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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우석 문화평론가 |
6․4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누가 뭐래도 서울이다. 높은 상징성 때문에 여야 모두가 물러설 수 없는 싸움, 그래서 서울 대첩으로 불린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야당이 일단 승기를 쥔 건 사실이지만, 장담은 못한다. 새누리당 정몽준 후보와 새민련 박원순 후보는 이 선거가 박빙이라는 걸 서로가 잘 알기 때문이다. 감히 예측컨대 52%대 48% 혹은 51%대 49%의 초접전으로 마무리될 것이다. 미니 대선의 성격이 짙은 서울시장 선거는 막판엔 여야 지지율이나 대통령 지지율의 수치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당장 꽤 벌어진 듯한 여론조사의 수치는 그저 참조항목일 뿐이다. 4년 전 서울시장 선거가 어떠했던가? 여론조사에서 당시 한나라당 오세훈이 민주당 한명숙보다 무려 15%포인트 앞섰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0.6%포인트에 불과했다. 더구나 이번에 맞붙은 두 후보도 대선 후보감이다. 며칠 전 차기 대선후보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정몽준 후보가 안철수 새민연 공동대표와 문재인 의원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게 그걸 새삼 보여준다. 박원순 후보 역시 자천타천 좌파의 실질적 대부가 아니던가?
때문에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정몽준과 박원순에 대한 실체 검증의 자리인데, 정몽준에 대한 검증은 비교적 단순하다. 검증은 그가 우파의 간판정치인 이미지에 얼마나 합당한가 하는 점에 모아진다. 우파가 볼 때 그는 몇 가지 취약점이 있다. 2002년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에 결경적으로 기여했던 게 대표적인 케이스다. 당시 국민통합21 후보였던 정몽준의 선거 막판 지지 철회의 결정은 친노좌파의 결집이라는 역풍을 낳았다는 걸 우리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그 이외의 경력이나 안보관 등에서 그는 큰 결격사유나 문제가 없다. 최다선 의원(7선)이자 국제축구연맹의 부회장(1994~2011년)의 경력 때문에 검증이 될만큼 됐고, 남은 기간 그런 정몽준에 대한 유권자의 선호와 선택이 남았을 뿐이다. 그간의 경력과 가정문제도 그렇다. 정몽준 자신은 물론 맏아들까지 모두 ROTC 장교 생활을 했고, 부인 김영명 여사가 활발히 내조활동하는 것도 매우 자연스럽게 비춰진다. 성공적인 현대중공업 경영도 그를 우파 시장경제 지지자로 각인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안타까운 점은 이미지다. 그가 지금의 좌편향된 언론과 대중 앞에 필요 이상으로 굽신댄다. 이 점은 정몽준이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 언론의 구조에 대한 인식이 과연 충분한가가 하는 의문을 낳게 한다. 일테면 당내 경선 통과 직후 앵커 손석희가 진행하는 JTBC 뉴스 인터뷰를 응한 것 자체가 섣부른 표 구걸에 다름 아니었다. 그 직전 경선 통과 자리에서 막내아들 문제로 눈물을 훔친 것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언론과 대중 앞에 굴종적 태도는 자칫 지지층 이탈로 연결될 수 있다. 또 안이한 인식에 대한 공격을 유발할 수도 있고, 그 역시 포퓰리스트의 한 명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 대중정치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은 올바른 게 아니다. 선거 막바지에 더욱 눈먼 표를 챙기려는 태도만큼 원칙과 뚝심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정몽준에 대한 의문은 다분히 기술적인 문제에 그친다면, 박원순 후보는 좀 차원이 다르다. 그는 컴컴한 구석, 비밀스러운 대목이 너무 많은 게 사실이라서 냉정한 검증이 더 필요하다.
자신은 물론 아들의 병역문제가 여전히 애매하고, 잠적설까지 돌고 있는 부인 강난희 씨를 둘러싼 소문도 무성하다. 올해가 대중정치인으로 변신한 3년차에 불과하고, 지난 보궐선거 때 안철수 바람을 업고 시청에 무혈 입성을 했던 탓으로 그의 국가관 안보관이 여전히 불투명한 채로 남아있다. 그가 시장으로 일했던 지난 2년 반 박원순은 의혹을 외려 더 키웠다. 일테면 서울시 채무를 3조2500억원 줄였다거나, 임대주택 8만호 건설을 초과 달성했다는 주장에 대한 논란이 지금 중요한 게 아니다.
