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수차례 부인 불구, 자사사이트 '사망확인'기사 아직도 올려놔 빈축

   
▲ 곽경수 전 청와대 춘추관장(언론학박사)
지난 16일 아시아엔이라는 인터넷 매체가 삼성 이건희 회장의 사망을 무책임하게 보도한 뒤  진위를 두고 논란이 빚어졌다. 아시아엔은 이 회장이 사망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사흘이 지난 지금까지도 홈페이지 최상단에 이 기사를 올려두고 있다. 아시아엔은 심지어 “삼성전자측은 18일 정정보도 청구를 준비하고 있다고 본지에 알려왔다“는 편집국 명의의 고지까지도 이회장 사망기사 바로 밑에 위치시켰다.

아시아엔은 이 두 기사를 한꺼번에 게재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우리는 삼성의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는다. 이 기사는 사실이다.’라고 항변하고 있는 듯하다. 삼성전자가 공식적으로 이회장의 사망을 부인했고, 이회장이 입원하고 있는 삼성서울병원 병원장이 두 차례의 기자회견을 통해 이회장의 병세가 호전되고 있다고 밝혔는데도 불구하고 아시아엔이 이회장의 사망기사를 계속 게재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국민들은 왜 이러한 무책임한 보도를 무시하지 못하는 걸까.

먼저 아시아엔의 입장에서는 전혀 손해볼 것이 없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일단 이 기사 때문에 서버가 다운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아시아엔 홈페이지를 방문했고 따라서 ‘듣보잡’ 수준이었던 아시아엔이라는 매체를 국민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킬 수 있었다. 엄청난 홍보 효과다. 또한 이 기사가 사실이라면 특종을 한 것이고 사실이 아니어서 삼성으로부터 소송을 당해봐야 그동안 판례상 언론이 크게 책임진 사례도 별로 없기 때문에 그다지 손해가 아닐 수 있다. 

   
▲ 신생 인터넷신문 아시아엔이 지난 16일 이건희회장이 마치 '사망'한 것처럼 악의적으로 보도한 후 아직도 자사 사이트에 이를 버젓이 걸어놓는 황당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는 저널리즘의 정도를 벗어난 것으로 우리언론의 민낯을 보여준 사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삼성과 삼성서울병원대표는 호흡곤란증을 겪었던 이회장이 현재 치료가 잘 돼 증세가 호전되고 있으며, 조만간 일반병실로 옮길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신문은 오보에 대한 책임을 전혀 지지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회장이 지난다 중순 해외출장을 마치고 인천공항으로 귀국하고 있다.

더구나 그 대상이 삼성이기에, 삼성과 소위 ‘맞짱뜬다’는 사실 하나만 갖고서도 아시아엔은 거대자본에 핍박받는 언론이라는 이미지까지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이건희 회장 사망’ 이라는 기사의 내용은 묻혀지고 ‘거대 자본 대 이에 저항하는 언론사’의 프레임만 부각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이 기사에 관심을 갖고 혹시 사실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동안 삼성으로 인해 발생한 다양한 학습효과 때문이다. 먼저 삼성 X파일사건의 경우 발생은 1997년이었지만 보도가 된 것은 2005년으로 무려 8년이라는 시차가 있었다. 더구나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았던 검사들의 실체는 그로부터도 일정기간이 지난 뒤 알려지게 되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의 백혈병 사건도 결국 그 여성이 사망한지 7년이 지난 올해가 되어서야 삼성이 백혈병에 걸린 직원과 가족에게 사과하고 보상하겠다는 발표를 하였다. 그것도 반도체 제조 공정과 백혈병 발병의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단서를 달아서.

이처럼 삼성과 관련한 사건의 경우 진실이 즉각즉각 알려지기 보다는 한참 후에 드러났던 적이 많았기에 이번 이건희 회장 사망설도 그런 맥락은 아닐까라고 국민들이 생각했을 수도 있다. 또 최근 삼성SDI와 제일모직의 합병, 삼성SDS 상장 등 후계구도와 관련된 일들이 삼성그룹 내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이건희 회장이 입원하면서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모종의 일들이 비밀리에 진행 되고 있어 사망발표를 늦추는 것이 아닐까라는 의혹도 있을 수 있다.
 

더구나 세월호 사고 수습과 관련해 정부의 발표가 수시로 달라지면서 정부의 발표를 못 믿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발표를 그대로 보도한 언론들에 대해서도 불신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건희 회장 사망설이 나오자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국민들로서는 이런 보도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 보도는 위와 같은 사정을 감안해도 잘못된 것이다. 사망진단이라는 것은 의사가 최종적으로 확인해야 이루어진다. 이회장이 입원한 병원에서 병원장이 아니라고 부정했으면 이를 믿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나중에 혹시 이 발표가 잘못된 것으로 드러나면 그 때 책임을 물으면 된다.

결국 아시아엔의 ‘이건희 회장 사망보도’는 공공의 이익보다는 언론사 자체의 이익을 중시하는 최근 한국 언론의 경향과, 기성 언론에 대한 팽배한 불신 때문에 대안 언론에 자꾸만 눈길을 주는 국민, 이 두가지가 결합되어 발생한 일종의 현상이라고 하겠다.

언론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 밀턴은 '진리란 자유롭고 공개된 회의석상에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것을 허용할 때만 살아남는 독특한 힘을 갖는다.'고 말했다. 이 말은 언론이 정부 등 외부적 제약 없이 ‘사상의 자유 시장’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상의 자유시장이 중요한 것은 언론이 공론의 장으로서 건전한 역할을 해야 우리의 자유민주주의가 성숙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은 외부의 간섭으로부터는 자유롭지만 국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 사상의 자유 시장은 국가안전이나, 질서 유지, 그리고 공공의 이익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우리 언론은 정치·경제적으로 거대해지면서 공익보다는 언론사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국민의 관심을 오도시킨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번 이건희회장 사망 보도도 이러한 언론이 언론의 자유만을 강조하고 국민에 대한 책임을 등한히했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고 때 확인이 안된 보도 때문에 우리나라 전체가 얼마나 혼란을 겪었었는지 우리 언론은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한다./곽경수 전 청와대 춘추관장,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언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