않고, 뜻이 갸륵하면 하늘이 굽어보고 땅이 돕이 조상이 돌봐준다는 생각을 했다. 

"백만 오랑캐가 쳐들어와도 도덕으로 무장하면 방망이로도 능히 쳐부술 수 있다"고 말한 성리학자도 있었다. 그의 학풍을 이은 분들이 구한말의 위정척사파가 되었고, 이들과 민족주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합쳐 현재 대한민국의 진보좌파를 형성했다고 보는 게 많은 역사학자나 사회학자들의 인식이다.

하지만, 내가 평화를 사랑하면 상대 국가도 평화를 사랑해 모두 행복한 세상을 만들게 될 것이라는 생각(실제로는 환상)은 '힘이 곧 정의'인 국제사회에서 단 한차례도 성공한 적이 없다. '안보불감증'이나 '위기에 대한 무딘 촉감'은 난치병에 가깝다. 

난치병이 골수에 스며든 후에는 백약이 무효다. 편작이 아무리 병세를 일러줘도 알아듣지 못하고 골수에 스며든 후에야 뒤늦게 땅을 치고 후회했던 제나라 환공의 모습이 오늘날 한국에서 데자뷰로 나타나 아른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필재 정치평론가
[김필재]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