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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
작년 겨울 촛불집회가 기세를 올리던 때 박근혜 정부를 희화(戱畵)하는 '이게 나라냐'라는 구호가 등장했다. 2012년 1월에 개봉된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주인공이 재판이 끝나고 교도소로 수감되면서 한 말이 "이게 재판이냐, 개판이지."였다. 이 말은 당시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의 '공직 금품 매수' 행위 관련 재판 결과와 관련하여 유명 언론인이 신문에 게재한 칼럼의 제목이 되기도 했다.
요즘 우리 사회가 '이게 나라냐'라는 말에 걸맞게 돌아가고 있다. 법인세 인상을 골자로 한 법인세개정안이 처리된 지난 5일 자유한국당은 의원총회를 하느라 국회 본회의가 열린 줄도 몰랐다고 한다. 물론 자유한국당 의원 전원이 본회의에 참석했더라도 법안 통과를 저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제1야당이 예산안 등 중요한 법안을 다루는 본회의가 열리는 것조차 모르고 집안싸움이나 하고 있는 것이 자유한국당의 모습이고, 이 기회를 노칠 새라 법안을 전격 통과시킨 게 현 집권당의 모습이다. '이게 당이냐', '이게 국회냐'라는 말을 들어도 싸다.
대한민국이 '조세 피난처'라니!
같은 날 우리나라가 EU로부터 '조세 피난처'로 지정되는 코미디 같은 일까지 벌어졌다. 때마침 국내에서 '조세 피난처' 등을 통해 재산을 빼돌린 고액자산가와 기업들에 대한 세무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판에 세계 7대 무역대국이자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와 G20 회원국임을 내세우는 한국이 일부 카리브해 섬나라, 중동·아프리카 국가들 등과 함께 이 불명예스런 리스트에 오른 것이다. 그 동안 이 정부가 뭘 하느라 나라가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이게 정부냐'라는 말이 딱 어울리지 않는가!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는 EU의 잘못만을 탓하고 있지만, EU의 조사가 1년 가까이 진행됐고 OECD 국가 중 우리만 유일하게 '조세 피난처'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은 정부의 무관심 또는 미온적 대처의 결과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이번 사태는 원인 규명이 문제가 아니라 주무부처에 대한 단호한 책임추궁과 아울러 정부의 대국민 사과가 뒤따라야 할 사안이다. 물론 EU대표부에 파견된 수십 명의 공직자들은 국록을 먹으며 뭘 하고 있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그런데도 이 문제에 대해 언론의 반응은 기이하리만치 조용하다. '이게 언론이냐'라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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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사고를 놓고 3년이 넘도록 수천억 원의 세금을 퍼붓는 정부를 봐온 국민들은 이번에는 '낚싯배' 사고를 '국가의 책임'이라고 몰아가며 또 얼마의 나랏돈을 퍼부을 것인지 걱정이다. 인천 영흥도 해상에서 낚싯배와 충돌해 15명을 숨지게 한 급유선 명진15호. /사진=연합뉴스 |
국민들은 불안하다!
국민들은 불안하다. 우선, 국제사회에서 "북핵 첫 타격이 한국"이라는 말이 떠돌고 북한의 ICBM 개발 완결이 초읽기단계로 예측되며 미국의 선제타격 가능성이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는데도 "우리의 동의 없는 (미국의 대 북한) 선제타격을 용납 못한다"고 선언하는 대통령의 복심(腹心)과 정부의 복안(腹案)을 알 길이 없어 불안하다.
불안한 건 안보뿐만이 아니다. 새 정부의 퍼주기식 선심정책이 불안하고, 재벌손보기 식의 경제정책이 불안하고, '적폐청산'을 내세운 보복정치의 후폭풍이 불안하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이게 나라냐'라는 한탄의 소리가 나라 안에 진동하는데 과연 이 정부가 무슨 비책을 가지고 있는 건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이런 와중에 아무런 해명도 없이 얼렁뚱땅 넘어가고 있는 '흥진호' 사건도 그렇고, 대통령이 나서서 이번 '낚싯배' 사고를 '국가의 책임'이라고 단정하는 모습도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렵다. '세월호' 사고를 놓고 '대통령의 7시간 행적' 운운하며 마치 '대통령의 책임'인양 몰아갔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낚싯배’사고를 '국가의 책임'이라고 몰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상업적 목적으로 낚시꾼들을 태우고 바다를 달리던 개인 낚싯배의 사고와 손님을 태우고 도로를 달리던 버스나 택시의 사고가 어떻게 다른지 범인(凡人)들에게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낚싯배' 사고가 '국가의 책임'인가?
