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원 포인트 개헌' 주도 박상철 경기대 부총장 "더 많은 대통령 권한 분산 필요"
[미디어펜=김소정 기자]문재인 대통령 개헌안이 발표되자 보수 시민사회에서는 “사회주의 관제 개헌”이란 비판과 진보 시민사회에서는 “좀 더 개혁적이어야 했다”는 반응이 충돌하고 있다.
국민의 반응이 “편향됐다”와 “부족하다”고 엇갈리는 가운데 한 진보 헌법학자가 대통령 개헌안에 대해 “역사의식이 부족하고, 국회통과를 염두에 두지 않은, 대통령의 철학이 부족한 개헌안”이라는 지적을 내놓아 주목된다.
노무현 정부 때 개헌론을 주도, 대통령 자문 헌법개정TF 위원장을 지낸 바 있는 박상철 경기대 부총장(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은 대통령 개헌안에 대해 “너무 지나치게 나간 조항이 있는가 하면 너무 소극적이거나 부족한 조항이 있었다”며 “헌법의 효력은 법률로 나타나는 것인데, 헌법 조항에서부터 반대 의견을 불러오는 대목이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그가 지적한 문제 조항은 대표적으로 토지공개념과 같이 법률로 규정하면 될 것까지 헌법 조항을 지나치게 구체화시켜서 ‘사회주의 개헌’이라는 오명을 붙인 점이다. 야권에서는 대통령 개헌안에 대해 정파적, 이념적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박 교수는 “개헌은 법률 구성을 방해하는 요인을 없애는 것으로 충분하다”면서 “만약 현행 헌법이 ‘토지는 절대 개인소유로만 인정한다’라고 돼 있었다면 이 조항을 삭제할 필요가 있었지만 굳이 토지공개념 규정을 넣을 필요까지는 없었다”고 말했다.
“토지공개념은 이미 실현되고 있는데 굳이 헌법 조항으로 만들어서 야당에 시비거리만 줬다”는 것으로 “‘문재인 청와대’가 꼭 원하는 것인데 법률로 안될 것 같으니까 헌법으로 만들겠다는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회통과가 어렵다는 것은 그만큼 이해 관계자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헌법에서 언급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반면, 헌법 전문 개정안에 대해서는 소극적이었다는 질타가 나왔다. 박 교수는 ‘촛불혁명’을 포함하지 않은 점을 들면서 “전문은 역사의식을 담는 것인데 촛불혁명의 지난 경위만이라도 언급했어도 되는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또 전문에 '5.18 민주화운동'을 포함시킨 것에 대해서는 5공 때 타협안인 법률적 용어를 사용한 것을 지적했다. ‘부마항쟁’ ‘6.10항쟁’처럼 ‘5.18항쟁’으로 했어야 한다는 지적으로 “아직도 호남인들은 광주시민들이 공권력에 의해 학살당한 이 사건을 명백하게 항쟁으로 격상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 개헌안이 ‘대통령 4년 연임제’를 주장하면서 ‘의원내각제’와 대비시켜 그 폐해를 주장한 것도 잘못된 프레임이라는 지적을 내놓았다. 조국 민정수석은 청와대 발표에서 “국회에게 국무총리 선출권을 주는 것은 ‘분권’이라는 이름 아래 변형된 의원내각제를 대통령제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 바 있다.
야당들이 ‘총리 선출제’나 ‘총리 추천제’를 주장하는 것에 대한 반론이었지만, 박 교수는 이왕 국민들에게 하는 설명이라면 5년 단임제 폐해를 부각시켜서 4년 연임제를 관철시키려는 노력을 했어야 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박 교수는 “청와대는 ‘4년 연임제’로 권력구조를 반드시 바꿔야 한다는 필요성을 국민들이 강력하게 느끼도록 어필했어야지 정치권에 논쟁거리를 주는 결과를 낳은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
결론적으로 대통령 개헌안은 권력구조와 지방분권, 국민참여 직접민주주의 3가지를 핵심으로 국회에서 논의하도록 그 방향성만 제시했어야 하는데도 이번 발표로 야당과 합의를 보기에 너무 많은 전선을 펼쳤다는 것이 박 교수의 가장 중요한 지적 사항이다.
박 교수는 “청와대 발표를 들으면서 과연 개헌 의지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국회에는 압박용이 됐고, 국민은 혼란스러워졌다”며 “대통령이 개헌안을 제시할테니 이 가운데 국회가 협상 가능한 것만 합의해보라는 의미로 들렸지만 이번에 개헌이 끝내 무산되면 자칫 대통령 권력누수를 불러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민주평화당도 이번에 청와대가 대통령 개헌안 발표를 통해 거부한 ‘국무총리 국회 추천’에 대한 여당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면서, “민주당이 청와대 입장만 대변하지 말고 소신과 원칙을 갖고 협상에 나서지 않는 한 대통령 개헌안은 무용지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야당은 6.13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까지 하면 선거에 영향을 미쳐 자신들이 불이익을 볼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과 여당이 아무리 밀어붙여봐야 쉽게 물러서지 않을 전망이다. 따라서 청와대는 개헌 국민투표를 밀어붙여서 야당이 지선에서 불리하도록 하겠다는 발상보다는 이제라도 여야가 개헌 시기와 내용을 확실히 합의하도록 하는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
박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미투 운동’을 지지했지만 오히려 민주당이 크게 역풍을 맞은 것처럼 여당은 대통령 개헌 발의 후 끝내 무산될 경우 야당의 존재감만 부각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며 “국민들은 개헌의 필요성을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에서 느끼기 시작했고, 그 만큼 국민들이 충분하다 느낄 정도로 대통령 권한을 분산시킨다면 야당도 더 이상 반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청와대나 여당은 이번 지방선거 동시투표를 고집부릴 게 아니라 차선책으로 야당과 충실한 협상을 통해 개헌 시기와 내용을 약속받는 것으로 선회해야 한다”며 “여야가 6.13 지방선거 이후 7.17 또는 8.15를 계기로 개헌 시기와 내용을 확실하게 결정하는 것만으로도 문 대통령의 개헌 계획은 성공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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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가운데)이 2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선거제도 개혁, 정부 형태, 사법제도, 헌법재판제도 등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을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진성준 정무기획비서관, 조국 민정수석, 김형언 법무비서관./사진=청와대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