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영배 기자]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부활과 안전진단 강화 등 주택시장에 고강도 규제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아파트 후분양제 도입을 위한 관련법 개정안이 국회 심의를 앞두고 있어 시장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정동영 의원(민주평화당)이 대표발의한 주택법 개정안으로 공정률 80% 이후에 아파트를 분양하도록 하고 있다.
당초 지난달 2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위에서 논의될 예정이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3월로 일단 미뤄진 상태다.
국토교통부도 지난해 11월 발표한 주거복지로드맵을 통해 공공분양주택부터 후분양을 단계적으로 늘리고 민간분양주택은 인센티브를 제공해 후분양 선택을 유도한다는 방향을 내놓은 바 있다.
또 이번 주택법 개정안 발의와 관련해서 국토부가 ‘공정률 80% 이상’이 아니라 초기에는 ‘60% 이상’으로 해서 시장에 주는 충격을 최소화하자는 의견을 보낸 것으로 전해지면서 후분양제 도입은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이다.
아파트 후분양제는 말 그대로 공사가 마무리된 후에 분양하는 방식이다.
어떻게 보면 소비자가 제품을 구입할 때 완성된 제품을 먼저 확인한 뒤 구입 여부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후분양이 아닌 지금의 선분양 방식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후분양제 도입을 꾸준히 요구해 왔고,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에는 도입을 추진하다가 포기한 적도 있다.
그렇다면 지난 1977년 도입돼 지금까지 시행되고 있는 선분양제도는 무엇이 문제일까?
후분양 도입을 요구하는 측의 주장은 앞서 언급했던 대로 3000만원짜리 승용차를 살때도 배기량 등을 꼼꼼히 살펴보고 구입여부를 결정하는데 주택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품질 담보도 없이 상품을 구입해야 하는 이상한 구조하는 것이다.
또 선분양으로 인해 분양권 전매라는 것이 발생하고, 이를 통해 막대한 시세차익을 챙기는 것은 물론, 주변 집값까지 끌어올리는 등 주택시장구조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주장도 펼친다.
그리고 건설사들은 분양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 뒤, 그 자금을 토대로 아파트를 지어 분양대금을 챙기는 이른바, '땅 짚고 헤엄치기 식' 사업을 하고 있다는 논리다.
한 마디로 아파트 선분양이 건설사와 투기세력의 배만 불리면서 돈 없는 서민들만 힘들게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일견 보면 일리가 있다.
그래서 도입 40년이 지나면서 우리에게 익숙해진 선분양제도를 후분양제도로 바꾸면 이런 문제들이 모두 해결될까? 또 선분양에 따른 실익은 없는 것일까?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소비자가 지어진 아파트를 직접 확인한 뒤 분양 여부를 결정할 수 있고, 공사 과정에서 건설사 부도 등으로 인한 위험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또 상황에 따라 고무줄처럼 줄었다 늘었다하는 분양권 전매제한 얘기도 없어질 것이다. 아파트 완공시점에서 분양이 이뤄지기 때문에 사실상 분양권 거래가 존재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성된 제품(아파트)을 보고 청약여부를 결정한다고 하지만 확신을 하기가 쉽지 않다. 사용허가(준공)가 나오고 직접 살아보기 전까지는 누수가 있는지 결로가 발생하는지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게 사실이다. 승요차도 구입 당시는 아무런 문제없지만 얼마되지 많아 문제가 발생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분양자금 부담도 선분양보다 커질 수밖에 없다. 선분양에서는 계약금-중도금-잔금 과정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쪼개서 부담이 가능하지만 후분양에서는 분양대금 전체를 일시에 지불해야 하는 만큼 적지 않은 규모의 목돈이 필요하다.
별다른 자산 없는 근로자나 서민들 입장에서는 내 집 장만이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또 아파트 건설비를 사업주(또는 건설사)가 전액 부담해야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분양가 인상 요인도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사업주들의 건설비 중 상당부분을 금융권에서 조달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자는 소비자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건설업계가 후분양제 도입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택건설협회는 “후분양제 도입으로 금융비용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에 중소주택업체는 사업추진 자체가 어려워 대형건설사 위주의 시장 독점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면서 "중소주택업체의 공급 중단에 따른 주택공급량 감소 및 수급불균형으로 주택가격 상승 등의 부작용을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협회는 또 “후분양제는 주택구입자가 전액을 일시에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무주택 서민들의 내집 마련 기회가 축소돼 주거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며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과 캐나다, 영국, 프랑스, 일본 등 해외 주요 국가를 봐도 후분양제를 법제화한 곳은 없고, 법률 제한 없이 사업 여건에 따라 사업 주체가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있다”며 후분양제 도입을 우회적으로 반대했다.
누차 얘기하지만 경제라는 것은 살아 있는 생물처럼 기본적으로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라는 시장 논리에 의해 작동한다.
정책이라는 인위적 변수를 통해 흐름을 바꾸는 것은 말 그대로 일시적인 미봉책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선분양제도는 안되고 꼭 후분양제도여야 한다는 이분법적 접근보다는 현재 시장에서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공급자와 수요자, 그리고 관련 산업이 함께 상생할 수 있는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최근 강남 재건축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후분양 방식의 공급도 결국 시장논리에서 나오고 있는 것 아닌가?
[미디어펜=김영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