'세월호' 사고를 놓고 3년이 넘도록 수천억 원의 세금을 퍼붓는 정부를 봐온 국민들은 이번에는 '낚싯배' 사고를 '국가의 책임'이라고 몰아가며 또 얼마의 나랏돈을 퍼부을 것인지 걱정이다. 교통사고의 책임 문제는 가해자의 책임의 경중을 따져 법적으로 해결할 사안이고 사고피해 보상 문제는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책임의 비중에 따라 당사자들과 관련 보험회사들이 해결할 사안 아닌가? 국가안보와 경제문제가 초읽기의 경각(頃刻)을 다투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낚싯배' 사고에까지 직접 나서는 모습이 과연 대통령의 믿음직한 모습일까?
나라의 우여곡절 때 언론이 여론을 선도하기는커녕 국민의 불안을 증폭시키고 편향된 시각으로 사회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정통언론들뿐만 아니라 무수히 난립하는 온라인미디어들을 통해 전파되는 허위, 왜곡 정보들이 여론을 흔드는데 한 몫을 한다. 이번 '낚싯배' 사고 관련 보도들을 보면 대체로 "청와대가 달라졌다"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듯하다.
한 온라인미디어는 "(전략) 그저 수장(首長)만 바뀌었을 뿐인데 지금의 해수부에서 지난 날의 과오를 찾아보기 어렵다… '세월호 세대'는 처음으로 '국가의 존재'를 몸소 실감했다…"라고 썼다. 가히 속칭 '문비어천가(文飛御天歌)' 수준이다. 이처럼 국민의 생각을 자신들이 바라는 방향으로 흔들어 대는 것이 언론의 힘이자 횡포다. 어떤 게 진정한 여론인지는 오로지 정치하는 사람들의 성향, 정치철학, 국정목표, 그리고 이해타산에 따라 좌우될 뿐이다.
이게 나라냐!
지난 겨울 '촛불국민'들이 '이게 나라냐'를 외쳤듯이 '태극기국민'들은 대통령 탄핵이 현실이 되었을 때도, 새 정부가 돌연 국정교과서 폐지를 강행했을 때도, '탈원전'을 외치며 원전공사를 중단시켰을 때도, 사드 배치 문제를 놓고 우왕좌왕하며 몸싸움을 벌일 때도, 중국이 우리 정부의 '3불(不) 약속' 이행 운운할 때도, 그리고 현 여당대표 등 내로라 하는 여당의원들이 70~90만원의 벌금형으로 의원직을 연명하게 되었을 때도 '이게 나라냐'는 말을 되뇌어왔다.
국민들은 최근 KBS와 MBC 등 지상파방송을 장악하려는 집단들의 비열하고 집요한 수법들을 지켜보고 있다. 광화문광장 세월호 텐트 옆에선 언론노조KBS본부에서 KBS 야당 측 이사 해임을 촉구하는 단식농성과 릴레이발언을 벌이고 있다.
광화문광장에서는 세월호 희생자들의 장례가 완전히 끝난 지금도 "천만 노란리본의 물결로, 천만 촛불의 힘으로…"라는 구호를 써 붙인 세월호 텐트 속에서 아직도 노란 리본을 만들어대고 있다. 그들은 그 '물결과 힘'으로 또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새 정부 들어서서 반 년이 지났지만 '촛불 공로자'들의 무리한 대가(代價) 요구가 '촛불 정부'에 큰 짐을 지우고 있다. 어찌 보면 '이게 나라냐'라는 집단 염세(厭世) 신드롬은 '촛불'을 들고 '태극기'를 들고 이 구호를 외치는 국민들이나 그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 국민들 모두의 자업자득이다.
한 나라의 민주주의는 그 나라 국민 수준만큼만 발전한다는 말이 있다. 어느 조직에서나 점조직(點組織)식 관리와 통제는 제 발등 찍기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70~80퍼센트의 국민지지율을 자처하는 정부가 '이게 나라냐'라는 국민들의 비아냥을 '이게 나라로구나'라는 감탄으로 바꾸어 주길 바랄 뿐이다.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이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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