인구 1000만의 대도시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협동조합 수 천 개를 만들어내고 이에 대한 예산지원을 꾸준히 해온 점, 좌파의 소굴이 되고 있는 비판 속의 성미산 등 마을공동체 사업 등에 대한 박원순의 무한애정이 그러한 사례이다. 이는 너무도 시대착오적이고 엉뚱하기 때문에 "서울시민의 돈으로 혁명기지 사업을 하는가?"하는 의구심을 낳기 충분했다. 박원순은 골수까지 좌파 도그마 내지 좌파정서에 물들었다는 필자의 합리적 의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때문에 지난 주 첫 TV토론에서 그의 편향된 국가관에 대한 지적이 나온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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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민연 박원순 서울시장후보는 좌파 도그마가 강하다. 시장 취임후 마을공동체, 협동조합등에 사회공동체사업에 몰두했다. 아들의 병역문제가 여전히 애매하고, 잠적설까지 돌고 있는 부인 강난희 씨를 둘러싼 소문도 무성하다. 올해가 대중정치인으로 변신한 3년차에 불과하고, 지난 보궐선거 때 안철수 바람을 업고 시청에 무혈 입성을 했던 탓으로 그의 국가관 안보관이 여전히 불투명한 채로 남아있다 |
서울 경쟁력 강화 방안, 전‧월세 대란,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대책, 용산 개발 등의 사안을 놓고 대립하면서 정몽준이 공격을 하자, "철지난 이념논쟁에 네거티브 공세"라며 박원순이 자꾸 빠져나가려 한 것은 당당하지 못한 태도였다. 결과적으로 말투가 어눌한 정몽준에게 박원순이 밀렸다는 분석이 나왔던 것도 그 때문이다. 이제 투표일까지 일주일여, 이런 의혹을 둘러싼 공방이 계속되고, 이에 따라 표심도 크게 갈라질텐데, 박원순에게 남은 선택은 두 가지다.
숨은 곳이 없어진 그가 자신의 이념과 가치관을 정면에 내세우며 "난 본래 이런 사람이고, 이게 미래 서울과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한 대중정치인의 자질이다"고 시민들에게 자신을 어필하는 게 방법의 하나다. 그가 장차 대선을 꿈꾼다면 미리 털고 가는 게 현명할 수도 있다. 반면 지금처럼 자기정체성을 여전히 모호하게 감춘 채 꽁무니를 빼는 소극적 대응도 할 수 있다. 어떻게 대응하던 필자의 눈에 박원순은 대한민국 대중정치인 중 가장 확실하게 좌파적 가치관을 대중적 형태로 구현하고 있는 인물이다.
오래 시민운동에 참여해왔고, 성격이 김대중(DJ) 전 대통령만큼 노회하기 때문에 본모습을 감추는데 잠시 성공했을 뿐 실은 DJ보다 더하면 더하다. 쉽게 말해 박원순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헌법적 가치에 대한 신념이 결여된 대표적 정치인이다. 대한민국 건국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국가관, 안보관에서 미덥지 못한 건 DJ와 비슷하지만, 서울시청 옥상에서 양봉을 하고 노들섬에 텃밭 농사를 지으려는 낭만농부에 대한 기이한 집착이 보여주듯 박원순은 모든 종류의 개발주의에 반대하고 마을공동체에 대한 집착까지 강하다.
즉 DJ 식의 도그마를 공유하지만, 이와 별도로 전투적 생태주의-환경주의에 대한 묻지마 신념이 따로 있으니 그만큼 자기 확신이 전방위적이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비교해도 쉽게 드러나는 특징이다. 노무현이 다소 즉흥적이고 비체계적이었다면, 박원순은 자기 이념에 대한 확신의 강도역시 상대적으로 강하다. 닮은꼴인 안철수와 견줘도 또 다르다. 안철수가 한국정치 풍토가 만들어낸 어린 왕자라면 박원순은 정치적 암수(暗數)에도 능하다. 때문에 냉정한 검증은 필수다.
