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10년, 한국사회의 구조적 변화 분석<상>
|
|
|
▲ 조우석 언론인 |
꼭 10년 전 이맘 때 한국사회가 거대한 불길에 휩싸였다. 2008년 4월 29일 MBC 프로그램 'PD수첩'이 '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를 방영한 직후다. 네티즌을 중심으로 광우병 괴담이 빠르게 퍼졌고, 3일 뒤 광화문에서 대규모 촛불 시위가 촉발됐다.
"미국은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개 사료로도 안 쓴다", "울산에서 농부가 광우병으로 죽었는데, 수돗물-공기로도 전염된다" 등등의 유언비어는 물론이고, 정치 괴담도 일파만파였다. "정도전 예언대로 숭례문이 불타면 나라가 망한다", "민영화로 하루 물 값 14만 원, 감기 치료 10만 원"…. 여학생들은 "15년 밖에 못 살았는데…"라고 울먹였다.
직후 광화문 일대가 100여 일 동안 난장판으로 변했는데, 그게 꼭 10년이다. 한국사회는 그동안 어떻게 변했는가? 그리고 이 난동에서 뭘 배웠는가? 유감이지만 대통령 하야 요구로까지 이어진 당시 도심 폭동을 놓고 우린 올바른 진단을 한 바 없으며, 사회적 합의 역시 이뤄진 적이 없다.
그걸 암시하는 게 지난 7일 조선일보 토일섹션 'Why?'의 프런트면 머리기사로 올라온 이영순 서울대 수의대 명예교수 인터뷰다. 한마디로 시야가 좁아도 너무 좁다. 내용은 "광우병 사태란 과학과 전문가를 믿지 않아 벌어진 일"이란 분석이다. 광우병 폭동을 '과학 대 비과학'으로 몰고 간 건 조선일보 문제의식이 얼마나 협애한가를 스스로 증명한 꼴이다.
광우병 난동 1년 직후 조선일보 기자 셋이 쓴 단행본 <촛불에 길을 잃다>(나남 펴냄)를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폭동 원인을 권력의 대국민 소통 실패 탓으로 보는데, 그 또한 동의하기 어렵다. "(폭동) 동기는 순수했을지 모르나 그건 초기에 잠시뿐"이란 머리말도 우릴 아연케 만든다.
순수한 동기라니? 그렇게 판단했다면 너무 순진하거나 바보, 둘 중 하나다. 초기의 순수함이 변질됐다는 분석도 본질을 모르는 소리다. 상식이지만 광우병이란 빌미이며, 막 들어선 이명박 정부란 우파-우익 정권에 대한 좌파-좌익의 조직적인 불복 투쟁이 핵심이다. 그 점은 10년 세월이 흐른 지금 더 잘 들여다보이는데, 광우병 폭동의 실체적 진실은 너무도 자명하다.
좀 더 거시적으로 볼 경우 광우병 폭동은 한국 사회에 지금 빈틈없이 진행 중인 '느슨한 형태 내전'의 한 매듭이다. 2008년 봄을 전후해 시작해 10년 뒤인 지금 박근혜 대통령 탄핵-재판, 문재인 정부 탄생 이후 펼쳐진 적폐청산 명목의 보수 불태우기에 이르는 전 과정을 살펴보라.
|
|
|
▲ 광우병 폭동은 한국 사회에 지금 빈틈없이 진행 중인 '느슨한 형태 내전'의 한 매듭이다. 2008년 봄을 전후해 시작해 10년 뒤인 지금 박근혜 대통령 탄핵-재판으로 이어진 부수 불태우기다. 사진은 지난해 2월18일 16차 촛불집회에 이석기 석방을 외치는가 하면 이적단체 범민련 깃발까지 나부끼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
건국 이후 유지돼온 반공,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이념적 합의가 깨진 대한민국이 거대한 몸살을 앓고 있다는 게 한 눈에 들어온다. 광우병 파동 이전과 이후로 확 갈라지는 것도 분명하다. 광우병 파동 10년 전 이미 사회의 저류엔 반미-저항의 코드가 깔려있다. 효순-미순양 사건, 그 전의 매향리(미 공군 사격장) 문제, 한미 FTA 반대 등이 그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이후 내내 불안 불안하던 그런 흐름이 보수 우파 이명박 정부의 등장을 계기로 거대하게 폭발했던 게 광우병 폭동이다. 물론 문화-교육-언론 등 진지까지 확보한 좌파-좌익세력이 대한민국 주류를 겨냥해 제대로 한 번 무력시위를 한 것이다.
저들 눈엔 우향우 기치를 내건 이명박 정부를 용인할 수 없었다. 광우병 폭동 당시 저들이 내건 슬로건 "국민에게 항복하라!"가 그걸 잘 보여준다. 식탁 안전,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불안 따위는 모두 핑계다. 독극물 취급했던 미국산 쇠고기를 광우병 파동 1년도 안 돼 다시 먹기 시작한 저들이 그걸 스스로 증명한다. 우리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액이 2년 연속 세계 2위를 기록했다는 엊그제 뉴스도 하나도 새로울 게 없다.
그리고 광우병 폭동 이후 좌파-좌익은 더 큰 성공을 거뒀다. 10년 전엔 우파 정부 겁박에 만족해야 했지만, 박근혜 정부 시절엔 현직 대통령을 몰아내는데 대성공을 거뒀다. 그게 좌파가 점점 판을 키워온 87년 체제의 무서운 성격이다. 퇴임 대통령 감옥 보내기(전두환-노태우), 현직 대통령 겁주기(광우병), 현직 대통령 축출(박근혜)….
보수 우파 대통령들을 깡그리 망신 주고 불이익을 줘 두 번 다시 집권할 생각조차 접게 만드는 게 저들의 목표이고, 그 위에 전혀 다른 나라를 세우겠다는 뜻이다. 때문에 광우병 폭동은 1차 촛불, 박근혜 탄핵은 2차 촛불이라고 나는 본다. 물론 1차보다 2차 촛불이 훨씬 구조적이다. 박근혜 축출 투쟁엔 국회(입법권력)와 헌재(사법권력)까지 동원됐기 때문이다.
이게 웨 무서운 변화인가? '느슨한 내전'에서 여유있게 진지전을 벌이던 좌파가 이젠 입법권력과 사법권력까지 손에 넣고 쥐락펴락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온 국민과 언론까지 변했다. 국민은 폭민정치의 '분노하는 신'으로 변질됐고, '온 언론의 선동매체화'가 완성됐다.
이러한 한국 민주주의가 어디로 갈까? 한마디로 국가정체성의 위기로 치달을 것이다. 그게 두렵고 걱정된다. 나의 이런 분석을 두고 무얼 들킨 느낌 때문에 좌익은 가슴 철렁할 것이다. 대신 좌익에 동조해온 대부분의 위선적 리버럴리스트들은 냉소를 보낼 것이다. 그런 그들을 위해 2016년 말 당시 광화문에 뿌려졌던 유인물 하나를 전해드릴까 한다. 그들의 구상은 지금도 여축 없이 관철 중이다.
"박근혜 정권 퇴진 이후 권력의 모습을 민주공화제, 시민혁명으로 후퇴하려는 것은 구체제로의 복귀다.…민주공화제는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권력의 상징이다.…한국에서 변혁의 객관적 성격은 반(反)자본주의 혁명이다. 반자본주의 혁명은 미제국주의 지배를 중단시키는 반제 혁명이기도 하다." /조우석 언론인
[조우석]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