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은 있지만 실패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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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일 거인의어깨 연구소장 /사진=거인의어깨 제공 |
30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거행됐다. 동계올림픽으로는 처음이다. 아마추어 스포츠의 순수 경쟁인 올림픽은 각 나라의 대표선수들이 모여 실력을 겨루게 된다. 미국이나 캐나다와 같은 동계스포츠 강국의 국가대표 선수들도 있지만, 이번 올림픽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작은 나라의 국가대표 선수들도 있기 마련이다. 단 한 명의 선수만을 출전시킨 나라도 있었다.
교육의 여러 분야 중 가장 관심이 집중되고 가장 민감한 '입시와 관련된 칼럼에서 뜬금없이 웬 올림픽 이야기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필자는 이번 동계올림픽 개회식을 보며 '단 한명이 출전한 나라의 선수도 분명 그 나라에서는 최고의 실력을 뽐내는 그 나라의 국가대표 선수가 맞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가능성이 희박할 수도 있겠지만 그 선수도 분명 자기 나라의 국가대표에 선발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을 것임은 분명하다.
일반고와 자사고의 선택의 기로를 두고 흔히 ‘용의 꼬리가 될 것이냐, 뱀의 머리가 될 것이냐’의 문제라고 혹자들은 비유하곤 한다. 그러나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그 결과는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용의 꼬리는 그래도 어찌되었건 ’용‘이다’라는 관점과 ‘용의 꼬리는 그래봤자 ’꼬리‘다’라는 관점처럼 말이다.
오랜 시간 동안 컨설팅을 해 오며 입시컨설팅에 '참된 정답'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새삼 느끼게 된다. 상담을 요청해 온 학생들은 각각 처한 환경이 다르고, 각기 다른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어떤 학생에게 맞는 입시전략이 다른 학생에게는 바람직하지 않은 입시전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엄친아' P군의 좌절...무슨 일?
어느 가을 날 중학교 3학년의 P군이 상담을 요청해 왔다. 그는 한번 만나 보면 누구나 ‘엄친아’라는 단어가 떠오를 정도의 멋진 학생이다. 훤칠한 키, 밝은 인상, 넉살좋은 웃음과 말솜씨를 갖췄으며, 중학교 3년 내내 학급회장, 전교회장 등을 도맡아 하면서도 성적도 항상 상위권을 유지하고, 공부 이외에도 이것저것 잘 하는 것도 많은 그야말로 엄친아 중의 엄친아였다.
P군과의 첫 만남 당시 그는 3학년 2학기를 지냈다. 자사고의 풍부한 교내 프로그램을 십분 활용하여 가능한 한 모든 교내 행사에 참여하며 진정한 자신의 꿈을 키워보겠다고 호언장담하던 P군의 호기어린 말에 본인의 강력한 뜻대로 자사고 진학을 추천해 줬다.
그러나 1년 남짓 지나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친 1월 말 경에 다시금 찾아온 P군에게서 예전의 자신감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도대체 고등학교 1년 동안 P군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중학교 때 의기양양하게 고등학교 진학 후에는 자신 있게 모든 교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실적을 얻어 본인의 꿈을 펼치겠다던 P군은 고교 진학 후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킨 학생이다. 그는 고등학교를 입학하자마자 학급회장 선거에서 자기추천으로 입후보해 학급 회장에 선출됐다.
P군은 중3 가을에 컨설팅 받은대로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되는 다양한 공고문과 입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개최되는 학부모 총회의 자료집 등을 통해 정보를 적극 수집하여 다양한 교내 활동에 참여하였다. 그는 중학교 시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다양하고 심도 있는 교내 활동들에 심취하며 자사고에 진학하기를 정말 잘 했다고 여러 번 되뇌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자사고에 진학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P군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진학한다는 사실을 P군은 간과하고 있었다. 4월 과학의 달을 맞아 열린 교내 창의과학경진대회에 참가한 P군은 수상을 자신했지만, 수상권에서는 멀어져 있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자신이 미처 생각지도 못한 분야에서 기발한 방법을 동원해, 또 굉장한 심화탐구의 과정을 거친 쟁쟁한 실력자들이 정말 많았던 것이다. 그야말로 엄청난 충격과 좌절이 P군에게 닥치게 된 것이다.
지금껏 단 한번도 1등을 놓쳐본 적 없던 P군이 교내 첫 대회에서 수상조차 하지 못하리라고는 그 스스로는 상상하지 못했을 만큼 본인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이러한 첫 좌절감을 맛본 채 처음 맞게 된 1학기 중간고사의 결과는 더더욱 '충격'이었다. 중학교 때는 상상조차 해 보지 못했던 점수와 등급이 적힌 성적표를 받아든 것이다.
이렇듯 연속된 좌절을 겪게 되자 P군은 방황의 길을 걷게 된다. 자신의 입으로 내뱉은 말이 있기에 각종 교내 행사에는 모두 참여하는 등 열성을 보였지만, 자신감은 점점 사라지고 그저 형식적인 대회에 참여만 반복했고, 내신 성적 또한 계속해서 추락했다. 그렇게 1년을 보낸 P군은 어느덧 자신감을 잃은 채로 ‘하위권 성적’ 학생이 돼 있었다.