대중정치인 중 가장 좌파적 가치관을 구현했다는 필자의 판단은 1980년대 이후 지식사회의 대세가 된 '민중주의(평등주의) 바이러스'를 심은 대표적 인물이라는 뜻이다. 즉 괜히 삐뚜룸하거나 반항적 기질의 좌파정서의 차원을 훌쩍 뛰어넘어 좌파 도그마를 신봉하는 부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걸 보여주는 발언이나 행동은 수도 없이 많은데 "광화문 네거리에서 김일성 만세를 부를 수 있는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가 좋은 나라"라는 박원순의 악명 높은 발언이 대표적이다.
노무현이 "국가보안법이라는 칼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관해야 한다"고 말하기 훨씬 이전 박원순은 그걸 자기 신념화했다. 그 물증이 1996년에 펴낸 단행본 <역사를 바로 세워야 민족이 산다>(한겨레신문사 펴냄)이다. 대한민국 현대사에 대한 그의 부정적 시선은 거의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로당 박헌영의 아들이라는 원경 스님(조계종 원로의원)과 함께 역사문제연구소를 세워 초대 이사장이 취임했던 게 1986년의 일이다.
천안함 폭침 당시 "이명박 정부가 북한을 자극해서 억울한 장병들이 수장됐다"고 하는 터무니없는 발언을 했던 그가 돌고래 방생에 7억6천 만 원의 돈을 쓰면서도 북한인권 단체 지원에는 등을 돌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걸 박원순 식의 정파적 사고나 진영논리라고 보는 건 순진한 접근이다. 노무현은 재임 중 "한국현대사는 정의가 실패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라고 강변을 했지만, 박원순은 그보다 훨씬 강도 높은 인식을 내면화해온 인물임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현대사는 참으로 정치적 혼란, 권력의 남용과 인권의 암흑시대의 연속이었다. 암살과 학살, 의문사, 고문과 처형, 투옥과 연금, 해직과 해고, 부당한 해잔의 약탈과 몰수 등 그 피해의 유형과 피해자의 숫자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인권유린이 이 땅을 억압과 수난의 도가니로 몰았다. 그 한들이 쌓여 강 같이 흐른 반세기였다. (중략) 가해자가 대대로 권력을 누리는 사이 피해자는 숨죽이며 살아왔다."(<역사를 바로세워야 민족이 산다> 서문)
그의 반(反)대한민국 발언은 이토록 도착적이고 자학적 인식의 끝을 달린다. 이런 게 박원순 사고방식의 원형이자 핵심이라고 나는 믿는다. 균형감각을 잃은 섣부른 인식에 동어반복의 아마추어적 문장까지가 박원순의 실체에 다름 아니다. 지난 세기의 우리현대사를 저항 세력과 협력 세력 사이의 싸움, 정의와 부정의의 대결로 설정하는 병리학적 집단심리를 박원순만큼 강렬하게 내면화한 대중정치인은 통진당의 일부 사회부적응자 무리를 빼고는 지금 없다. 그런 그가 노무현이 정권 초기 4•3사건 관련 위원회를 만들었을 때 총괄 책임을 맡았던 것도 우연일 리 없다.
글을 마무리 짓자. 단 2년 반 전 서울시장에 도전할 때 박원순은 "기성정치, 낡은 정치에 대한 반발과 새로운 리더십을 위해 정치에 뛰어들었다"고 선언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단순한 레토릭 그 이상이었다. 노무현만큼 강렬한 자기확신을 DJ보다 노회하게 추진하겠다는 출사표로 해석하는 게 맞다. 부디 나의 판단이 논리적 비약이거나 예단(豫斷)이기를 바란다. 만의 하나 필자의 판단이 맞다면, 그리고 그가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해 요지부동의 차기 대선후보로 올라선다면, 비극은 그때부터 벌어질 수도 있다.
그가 60만 원대의 이른바 '황제벨트'를 허리춤에 차고있으면서 엉뚱한 서민 코스프레를 한다는 게 요즘 논란이다. 본래 그는 3년 전 멀쩡한 구두 뒷축을 훼손시켜서 신고 다니며 자신이 서민적 지도자라고 많은 이들을 착각하게 만들었다. 이번에 선거캠프에서는 문짝을 뜯어서 만든 테이블을 만들어 회의를 한다고 홍보하는 통에 다시 헛웃음을 유발시켰다. 그런 지적도 박원순 식 사고의 허점을 보여주지만, 정말 위험스럽고 걱정되는 건 순진한 척 좌파적 가치의 끝을 달리는 음험함에 있다고 나는 믿는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