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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의 사익(私益)추구 행위(11)-제6장 투표 시장: 로그롤링

본 코너에서는 ‘정치인들의 사익(私益)추구 행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나쁜 민주주의: 정치인·관료들은 왜 사익만 추구하는가?』 (이몬 버틀러 저, 이성규·김행범 옮김, 북코리아, 2012년)를 연속적으로 게재하기로 한다.[편집자주]

   
▲ 이성규 안동대 무역학과 교수
■ 로그롤링의 만연
명시적 로그롤링은 많은 대의정치(代議政治) 제도 하에서 아주 흔한 일이다. 특히 미국에서 명시적 로그롤링은 공공연한 일이다. 미국에서 ‘연방제’는 미 의회 의원들이 유권자들로부터 그들 자신의 주나 선거구의 이익을 위해 분투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으며, 전 국민을 상대로 한 정당의 정책은 뒷전 또는 두 번째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유럽 국가들’에서 명시적 로그롤링은 그렇게 분명하지 않다. 왜냐하면 유럽 국가들의 경우 지역구보다 전 국민들을 우선시 하는 당의 규율이나 정책이 미국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 수준’에서는 명시적 로그롤링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유럽연합 국가들 간에 여러 가지 교섭들이 이루어져야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EU의 각종 기구들은 여러 나라에 하나씩 분산되어 있고( 예를 들면, 룩셈부르크에는 투자 은행이,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는 유럽 중앙은행이, 브뤼셀과 스트라스부르그에는 유럽의회가 있음), 새로운 기구들이 만들어지면 정해진 차례에 따라 회원국에 할당되며, EU 내 최고위직들(예를 들면, EU 대통령, EU 이사회 의장, 각종 위원회 위원장 등)은 회원국들이 번갈아 가면서 맡고 있다.
 

EU의 모든 결정들에 있어서 어떤 정책 이슈들에 대해서는 ‘만장일치’를 요구하고 있으며, 이는 개별 회원국들이 그 이슈에 대한 합의를 방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만장일치제 하에서 의사결정의 어려움 때문에 EU가 제안하는 대부분의 이슈들이 주로 폐기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그 결과, 유럽연합은 만장일치제 대신에 ‘가중 다수결 투표제’(qualified majority voting)를 선호하고 있다. 그러나 가중 다수결 투표제 하에서도 로그롤링의 여지가 상당히 존재한다.
 

만장일치제(unanimity rule) 하에서 어떤 EU 회원국이 어떤 제안을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은 다른 회원국들에 의해 자신의 중대한 이익이 무효가 되는 것을 막는 최후의 유용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거부권 행사(veto) 위협은 또한 각 회원국들에게 커다란 ‘투표거래’의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투표거래의 기회는 다수의 국가들로부터 값비싼 양보를 이끌어내는 데 사용될 수 있다. 거의 모든 국가들에 의한 그러한 양보를 이끌어내려는 의지는 몇몇 매우 균형이 안 잡힌 정책들을 양산하게 되었고, 그 결과 유럽연합의 예산에 끊임없이 압박을 가하고 있다. 사실상, 많은 경우에 유럽연합의 의사결정 과정들은 현대의 공공선택 연구자들에 대해 연구 주제의 풍부한 원천을 제공해 주어 왔다.
 

암묵적 로그롤링은 많은 단계에서 강하게 발생하고 있다. 특히 정당과 그들의 선거 프로그램의 결정과정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정당들은 본래부터 상이한 이익들의 집합체(assemblies)로서 상당한 규모와 영향력을 가진 ‘활동가 집단’을 결성하기 위하여 상호 지지하기로 합의한 집합체이다. 정당들이 종종 내부 의견불일치와 분열 또는 불화를 겪는다는 사실은 이러한 ‘투표거래 파트너십’의 증거이기도 하다. 또한 정당들이 그들의 선거 프로그램들을 짤 때 그들은 유권자들과 함께 투표거래에 가담하게 된다.

정당들은 선거에서 유력한 집단들로부터 지지를 얻기 위하여 정책 꾸러미를 고안 또는 구상하려 할 것이다. 만약 정당들이 가장 강하게 고수하는 정책들이 일반 대중들에게 인기가 없다면 그들은 이들 정책들과 투표자들이 좋아하는 인기 있는 정책들을 서로 조화시키려 할 것이다. 그러나 정당의 당원들은 이러한 절충안을 크게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만약 투표자들이 ‘인기 있는’ 정책들을 원한다면 그들은 제안되는 꾸러미의 한 부분으로서 ‘인기 있는’ 정책들과 함께 인기 없는 정책들도 함께 받아들여만 할 것이다.

