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유진 기자] "성동조선·STX조선해양 해봤자 2000명 정돕니다. 대우조선이나 삼성중공업 구조조정 할 땐 한 달에 그 정도는 줄줄이 짐 싸고 나왔어요. 전체 조선산업 문제로 놓고 보면 큰일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고용위기 특별지역으로 지정된 A 지역 일자리센터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2015년 이후 수주 불황에 직면한 조선업종은 구조조정이 극심했던 관계로 규모 경제상 이번 건은 문제가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어딘지 모르게 씁쓸함이 느껴졌다. 일자리센터마저 중형 조선사의 청산이 두렵지 않다니 정부의 태도도 얼핏 짐작됐다.
|
|
|
▲ 경상남도 창원시에 위치한 STX조선해양 전경/사진=STX조선해양 제공 |
STX조선해양에 대해 정부와 채권단은 '강 건너 불구경' 태도로 일관 중이다. 지난 4일 취재 차 통화한 정부 부처 한 관계자는 노사 간 협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STX조선해양에 대해 "정부가 굳이 나서서 회생시켜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고 선을 그었다.
채권단인 KDB산업은행 측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미 수조 원의 혈세를 지원했던 관계로 더 이상의 신규 자금 투입이 곤란, 오는 9일로 예정된 노사확약서를 계획대로 제출하지 못하면 법정관리가 불가피하다고 못 박았다.
생존까지 남은 시간은 4일, 이 기간 STX조선 노조는 사측의 구조조정안에 반대해 파업과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노조가 주장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근로자의 고통만 강조하는 인력 감축만은 결사반대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태도에는 약간의 어폐가 있다. 확약서 미제출로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설 경우 전체 근로자인 1400여 명의 거취가 불투명해질 수 있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채권단은 STX조선에 대해 조선사에게는 생명과 같은 RG(선수금환급보증) 발급을 중단할 예정이다. 이러면 앞으로의 수주 기회는 모두 사라진다. 다른 방법을 찾을 수도 없다. 이미 한차례 법정관리를 겪은 만큼 줄일 수 있는 몸집이 없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지 한 달 만에 다시 청산 기로에 선 셈인데, 노조는 한 치의 양보도 않고 있다.
노조가 확약서 동의에 나서지 못하는 속사정은 무엇일까. STX조선은 최근 전체 생산직 근로자의 75%인 500여명에 대해 구조조정을 실시하겠다는 자구안을 내놨고 노조는 이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노조 인원의 100%가 생산직이라는 점에서 애초부터 합의가 불가능한 게임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 문제에 대해 정부와 채권단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는 반응이다. 생산직 근로자에 대한 감축안 등은 올해 초 삼성KPMG회계법인이 실시한 컨설팅 결과에 포함돼 있었고 그 결과를 보고 받았던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KDB산업은행 등은 노조원이 생산직 근로자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는 입장을 전했다.
상황이 어찌 됐던 노사확약서 미제출 시 원칙대로 법정관리에 들어서겠다는 방침도 거듭 밝혔다. 노사간 협의가 어려운 점에 대해 중재 의사가 있냐는 물음에는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답변했다.
확약서 내용이 고용불안을 일으킨다는 노조 측 의견에 대해서는 "회사가 망한다는 데 어떻게 동의하지 않을 수 있냐"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상 노조에 모든 키를 건네준 셈이다.
정부는 지난달 8일 STX조선에 대해 회계법인이 실시한 컨설팅 결과를 바탕으로 회생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고정비 감축을 위한 인원 축소안 뿐만 아니라 남아있는 수주 잔량과 각종 유휴자산 매각을 통한 현금자산 확보안 등이 담겼다.
이를 실시하면 충분히 회생 가치가 있다는 판단인데 역으로 생각하면 청산 시 '매각 가치' 등으로도 읽을 수 있다. 금융권은 숫자 논리가 강한 곳이다. 청산 절차 돌입 시 컨설팅 결과를 토대로 각종 자산 매각과 M&A(인수합병) 등을 실시할 가능성도 있다.
단정하면 안되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 지난달 8일 중형조선사 처리 방안 발표 간담회에 참석했던 정부부처 관계자는 M&A라는 최악의 상황 발생 시 기존에 실시했던 컨설팅 결과가 일종의 '가치 지표'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자신을 자른다고 하는 노사확약서에 동의할 근로자는 없을 것이다. 어느 분야든 인력 감축은 노동자가 피해야 할 최대의 숙제다. STX조선 노조의 고민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회사가 통째로 위기에 처하는 현실은 막아야 한다. 정부와 채권단은 노조와 사측의 마음같지 않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STX조선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미디어펜=박유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