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 전 친구와 다음과 같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친구:"레드 벨벳 기사 봤어?"
나:"뭐? 레드 카펫?"
친구:"아이고…내가 기사 보내줄게."
사실보도는 시궁창에 처박은 지 오래된 주류언론(일간신문, 지상파 방송, 종편)의 기레기들이 보도하는 가짜뉴스를 끊은 지 오래 된 지라 가끔 친구가 황당한 기사를 보내준다. 4월 5일 평양에서 공연한 한국 연예인들이 이구동성으로 김정은 앞에서 공연하게 되어 "영광"이라고 했다는 기사였다. "영광"일만하다. 스위스 알프스에서 흘러내린 청정 빙하수와 2500만 북한인민의 피고름을 먹고 자란, 체지방 90퍼센트에 도전하는 백두품종 종돈(種豚)을 실물로 볼 기회가 어디 흔하겠는가.
종돈을 애정으로써 포용하면 언젠가는 인간다워지리라는 헛된 희망을 담은 애이포(愛以抱) 정책에 협조 않고 밉보였다가는 A4 용지 없이는 외국 정상과 대화도 못하는 지력(知力) 제로에 육박하는 이 정권에게 무슨 보복을 당할지 모르니 차출되어 마지못해 평양공연에 참가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그건 아닌 듯하다. 진정으로 영광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태평양 건너편 연예계에도 (폭군/독재자들에게) 쓸모 있는 바보들이 차고 넘친다. 가수 비욘세는 400만 달러를 받고 리비아 독재자 가다피의 아들 생일파티에서 노래를 부르고 육덕진 엉덩이를 흔들며 트워킹(twerking)을 했다.
쿠바의 사회주의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를 만난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카스트로와 함께 한 여덟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감격했고 영화배우 잭 니콜슨은 카스트로를 "천재"라고 칭송했으며 모델 나오미 캠벨은 카스트로가 "전 세계에 영감을 주는" 인물이라고 했다. 케빈 코스트너는 "(카스트로가) 젊은 시절 겪은 일을 생생하게 들려주었는데 일생일대의 경험이었다."라며 감격했다. 카스트로가 젊은 시절 겪은 일이란 바로 미국을 핵무기로 공격하라고 소련에게 종용한 일이었는데 말이다.
미디어산업의 황제 테드 터너와 가수이자 영화배우인 해리 벨라폰테는 영화감독 에스텔라 브라보가 제작한, 이름만 "다큐멘터리"인 <피델(Fidel)>에 대해 찬사를 퍼부었는데 <뉴욕타임스>에 영화비평을 쓰는 A. O. 스콧마저도 이 영화를 "전기가 아니라 영웅숭배 습작"이라고 혹평했다. 그 밖에도, 체비 체이스, 로버트 레드포드, 스파이크 리, 대니 글로버, 셜리 멕클레인, 리나도 디캐프리오 등 수많은 유명 인사들이 앞 다퉈 카스트로를 만나고 할렐루야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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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일 평양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남북 평화협력 기원 남측 예술단 평양공연'을 앞두고 우리측 가수들이 '우리의 소원'을 부르면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사진=평양공연공동취재단 |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은 베네수엘라를 풍비박산 낸 우고 차베스를 비롯해 중남미 사회주의 독재자들을 찬양하는 다큐멘터리 <국경의 남쪽(South of the Border)>을 제작했다. 데니 글로버, 션 펜, 나오미 캠벨, 마이클 무어도 차베스를 만나 머리를 조아리거나 그가 빈곤을 퇴치했다며 찬사를 쏟아냈고, 노엄 촘스키는 차베스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었다."라고 칭송했다. 베네수엘라는 최근 기아로 사망하는 영아가 급증하자 기발한 대책을 내놓았다. 사망진단서에 아사(餓死)를 영아의 사망 원인으로 기재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멕시코와의 국경에 차단벽을 설치해 불법 밀입국을 막겠다고 하자 유명 연예인들은 트럼프를 인종차별주의자고 맹비난하면서 트럼프가 당선되면 다른 나라로 이민 가겠다고 공언했다. 에이미 슈머, 레나 더넘, 바브라 스트라이젠드, 브라이언 크랜스턴, 마일리 사이러스, 존 스튜어트, 셰어, 새뮤얼 L. 잭슨, 우피 골드버그 등이다. 그런데 하나같이 캐나다로 이민 가겠다고 했지, 멕시코나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로 이민 가겠다고 한 인간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미국에서 잘 살고 있다.