 이와 동일한 것이 투표발의(ballot initiative; 이를 ‘국민발의(發議)’, 또는 ‘국민투표 회부’라 함)에서도 나타난다. ‘투표발의’는 미국의 경우 ‘지역에서의 국민투표’(local referendum)의 일종으로 투표자 집단들이 새로운 도로건설이나 학교 건립을 위한 공채 발행안이나 조세 인상안과 같은 정책발의들(policy initiatives)을 제안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종종 동일한 발의안 속에 여러 다른 정책들이 포함되기도 한다. 이것은 소수자들이 ‘전체 꾸러미’에 찬성 투표하도록 유인하려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왜냐하면 비록 소수자들이 다른 많은 정책들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판단하지만 자신들에게 소중한 특정 정책이나 사업을 획득하기 위하여 전체 꾸러미에 대해 찬성 투표하려하기 때문이다.

■ 의회 및 입법과정에서의 로그롤링

정당 지도자들도 일단 집권에 성공하기만 하면 의회로 갈 정책 법안들(policy measures)에 대해 결정을 할 때 로그롤링에 가담하게 된다. 내각의 장관들은 어느 한 동료 장관에게 이익이 되는 법률안을 지지하기로 합의할 수 있다. 비록 각료들이 그 동료 장관이 제안하는 법률안을 크게 좋아하지 않을지라도 나중에 상황이 역전되어 자신들이 제안하는 법률안에 대해 그 장관이 지지해 줄 것이라는 (종종 무언의) 추정 하에 그의 법률안에 지지를 보낼 것이다.

의회로 가는 거의 모든 법률안들은 그 자체가 ‘암묵적 로그롤링’의 대상이 될 것이다. 법률안의 제안자들은 의회에서 소수자들의 지지를 얻어 무난한 통과를 보장하기 위해 여러 가지 양보를 하거나 몇 가지 세부사항들을 추가하려하기 때문이다. 

때때로 이러한 과정의 결과 터무니없는 사업들이 법률안에 포함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미국이 2008년에 실시한 부실은행들을 구제하기 위한 ‘긴급구제 법안’을 들 수 있다. 이 긴급구제 법안이 처음에 미 의회에 제안되었을 때 ‘몇 페이지’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의원들은 이 법안이 매우 중요해서 무조건 통과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지지를 대가로 모든 종류의 요구 사항들을 추가시킬 수 있게 되었다.

여러 차례의 투표거래를 거친 후 이 구제 법안은 마침내 ‘451페이지’에 이르게 되었고, 최초의 목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많은 양보들이 포함되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많은 양보들은 수많은 이익집단들의 힘에 의해 추가되었다. 추가적 양보사항들로는 자동차 스포츠 경기장에 대한 세제혜택, 20년 전에 엑슨발데즈사(社)의 석유누출에 의해 피해를 입은 어업부문에 대한 세제혜택, 자전거를 타고 직장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에 대한 보조금, 모직물 생산자들에 대한 1억 4천 8백만 달러에 이르는 세제 감면, 럼주(酒) 산업에 대한 1억 9천 2백만 달러에 이르는 물품세 환급, 아동용 나무 화살 제조업자들에 대한 2백만 달러의 세제 혜택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부실 은행에 대한 구제조치와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이와 반면에 영국의 경우 부실 은행들을 구제하기 위한 비상조치들은 3일이 지나서야 비로소 의회에서 통과되었다. 그 이유는 다음 3가지이다. 즉, (i) 영국의 의회 등원 통지 제도(whipping system; 원내 총무가 의원에게 보내는 등원 통지 제도를 말함), (ii) 영국의 엄격한 의회 규율, (iii) 의원 내각제 실시 등의 이유로 부실 금융 구제안이 통과되는 데 3일이 걸렸다. 영국 의회의 의원들은 당에서 지시한 대로 투표하고, 모든 법안들에 대해 당의 노선을 지지하기로 되어 있다. 따라서 영국에서 로그롤링이 미국에서보다 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영국에서 로그롤링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 로그롤링의 효과

비록 로그롤링이 사회적으로 불쾌감을 주는 ‘해로운’ 활동처럼 보이지만 공공선택 연구자들에 의하면 로그롤링은 때때로 ‘유익한’(긍정적인) 측면과 ‘효율적인’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첫째, 로그롤링은 하나의 이슈에 대한 투표자들 간의 상이한 의견의 강도를 나타낼 수 있다. 이 경우에는 로그롤링이 ‘효율적’이다. 그러나 ‘단순 1인 1표의 국민투표’는 투표자들 간의 의견의 강도를 나타내지 못한다. 어떤 하나의 이슈에 대해 강렬하게 느끼는 소수자 집단들은 투표거래나 심지어 투표매수를 통해 그들의 열망이 적절히 반영되기를 바랄 것이다.
 

