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동건 기자] '머니백'은 웃음을 안다. 한때 개그맨을 꿈꿨다는 허준형 감독은 매 장면을 허투루 쓰지 않았고, 전후 맥락을 정교하게 연계해 막강한 웃음 타율을 완성했다. 덕분에 완전히 새로운 범죄영화가 탄생했다.
허준형 감독의 데뷔작 '머니백'은 하나의 돈가방을 차지하기 위해 7명의 사내들이 벌이는 추격전을 그린 작품.
아픈 어머니의 수술비를 위해 사채 빚까지 끌어다 쓴 민재(김무열)와 그에게서 돈을 받아내야 하는 양아치(김민교), 사채업자 백 사장(임원희), 백 사장이 지원하는 문 의원(전광렬), 도박 빚으로 백 사장에게 총을 저당 잡힌 최 형사(박희순), 백 사장의 사주를 받은 킬러(이경영), 택배 기사(오정세)의 돈가방을 향한 레이스를 담았다.
단번에 케이퍼 무비를 떠올리게 하는 직관적인 타이틀의 '머니백'은 늘 봐왔고 진부할 것 같은 작품이지만 참 많은 장점을 가진 작품이다. '머니백'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웃음은 영화를 관통하며 우리 사회의 자잘한 표정들을 포착하고, 웃픈 상황들을 자유자재로 연주하며 시종일관 몸을 들썩이게 한다.
가령 어머니의 수술비를 구하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던 민재는 깜빡 속아 구입한 가짜 가죽 벨트로 인해 자살에 실패한다. 다시 비장하게 죽음을 맞으려 했지만 택배 기사가 초인종을 눌러대는 탓에 또 한 번 울상. 옆집에 전해달라는 택배물 속에서 총 한 자루를 발견한 그는 아무런 생각 없이 방아쇠를 당기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아이, 죽을 뻔했네."
그렇게 총을 얻게 된 민재는 사채업자 백사장의 불법 도박장에 들어서 돈가방을 훔치고, 이 때부터 얽히고설킨 7인의 추격전이 시작된다.
정해놓은 주제의식만을 향해 달리며 선혈을 낭자하는 멍청한 범죄물보단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추격전에서 포착되는 영리한 풍자가 낫다. 취준생부터 국회의원까지 사회계급을 막론한 인간의 적나라한 탐욕과 돈 앞에 장사 없는 우스꽝스러운 몸사위가 '머니백'이 전하는 메시지. 돈을 위해서라면 총·도끼를 서슴없이 드는 인물들과 눈앞에 겨눠진 총구도 무서워않는 대한민국 아줌마의 모습에 박희순은 "할리우드 영화는 총이면 안 되는 게 없는데 한국에서는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돈다발이 제일 무섭다는 '머니백'인 만큼 범죄영화 특유의 섹시미를 억지로 연출하지도 않았다. 잔혹성이나 강렬한 감각을 주입하는 대신 범죄물의 전형적 소재를 활용한 해프닝을 연출하는 데 더 머리를 굴렸다. 허준형 감독의 이야기꾼 재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돈가방, 총, 도끼, 야구 배트, 물에 젖은 돈다발 등 7인 사이에서 오가는 아이템의 행방과 이를 둘러싼 인물들의 각양각색 몸짓은 끝을 알 수 없는 이야기의 윤활유가 된다.
캐스팅에 있어서도 뻔한 스타플레이어가 없다는 점이 도리어 '머니백'을 특별하게 만든다. 아이돌 못지않은 팬덤을 자랑하는 스타 배우보다는 제각기 깊은 연기 내공과 남다른 개성을 자랑하는 충무로의 배우들을 기용했다.
세상 억울한 얼굴의 김무열은 전작 '기억의 밤' 속 섬뜩한 잔상을 단번에 지워냈고, 찌질함을 몸에 두른 그가 박희순을 향해 중지를 들어 올릴 때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는 그야말로 맛깔스럽다. 그뿐일까. 어딘가 허술한 킬러 이경영은 사랑스럽고, 얼빠진 택배 기사 오정세는 남자들에게 없는 모성 본능마저 일으킨다. 모든 캐릭터가 갖고 있는 빈틈이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매력적인 인간군상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자칫 산만해질 수 있는 7인 추격전 구도를 매끄럽게 완성시켜 마치 동적인 '저수지의 개들'을 보는 듯하다. 엔딩까지도 쫄깃한 긴장감과 유머 기조를 유지하는 허준형 감독의 재치에 또 한 번 반했다.
[미디어펜=이동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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