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귀원장의 행복한 고전읽기(11)-호메로스(BC 800?-BC 750)의 <오뒷세이아>
험난한 항해와 도전을 극복한 불굴의 정신
모험과 고난을 지혜롭게 이겨낸 그리스 영웅의 모델
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
|
|
|
▲ 박경귀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
우리는 일상에서 ‘~가 펼치는 오딧세이’, ‘~들이 벌이는 대장정 오딧세이’ 등의 표현을 흔히 접한다. ‘오딧세이’는 문학작품을 넘어 도전과 신고(辛苦)를 상징하는 대명사로 널리 쓰인다. 오뒷세우스의 험난했던 여정이 보여준 강렬한 이미지가 수천 년 동안 세상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각인된 때문인 듯싶다.
이렇듯 우리가 가까이 접한 고전의 편린들에 익숙한 경우 마치 그 고전을 읽은 것 같은 착각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고전의 단편적인 이해가 오히려 진득한 완독을 저해하는 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것 책이 고전'이라는 우스갯소리처럼, 《오뒷세이아》도 그런 책이 아닐까?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기원전 6세기 이후부터 음송시인에 의해 유포되고 당대 지식인들에 의해 암기된다. 그리스의 언어, 문학 및 조형미술, 나아가 고대 그리스인의 자의식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음은 물론이다. 그리스인들에게 교과서 역할을 했던 셈이다.
인간과 신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신화와 역사를 넘나드는 영웅담은 당대 그리스인의 심금을 울리며 다양한 영감을 주었다. 호메로스의 작품은 당시 전쟁의 양상과 전원생활, 가정생활과 구성원 간의 관계는 물론 인간의 온갖 활동상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일리아스》가 트로이 전쟁을 둘러싼 영웅들의 삶과 죽음의 서사를 담고 있다면, 《오뒷세이아》는 트로이 전쟁 이후 그리스 본토로 귀환하면서 오뒷세우스가 겪는 험난한 항해의 여정과 극복과정을 그린 서사시다.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와 헥토르 등 뛰어난 장수들의 분노와 죽음의 대결을 통해 남성성을 한껏 드러내는 단선적 구조이다.
반면 《오뒷세이아》는 두 가지 모티브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페렐로페의 여성성과 오뒷세우스의 귀향자 모티브가 바로 그것이다. 페렐로페는 20년 동안 오뒷세우스의 무사 귀환을 고대하면서 수많은 청혼자들의 구애를 뿌리치며 인고의 세월을 보낸다.
반면 오뒷세우스는 죽음을 넘나드는 온갖 고초를 유연하게 극복하며 조국과 가정으로의 복귀와 부활을 꿈꾸며 이를 실현해 나간다. 오뒷세우스와 페렐로페의 이중주가 긴장과 대립에서 해후와 환희로 전환되는 긴 과정이 이어진다.
호메로스는《오뒷세이아》를 통해 고대 그리스의 가족 간의 역학관계, 결혼 생활의 의미와 이상적 아내상과 남편상을 보여준다. 오뒷세우스가 지중해 건너 이국 멀리 소아시아의 트로이 전쟁터로 나가 전쟁을 수행하던 10년, 그리고 귀환하던 10년, 무려 20년 동안 오뒷세우스의 작은 왕국의 왕비인 페넬로페는 구혼자들의 청혼을 물리치기 위해, 시아버지의 수의를 다 짤 때까지 청혼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틴다.
하지만 낮에는 수의를 짜고 밤에 다시 풀면서 시간을 끌던 그녀의 애틋한 계략은 시녀의 발설로 구혼자들에게 알려져 청혼 수락의 압박을 받게 된다. 구혼자들은 오뒷세우스가 없는 동안, 청혼을 빌미로 그의 집에 몰려와 매일 연회를 즐기며 오뒷세우스 가의 가축과 재산을 축낸다.
오뒷세우스의 어린 아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의 생환을 그리며 아티카와 인근 왕국에서 몰려든 청혼자들을 쫒아낼 방도를 찾느라 절치부심한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구혼자의 수가 108명인 점도 흥미롭다. 과거, 현재, 미래의 고(苦)와 락(樂) 그리고 불고불락(不苦不樂), 탐(貪)과 불탐(不貪)이 엮어내는 108번뇌가 떠오른다.