일상의 한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우선, 세 명의 학생 룸메이트들이 ‘공동으로’ 텔레비전 1대를 살 것인지의 여부를 두고 투표로 결정한다고 가정해 보자. 텔레비전 1대의 가격이 비싸서 어느 누구도 혼자의 돈으로는 그것을 살 수 없다고 가정한다. 한 명의 학생은 텔레비전 구입을 간절히 원하지만 나머지 두 학생들은 각각 매우 낮은 강도로 반대한다. 이 경우에 투표가 진행된다면 텔레비전 공동구입안은 기각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 집단 내에서의 ‘의견의 강도’를 반영하지 못한다. 그러나 만약 텔레비전 구입을 간절히 원하는 학생이 다른 한 학생에게 찬성 투표하는 대가로 돈을 지불하거나(투표매수) 또는 나중의 다른 투표에서 그의 호의를 되갚아 주겠다(투표거래)고 제안한다면, 의견의 강도가 반영되어 이 집단은 텔레비전을 구입하게 될 것이다.
 

둘째, 투표거래는 ‘긍정적인’(유익한) 효과를 가질 수 있다. 특정 지역의 주민들에게는 어느 한 사업(예를 들면, 새로운 도로 건설)으로부터 발생하는 혜택(편익)이 당해 사업에 드는 비용을 초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특정 지역의 주민들에게는 그 사업이 마땅히 진행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새로운 도로를 거의 이용하지 않을 다른 지역의 투표자들은 더 많은 조세를 추가적으로 지불하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에 그 사업은 진행되지 못할 것이다.

이 경우에 투표거래는 ‘이롭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비록 그 사업이 가치가 있지만 그 사업이 진행되려면 민주적 과정(즉, 로그롤링)을 통해 투표거래가 이루어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를 설명하기 털럭(Gordon Tullock)은 다음 예를 들고 있다. 즉, 9명의 투표자들이 있고, 각자에게 1파운드의 세금 지불이 발생하지만 15파운드의 혜택이 돌아가는 하나의 법안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먼저, 이 법안에 대해 8명이 반대하고 오직 1명만이 찬성한다면(즉, 8명의 패자와 1명의 승자가 있다면) 총 편익이 총 비용을 초과하더라도 이 법안은 통과되지 못할 것이다.(이 경우 총 편익은 찬성한 1명이 얻는 15파운드이고, 총 비용은 반대한 8명이 조세로 지불하는 8파운드이다) 그러나 이 법안에 반대한 8명이 다른 유사한 법안으로부터 혜택을 얻는다면 9명의 투표자들은 투표거래를 통해 상대방의 법안(사업)을 지지(찬성)하는 것이 그들 모두에게 이익을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는 투표거래의 유익한(긍정적) 측면을 나타낸다.
 

셋째, 그러나 로그롤링은 ‘부정적’ 결과도 초래할 수 있다. 어떤 하나의 법안으로부터 9명의 투표자가 얻는 혜택은 각각 7파운드이고 조세는 여전히 각각 1파운드라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각 투표자는 4개의 다른 사업들에 대해 투표를 거래함으로써 다수결(= 5명)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면 5명의 각 투표자는 각각 7파운드의 혜택을 얻지만 총 5파운드만 조세로 지불하게 된다. 그 결과 5개의 각 사업이 진행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각 사업에 드는 총 비용은 9파운드이고, 동 사업으로부터 각 투표자가 얻는 혜택은 7파운드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경우 로그롤링은 비효율적 또는 부정적 결과를 가져다준다.

(출처: 『나쁜 민주주의: 정치인·관료들은 왜 사익만 추구하는가?』 (이몬 버틀러 저, 이성규·김행범 옮김, 북코리아, 2012년) /이성규 국립안동대 무역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