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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근 선문대교수 |
KBS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주요 보직간부들이 사퇴한데 이어 사내 양대 노조가 모두 파업에 돌입하였다. 뉴스는 물론 주요 프로그램들이 파행적으로 편성되고 있다. 그럼에도 길환영 사장도 강경하게 대처할 것이라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 굴절되고 비뚤어진 공영방송 구조와 행태들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던 필자를 더 심한 괴리감에 빠지게 만들고 있다.
솔직히 요즘처럼 ‘우리 사회에 공영방송이 왜 필요한가’와 ‘공영방송이 왜 필요 없는가’라는 이율배반적인 생각이 오락가락 한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세월호’ 관련 보도들을 보면서, 커다린 재난에 대처하는 데 언론, 특히 방송보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느꼈다. 신속하고 정확한 보도를 통해 재난구조에 모든 사회 역량을 응집시켜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 것이다.
그렇지만 ‘별로 내용 없는 그러면서 다른 상업 방송들과 전혀 차이 없는’ 공영방송의 재난보도가 그동안 우리 공영방송이 얼마나 부실했던가를 실감케 해 주었다. 물론 ‘홍가혜 인터뷰’나 하고 ‘다이빙 벨’ 가지고 사회적, 정치적 갈등만 부추긴 다른 방송사들에 비해 그나마 낫다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정도로 공영방송이 제 역할을 했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렇게 제 역할도 제대로 못한 공영방송 KBS가 한술 더 떠 사장과 전 보도국장간에 추악한 폭로전을 벌이고 있다. 간부 보직사태와 사장퇴진 등 본격적인 사내갈등으로 확전되고, 정치권으로 불똥 튈 기세다.
이 사태의 직접 원인은 공영방송의 경영자와 핵심간부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생각이 안 되는 부족한 자질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보면, KBS라는 공영방송을 특정 개인의 전유물로 인식하게 만든 왜곡된 조직 문화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보도국장이라는 사람이 ‘사장의 보도개입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다든지, ‘사장의 개인비리를 고발’하겠다는 노조의 성명은 ‘어두운 세상 조직들’에서나 볼 수 있는 행태들이다.
이미 이런 비리들을 당사자 혹은 구성원들이 알고 있었다면, 또 알고도 서로 묵인하고 견제수단으로 이용했다면 그건 정말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문제를 평소 감시하고 견제해야 하는 내부 기구들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번처럼 구성원들이 알고 있었을 정도라면, 내부 감사부서나 이사회 등에서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문제일 것이다. 진정 몰랐다 해도 문제고 알고도 문제 삼지 않았다면 그건 더 큰 문제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공영방송 거버넌스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최근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편과 관련해 정치권의 핵심쟁점은 ‘KBS의 이사구성에 있어 여야안배 비율’과 ‘집권여당이 일방적으로 독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사장선출 방식의 강화’ 두가지다. 때문에 여야간에 쉽게 합의되지 못하고 허무한 정쟁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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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영방송 KBS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부적절한 보도와 오보, 청와대및 사장의 뉴스제작 편집 간여여부등으로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 자칫 임직원들의 사원방송으로 심각하게 변질되고 있다. 뉴스는 수일째 축소방송되고 있다. 주요시간대에 과거 다큐멘터리등이 방송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기자와 노조는 길환영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제작을 거부하는 볼썽사나운 행태를 보이고 있다. 김시곤 전 보도국장이 뉴스제작과 편집에서 길환영사장이 사사건건 간여했다는 주장을 하면서 동시퇴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그렇지만 정말 중요한 문제는 과연 KBS 같은 공영방송을 실질적으로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거버넌스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처럼 비상임으로 회의 때 보고받고 의결하는 수준으로는 KBS 안에 고착되어 있는 구조적 문제들을 알 수도 없고 제어할 수도 없을 것이다. 또 사장과 보도국장이 추악한 난투극을 벌이면서, 방송자체가 마비될 상황인데도 중재나 조정할 수 있는 장치 역시 없다는 것도 문제다. 그렇다고 정부가 방송사 내부갈등에 직접 개입할 수도 없을 것이다.
또 KBS이사회 구성에서 KBS 출신자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도 문제인 것이다. 지금처럼 ‘오래 기간 한 솥 밥을 먹은 식구’이면서 동시에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서로 잘 알고 있는 관계’에서 구조적 개혁을 기대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어쩌면 ‘관피아’ 보다 ‘자기들끼리 만들어 놓은 마피아’의 폐해가 더 심각할 수도 있다.
결국 답은 ‘민주적이면서 실효성 있는 민주적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이다. 실효성 담보를 위해서는 KBS이사회 같은 경영기구가 상시적 기구이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사회 구성 역시 KBS의 내부와 일정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不可近 不可遠’이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지금처럼 정파적 이해득실에서 기약없이 허망한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편’ 논의를 현실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처럼 사실상 사내조직화되어 버린 KBS이사회에서 탈피해, 방송의 공영성을 담보하기 위해 감시하고 규율할 수 있는 ‘(가칭) 공영방송위원회’같은 독립규제기구의 설립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이 기구는 공영방송의 재원과 공영성을 연계하는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국민들의 반대로 벽에 부딪쳐있는 KBS의 수신료 문제도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정치권에서 모색되어오기도 했던 이런 독립규제기구 논의가 좌절되었던 것은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내걸고 외부로부터의 어떤 감시도(솔직히 국민의 감시조차도) 받지 않겠다는 KBS를 비롯한 종사자들의 강력한 저항 때문이었다. 지금처럼 아무런 외부 견제나 감시받지 않고 ‘자신들만의 방송사 안에서 평온하게 안주하겠다’는 속내를 ‘방송의 독립성’을 명분으로 포장해왔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이처럼 명분과 실제가 다른 왜곡된 공영방송구조를 개혁해야만 할 것이다. 그래야만 공영방송이 실제 주인인 국민들의 방송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많이 지적되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관료’와 ‘정치’가 사회전반에 걸쳐 깊이 침투해 있는 고질적인 병폐를 안고 있다. 방송 역시 이로부터 절대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아니 지금의 왜곡된 공영방송 구조는 ‘방송과 관료 그리고 정치’간에 바람직하지 못한 공생체제를 구축해 더 큰 폐해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문제를 그대로 안고 있는 상태에서 디지털/스마트 미디어 시대에 공영방송의 존재의미를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
‘자유와 경쟁’, ‘시장과 자본’ 같은 전통적인 방송개념과 정면으로 상치되는 패러다임이 대두되는 상황에서 이같은 왜곡되고 낙후된 구조를 가진 방송사가 존속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번 KBS 사태는 old media의 시대착오적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아닌가 싶다. /황근 선문대교수,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