생사를 알 수 없는 오뒷세우스를 잊어버리고 새로운 결혼을 할 것인지, 살아서든 죽어서든 돌아올 기약이 없는 오뒷세우스를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지아비 없이 살아가야 하는 현실의 곤경과 제약 속에서 지아비에 대한 사랑과 지조를 지키기 위해 번민하는 페넬로페의 어지러운 심사를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아직 남편인 줄 모른 상태에서 나그네 오뒷세우스에게 자신의 꿈을 해몽을 부탁하며 한탄하는 말이 그녀의 곤혹스런 상황을 압축적으로 잘 보여준다.
"나에게는 어떤 신이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을 가져다 주셨다오.
낮 동안 나는 비탄과 탄식 속에서도 집 안에서
내 자신의 일과 시녀들의 일을 보살피는 것을 낙으로 삼곤 한다오.
그러나 밤이 되어 잠이 모든 사람들을 사로잡게 되면,
나는 침상에 누워 있기는 해도,
쓰라린 근심들이 내 마음 주위로 떼 지어 몰려와
비탄에 잠긴 나를 불안하게 한다오.
마치 판다레오스의 딸, 푸른 숲의 꾀꼬리가
새 봄에 우거진 나뭇잎 위에 앉아 고운 노래를 부를 적에
자주 곡조를 바꾸고 전음을 내며 낭랑한 목소리로,
그녀가 전에 제토스 왕에게 낳아주었으나 어리석게도 죽여 버린
사랑하는 아들 이튈로스를 위해 슬피 울 때와 같이.
내 마음도 꼭 그처럼 두 갈래로 나뉘어 이랬다저랬다 한다오.
내가 이곳에서 내 아들 곁에 머물면서 내 재산이며 하인들이며
지붕이 높다란 큰 집이며 그 모든 것을 안전하게 지키고
내 남편의 침상과 백성들의 평판을 두려워해야 하는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궁정 안에서 내게 구혼하는 수없이 많은
구혼 선물을 주는 가장 훌륭한 아카이오이족을 따라가야 하는 지 말이오.
더구나 내 아들이 아직 어리고 철이 들지 않았을 때에는
내가 결혼하여 남편의 집을 떠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더니,
다 자라 성년이 된 지금은
아카이오이족이 그의 재산을 먹어치우는 것이 못마땅하여
내가 이 궁전에서 내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소."
열녀의 길과 새 출발의 기로에서 흔들리는 페넬로페의 이 말을 듣는 오뒷세우스의 조바심과 안타까움은 얼마나 극심했을까.
오뒷세우스가 귀환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갖가지 유혹과 생사의 고비를 영리한 계략으로 이를 극복해 내는 과정이야말로 오뒷세우스 영웅담의 핵심 중의 하나이다. 거인족인 퀴클롭스들의 죽음의 동굴, 고귀한 여신 칼륍소의 유혹, 교활한 키르케의 억류, 풍랑 속의 사이렌 자매의 유혹으로부터의 탈출 등, 어느 것 하나 힘겹지 않은 고난이 없었다. 결국 장애물 경기하듯 연이어진 사투 과정에서 부하들을 모두 잃고 혼자 생환하게 된다.
|
|
|
▲오뒷세우스는 괴물 퀴클롭스의 동물에 갇힌 동료들을 양의 배 밑에 숨겨 탈출시킨다. <폴리페모스 동국의 오뒷세우스(Odysseus in the Cave of Polyphemus)> Jacob Jordaens (1593–1678) 17세기 중반 作, Pushkin Museum of Fine Arts 소장, The Yorck Project 사진 |
|
|
|
▲오뒷세우스는 험난한 항해 과정을 슬기롭게 극복한다. 자신을 돛대에 묶고 치명적인 유혹자인 사이렌을 이겨낸 것도 그 중의 하나다. <율리우스와 사이렌(Ulysses and the Sirens)>, Herbert James Drape(1863–1920) 1909 作, Ferens Art Gallery 소장, Art Renewal Center 사진 |
오뒷세우스의 인내심과 지략, 무용(武勇)이 빛나는 대목은 역시 떠도는 걸인으로 위장하여 자신의 왕궁에 돌아와 구혼자들의 비난과 조롱, 폭력에 대항하며, 복수의 칼을 갈다가 충심을 지키던 수하 목동 2명, 아들과 합세하여 구혼자들을 무력으로 모두 참살하는 부분이다. 구혼자들과 사통하며 협력하던 시녀들까지 목을 매 죽이는 대목에서는 오뒷세우스의 분노에 찬 냉혹한 복수심을 여실히 보여준다.
