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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진권 경제평론가 |
미국 법인세 개혁의 의회 상하원 합의안이 발표됐다. 법인세율을 현행 35%에서 21%로 인하했다. 우리는 법인세율의 인하 폭에만 관심가지고 있지만, 개혁안을 보면 세율보다 더 중요한 내용이 있다. 법인세율을 21%로 인하하면서 단일세율로 바꾼 것은 놀랄만한 개혁이다. 그동안 미국의 법인세 체계는 8단계의 누진구조였다.
누진구조는 다단계일수록 형평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법인세의 본질을 알면 누진구조는 유령을 쫒는 제도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법인세는 국민이 내는 세금이다. 법인세 부담을 주주, 종업원, 소비자, 자본가들에게 전가할 수 있으므로 궁극적으로 국민이 내는 세금이 된다. 그래서 법인세율 구조는 누진구조에서 단일세율로 가는 것이 국제적 추세였다.
미국과 일본을 제외하곤 대부분 국가에선 단일세율을 채택했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 법인세제가 누진구조를 여전히 유지한 것은 이론에 충실하지 않아서 이상한 측면이 있었다. 아마도 미국 중앙정부의 재원을 법인세와 소득세에 대부분 의존하므로 단일세율로 법인세 체계를 개편하는 것은 부담이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한국의 법인세율 체계는 국제적 추세에 역행하고 있다. 이번 법인세 확정안을 보면, 기존의 세단계 누진구조에서 네단계로 올렸다. 아마도 법인세제에서 누진구조를 더 세분화한 유일한 국가가 될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법인세를 소득재분배하는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 최고 높은 단계를 추가로 만들면, 대기업이 부담하는 세부담이 높아질 것이란 생각이다.
물론 단기적으로 그럴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국민에게 더 높은 부담이 될 것이다. 이보다 더 치명적인 효과는 국가간 조세경쟁에서 한국이 열등하게 되는 것이다. 조세경쟁은 국가 간에 이루어진다. 국가는 기업의 투자활동을 유인하기 위해 조세라는 정책수단을 활용한다. 이제 국제간 이동이 자유로운 대기업은 세금부담이 가장 낮은 나라를 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경제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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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법인세율 체계는 국제적 추세에 역행하고 있다. 이번 법인세 확정안을 보면, 기존의 세단계 누진구조에서 네단계로 올렸다. 아마도 법인세제에서 누진구조를 더 세분화한 유일한 국가가 될 것이다. 법인세 개편안은 기업의 투자행위를 떨어뜨리는 동시에 국가경제를 어렵게 할 것이 자명하다. /사진=청와대 제공 |
마치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미국이 법인세 체계를 단일세율로 개혁한 것은 그동안 재정학계에서 꾸준히 제시되었던 '법인세로 소득재분배 기능을 기대할 수 없다'라는 명제에 충실한 개혁안이다.
미국 상하원의 합의안에는 우리가 전혀 관심을 갖지 못하는 매우 중요한 내용이 있다. 기업의 설비투자에 대해 향후 5년간 즉시상각을 허용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설비투자와 같은 일정기간 내용년수를 가진 자본에 대해서는 매년 일정 액수 한도 내에서 감가상각을 허용할 뿐이다. 그런데 이번 개혁안에는 설비투자 전액을 비용에서 차감할 수 있게 하였다.
매년 일정액을 감가상각하던 것을 한꺼번에 하게 하면, 이자만큼만 경제적 혜택을 얻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즉시상각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기업에겐 투자를 더 하게 하는 경제적 유인이 작동한다. 국가 경제성장의 핵심에는 기업 투자가 있다. 거꾸로 기업 투자없이는 국가경제성장을 이룰 수 없다.
미국의 즉시상각 개혁안은 법인세율 인하로 인한 경제적 이득보다 훨씬 더 클수 있다. 상하원의 법인세 합의안에는 법인세율의 대폭인하와 즉시상각 제도가 동시에 있다. 기업 입장에선 자본투자에 대한 비용이 엄청나게 줄어들 것임을 쉽게 알수 있다. 기업의 자본비용(혹은 자본가격)이 대폭 떨어짐에 따라, 기업의 자본투자는 엄청나게 증가할 것이고 이는 곧 국가경제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는 감가상각 제도 개혁에 대한 개념이 아직 없다. 즉시상각이란 충격적인 개혁을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 오직 대기업은 규제하고 세부담을 높여야 한다는 관념론에 빠져 있다. 이번 미국의 법인세 개혁안은 우리에게 중요한 정책적 교훈을 주지만, 우리의 정책입안자들은 그 의미를 알 정도의 지적 기반도 없는 듯하다. 확실한 건 기업에 투자유인을 주면, 반드시 투자는 활성화된다.
기업의 투자행위는 청와대 혹은 정부가 아무리 억누르고 달래도 현실화되지 않는다. 기업의 이윤과 손실은 기업의 고독한 결정에 따라 스스로 책임져야 할 몫이므로 경제적 유인에 의해서만 반응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우리의 법인세 개편안은 기업의 투자행위를 떨어뜨리는 동시에 국가경제를 어렵게 할 것이 자명하다. /현진권 경제평론가
[현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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