◇1년만의 컨설팅...무너진 자신감 회복
1년 만에 컨설팅을 받으러 온 P군과 같이 온 P군 부모님의 표정엔 근심이 가득했고, P군 또한 자신감은 사라진 상태였다. 문제는 끝도 없이 자기 자신만을 자책하는 P군의 태도였다. P군이 무너진 자신감을 가장 먼저 되찾아주는 게 최우선이었다.
P군은 다행히 중학교 교과 과정 만큼은 탄탄한 기초를 닦아뒀기에 고등학교 입학 후 내신 시험에 실패한 이유부터 찾을 수 있었다. 두 번 실시한 수능 모의고사에서는 과목별로 백분위 90퍼센트 정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출제 경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 했을 뿐만 아니라 시험의 난이도 자체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P군에게 일단 기본 학력자체가 떨어진 것은 아니란 점을 설명해 주며, 지난 내신 시험에서 틀린 문제들의 오답 정리를 철저히 하며 학교 홈페이지에 게재된 2~3년간의 기출문제를 빠짐없이 분석하여 과목별로 기본 개념들이 어떠한 형태로 변형돼 출제되는지 터득할 수 있도록 조언했다.
또 그동안 꾸준한 교내 행사 참여에도 불구하고 쟁쟁한 경쟁자들에 밀려서 입상을 하지 못해서 좌절했던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P군이 참여했던 모든 행사들에 대한 ‘결과 보고서’를 다시 작성토록 했다. 기획 단계부터 준비과정에 이르기까지 꼼꼼히 준비하더라도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해 입상을 못 하게 되면 대다수의 학생들은 그 단계에서 그냥 멈추는 경향이 있다.
◇아직은 완생 아닌 미생...초석 다져야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에 있어서 큰 평가 항목 중의 하나인 ‘발전가능성’이란 점은 의외로 ‘학교생활충실도’라던가, ‘전공적합성’ 등의 항목에 밀려 놓치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과정 중 진로탐색과 심화탐구 등 충실한 과정을 거친다고 하더라도 완전체가 아닌 미완의 단계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고교 과정은 그 자체를 충실히 이행함도 중요하지만 대학에 진학하여 보다 심화된 전공분야로 나아가기 위한 초석을 다지는 단계라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시험을 보기 위해 개념정리부터 심화문제 풀이까지 충분한 준비과정을 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험을 보고 난 후 틀린 부분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거쳐야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듯이 하나의 대회를 참여하는 데에도 기획단계, 준비과정 등도 중요하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얻었을 때에도 그 잘못된 결과를 꼼꼼하게 살펴서 원인을 분석하여 발전의 디딤돌로 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결과보고서를 꼼꼼히 작성하여 담당 선생님께 제출하는 적극성을 보이는 것도 좋다. 학생부 기재 여부와 관계없이 실패를 거울삼아 발전의 밑거름으로 삼으려는 열정을 선생님께 보여드려 선생님의 조언도 적극적으로 얻도록 한다.
물론 이렇게 결과보고서를 쓰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정말 부족했던 부분이 무엇이었는지를 조금씩 파악하게 되고,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함께 보다 발전된 다음 기회를 도모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여름방학, 그리고 반전의 시작...
P군이 한번 무너진 페이스를 다시 끌어올리는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본인의 의지가 너무나도 확고해 최고의 정점에서 거의 바닥까지 떨어지는 자존심의 상처를 받아봤기 때문에 지속적인 상담을 통해서 부족했던 부분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되짚어가며 역전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을 극복해내고자 하는 본인의 의지가 강했던 점이 많은 도움이 됐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꼼꼼한 관리를 해 줄 시간적 여유가 많이 생기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이전보다 빈번한 상담을 통해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우선 지난 3개 학기 분량의 교과 과정을 다시금 꼼꼼하게 정리하도록 하였다. 약점별 분석은 물론이거니와 P군 스스로 시험 출제위원이 되어 문제를 출제해 보도록 주문했다.
한편 지금까지 겪었던 본인의 고교 생활에 대한 자기소개서를 써 보도록 주문했다. 사회적 기업 CEO가 꿈인 P군이 맛본 실패의 쓴 맛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큰 보약으로 작용할 것이다. 성공의 단 맛만 아는 사람보다 실패의 쓴 맛을 아는 자가 느끼는 단 맛이 훨씬 강할 것이기 때문이다. P군은 이를 통해 스스로 지나온 과정을 냉정하게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에는 예전의 자신감 넘치고 미소 가득한 표정의 P군의 모습을 어느 정도 찾을 수 있었고 앞으로의 2학기가 무척이나 기대가 되는 상황이었다. 자사고를 다니는 학생들 중에는 사실 P군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는 경우를 상당히 많이 볼 수 있다. 내신 성적 취득의 불리함을 어느 정도 감수하더라도 풍부한 교내 활동을 통해 장점을 만들어 간다는 생각인데, 자칫 방심할 경우 내신 성적 취득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물론 P군처럼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오히려 하나의 전환점이 되는 계기로 삼게 된다면 학생 본인의 가치관도 긍정적으로 변화하게 되며,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도 더욱 커지게 된다. 자사고라고 하는 특별한 상황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학생 스스로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물론 혼자서 감내하기에는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의지를 가질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하겠다. 글/김형일 거인의어깨 교육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