꼭 구혼자들을 모두 죽이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었을까? 활쏘기 시합으로 이미 구혼자들을 제압하지 않았던가? 오뒷세우스의 잔인한 살생의 해법이 어떤 시대적 상황이나 작가적 상상에서 나왔는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
|
|
▲ <오뒷세우스의 귀환(The Return of Odysseus)>, Pinturicchio(1454–1513) 1509 作, 런던 국립미술관 소장, Web Gallery of Art 사진 |
《오뒷세이아》는 두고두고 인용하고 상기해 볼만한 대목들이 수없이 많다. 오뒷세우스가 죽음의 저승세계에 산 채로 들어가, 지하세계의 그림자 영혼이 된 아킬레우스, 아가멤논, 아이아스 등 많은 영웅들을 만나 그들의 하소연을 듣는다. 이 대목에선, 현실의 어떤 구차한 삶도 사후 세계의 어떠한 영광보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삶과 죽음에 대한 그리스인의 현실 인식을 보여준다.
오뒷세우스가 저승세계에서 아킬레우스를 만나 "그대가 여기 사자들 사이에서 강력한 통치자이니 그대는 죽었다고 해서 슬퍼하지 말라"고 하자, 반박하는 아킬레우스의 말에 망자의 서러움이 진하게 묻어난다.
"나는 세상을 떠난 모든 사자들을 통치하느니 차라리 지상에서 머슴이 되어 농토도 없고 재산도 많지 않는 가난한 사람 밑에서 품이라도 팔고 싶소이다."
오뒷세우스가 아들 텔레마코스와 공모(?)하여 자신의 생환을 숨기며, 아내이자 어머니인 페넬로페의 지조와 부덕(婦德)을 시험할 때에는 미묘한 해학을 느끼게 한다. 오뒷세우스와 아내 페넬로페, 오뒷세우스와 그의 부친 라에르테르의 상봉 과정에서 한동안 서로를 몰라보고, 서로를 시험하면서 뜸을 들이며 확인해 나가는 장면 역시, 독자들을 애타게 하여 혈육과 부부의 해후를 더욱 극적 감동으로 몰아간다.
오뒷세우스의 모든 고락의 과정에 개입하는 아테네의 수호신 아테나 여신 또한 독자를 감정이입으로 이끌면서 긴장의 완급을 조절해주는 장치 역할을 한다. 이몽룡이 거지의 몰골로 변장하여 성춘향과 월매를 시험하고 애간장을 태우다 ‘암행어사 출두’를 알리는 과정도 이와 맥락이 비슷하다.
《오뒷세이아》는 《일리아스》에서 미완으로 끝난 트로이 전쟁의 결말과 그 이후 참전 장수들의 후일담을 담고 있어 후세에 다양한 작품으로 구체화될 많은 소재와 영감을 준다. 예를 들어 아가멤논이 귀환하여 왕비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죽임을 당하는 이야기와 아킬레우스의 사망 경과, 그의 아들이 트로이 정복과정에서 활약하는 모습도 전해준다.
2600여 년 전에 이토록 원숙한 문학작품을 만들어낸 호메로스가 독립된 단수인지 복수의 음송시인인지 아직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오랜 세월 구전으로 전승되면서 문자의 사용과 함께 정제된 텍스트로 완성된 듯하다. 이런 의미에서 호메로스는 그리스 문학의 창시자이자 완성자라고 할 수 있다. 호메로스의 작품에서 얻어낸 영감이 고대 그리스시대를 넘어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 다양한 작가들에게 풍부하게 전이된 것이 이를 웅변해준다.
더구나 《오뒷세이아》는 오뒷세우스가 귀향의 험난한 여정을 슬기롭게 극복해 내는 과정을 통해 그리스인에 도전정신과 개척정신을 물론 불굴의 의지를 심어주고 있다는 점에서 영웅담의 로망이 되고 있다. 목표를 달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부딪치게 되는 경영일선에서의 유혹과 환난을 극복하는 지혜를 준다는 점에서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수많은 교훈을 준다.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
|
|
☞추천도서 : 《오뒷세이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숲(2012, 9쇄), 672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