연예계 유명인들은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와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에 근간을 둔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영화 한 편, 노래 한 곡만 성공해도 수천만에서 수억 달러를 긁어모으고, 수천만 달러짜리 대저택에서 불법체류자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을 내니(nanny)로, 정원사로, 메이드(maid)로 부리며 산다. 연예계/할리우드 영화계는 세계 그 어느 나라, 한 사회의 그 어느 분야보다 철저히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분야이고 종사자들 간의 빈부격차도 세계 최고다.
할리우드 유명인들이 진정으로 계급 없는 평등한 사회를 실현하고 싶다면 대량학살범인 사회주의 독재자들을 미화하는 영화를 만들고 그들 앞에서 머리를 조아릴 게 아니라 영화제작으로 번 돈을 제작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과 공평하게 나누는 일부터 실천해야 한다. 할리우드 유명인들은 입으로는 사회주의를 부르짖으면서 정작 본인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주는 혜택을 철저히 누리며 산다. 자기 언행의 모순에서 인지부조화도 느끼지 못할 만큼 지력이 떨어지는, 어설픈 좌익이념에 찌든 우둔한 머리들이 판치는 할리우드는 좌리우두(左理愚頭)의 천국이다.
요즘 사람들은 '악플'보다 '무플'을 더 무서워한다고 한다. 나는 레드 벨벳이라는 아이돌 그룹이 있는지도 몰랐다. 김정은 덕분에 나 같은 사람까지 레드 벨벳을 알게 돼 인지도가 높아졌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게 무관심보다 훨씬 낫다고 여기는 세상이니 얻은 게 있긴 있는 셈이다. 그러나 눈은 가죽이 모자라서 찢어놓은 게 아니고 머리는 목이 허전해보여서 얹어놓은 게 아니다. 이제 북한의 실상을 볼만큼 봤는데 거기가 어떤 집구석인지 머리로 생각 좀 하고 살자. 아무리 머리가 돌이라도 말이다.
김정은의 발굽 밑에 기꺼이 깔려 인간 레드 카펫이 되어주는 자학에서 희열을 느끼는 이들의 행태는 BDSM(Bondage, Discipline, Sadism, Masochism)보다 훨씬 변태적이다. 애이포 정권이 이설주를 "리설주 여사"로 부르기로 했단다. 자기나라 대통령은 닭과 쥐에 비유하는 인간들이 백두품종 종돈의 씨받이는 꼬박꼬박 '여사'로 불러주고 싶어 몸이 후끈 달았다. 당신들이나 그렇게 불러라. 내가 최대한 존중해서 부를 호칭은 김정은, 이설주다. 그렇게 불러주기만 해도 감지덕지할 일이다. 김정은과 이설주에게 존칭을 붙이라는 요구는 내게 히틀러를 '각하'로 부르라는 요구와 마찬가지로 용납할 수 없다.
서울시의 얼토당토않은 슬로건 "I SEOUL YOU."를 응용해서 당신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I MOON YOU." 전자와 달리 후자는 문법적으로 전혀 하자가 없는 문장이다. 영어로 'Moon'은 상대방에게 등을 돌린 채 상체를 앞으로 굽히고 바지를 내려 엉덩이를 까 보이며 상대방을 조롱하는 행동을 일컫는 동사로 쓰이기도 하고, 'Ass(엉덩이)' 대신 명사로 쓰이기도 하는 단어다. /홍지수 칼럼니스트·<트럼프를 당선시킨 PC의 정체> 저자
[홍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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