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한국방송 선정적 보도와 대조적, 북한공격시 언론매뉴얼있나

   
▲ 황근 선문대 신문광고학부 교수
현재 지구위에서 가장 강한 나라 미국, 그래서 자기들이 최고라고 자부심을 넘어 오만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그 미국인들에게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 바로 ‘베트남 전쟁’일 것이다. 1964년 월맹 근해에서 발생한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베트남전쟁에 개입한 미국은 전쟁 내내 ‘제국주의 전쟁’ ‘명분 없는 전쟁’ 같은 공산진영과 제3세계국가들로부터 비난을 받아야했다. 결국 전쟁에서도 승리하지 못한 치욕적인 역사를 경험했다.
 

때문에 미국인 특히 미국의 지도자들은 베트남전쟁을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하고 있다. 최근 들어 미국 내에서 베트남 전쟁을 재조명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가끔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이 전쟁은 많은 미국인들에게 유쾌한 역사로 기억되지는 않고 있다. 미국인들은 이처럼 ‘패배한 전쟁’, ‘명예스럽지 못한 역사’에 대해서도 엄격하고 철저하게 분석하고 교훈을 찾는다는 점에서 ‘승리한 전쟁’ ‘자랑스러운 역사’만 기억하려는 우리와는 크게 다르다. 베트남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도 많은 분석이 여러 각도에서 다루어져 왔고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다.
 

베트남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한 이유의 하나로 매스미디어 특히 텔레비전 보도가 지적되고 있다. 전쟁 종료 후 닉슨 대통령은 ‘우리는 이 전쟁에서 베트남 전장터의 적에게 진 것이 아니라 내부의 적 때문에 졌다’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즉,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미국내의 여론과 반대세력들 때문에 제대로 전쟁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사회학자인 모리스 자노위츠(Morris Janowits)는 신문이 전쟁보도를 주도했던 한국전쟁이 맥아더를 비롯한 전쟁영웅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텔레비전이 주도했던 베트남전쟁은 전쟁의 비참함과 잔인함만 보여주어 미국인들에게 반전분위기만 조성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 미국은 베트남전쟁당시 방송이 전투현장의 현장보도로 미국민의 분열이 확산되고, 반전무드를 심화시키는 등 부작용을 가져왔다. 미국은 이후 전장지역에 대한 기자의 현장취재를 금지하고, 브리핑으로 대체하는 등 전쟁보도에 대한 통제시스템을 도입했다. 세월호 참사과정에서 방송들의 무분별한 보도로 국민들의 감정을 매몰시키고, 책임문제로 정치 사회적 갈등만 증폭시켰다.

베트남전쟁 동안 텔레비전 전쟁보도가 미국 내 반전무드 조성에 기여하게 된 메커니즘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964년 베트남전쟁에 개입한 미군은 초기 종군기자들의 보도활동에 대해 어떤 매뉴얼도 통제시스템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때문에 종군기자들이 말단 소총부대까지 배치되어 동행취재해서 거의 그대로 하루나 이틀 뒤에 안방 TV뉴스로 방송되었던 것이다. 언제가 TV시리즈물로 방송되었던 ‘머나먼 정글’이라는 드라마에서 종군기자의 이런 모습이 다루어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베트남전쟁은 국경을 놓고 싸우는 정규전이 아니라 정글에서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게릴라전이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독화살, 죽창 같은 원시적인 부비 츄랩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더구나 민간인과 게릴라를 구분하기 힘든 게릴라전 특성상 아군의 공격이 민간인학살로 비치기도 했다. 정글에 숨어있는 베트콩을 공격했던 융단폭격으로 민간인 피해 장면도 그대로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비인간적인 전쟁모습을 안방극장을 통해서 본 국민들 사이에 전쟁에 대한 혐오감과 반전감정이 유발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1950년대 말부터 보급되기 시작한 컬러TV가 1960년대 중반 본격적으로 확산되는 시기였다. 안방시청자들은 붉은 피를 흘리면서 싸우고 죽어가는 전장터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을 좋게 볼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더구나 베트남전쟁 기간 실시된 징집제로 인해 반전운동은 더욱 힘을 받았던 것이다. 실제 광장에서 베트콩을 현장에서 사살하는 장면은 미국내에서도 큰 논란이 되었었다.
 

이를 교훈으로 1968년 구정공세 이후 전쟁보도에 대한 통제시스템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후 1980년대 파나마, 그레나다 공격을 거치면서 종군기자들의 전투지역 진입 통제방식이 정착되었고, 90년대 이후 걸프전쟁, 이라크 공격 때는 모든 전투상황을 브리핑하는 방식으로 정착되었다. 결과적으로 종군기자들의 현장취재는 전투종료 후 허용하는 방법이 기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군의 언론대응시스템만 구축된 것이 아니라 언론사, 특히 방송사들의 전쟁보도 양식도 변화되었다.

대표적으로 전투장면이나 피흘리는 장면들은 보도자료로 내보내지 않은 자율적 규제들이 정착되었다. 걸러지지 않은 전쟁보도들 특히 비참한 전투장면들은 전쟁에 대응하는 국민들을 통합하기보다 분열시키고 집단 히스테리를 일으켜 역효과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재난보도(전쟁보도도 재난보도의 하나다) 시스템에 있어 정보원인 군의 대응시스템과 언론의 정제된 보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이번 ‘세월호 참사’ 보도를 보면, 정부의 체계적인 위기대응시스템, 특히 대언론 대응 메뉴얼도 전혀 없었을 뿐 아니라 방송사들은 선정적 보도경쟁으로 침몰하는 배안에 있는 학생들의 장면을 남발하였다. 때문에 국민들을 큰 재난에 침착하게 대응하게 만들기보다 모든 국민들을 감정에 매몰시키고, 누가 책임져야하는가를 놓고 사회적, 정치적 갈등만 증폭시켜 버렸다.
 

이번 같은 민간 재난에 대응하는 것도 문제지만 북한의 공격 같은 나라의 운명이 달린 재난이 벌어지면 과연 어떻게 될지 심히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지구상에서 가장 전쟁위협이 높은 나라에 그것도 정전상태에 있다는 나라가 위기에 대처하는 국가시스템, 언론윤리 등이 이렇게 무방비 상태라는 것이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9.11이후 미국정부가 모든 위기대응시스템을 군사작전 방식으로 개혁한 것을 교훈삼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나마 군은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지금까지 종종 보여준 군의 대언론대응 사례들로 봐서는 해경이나 안전행정부보다 크게 나을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황근 선문대 신문광고학부 교수,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