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원로 배우 최은희가 지병으로 16일 별세했다.

최은희는 신장 투석과 합병증으로 투병해오던 중 이날 병세가 악화돼 세상을 떠났다. 향년 92세.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입관은 18일, 발인은 19일로 예정됐다.

고인이 된 배우 최은희의 삶은 영화보다 더 극적이고 파란만장했다.

   
▲ 사진=연합뉴스


1926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난 최은희는 1942년 연극 '청춘극장'으로 데뷔했다. 이후 1947년 '새로운 맹서'로 스크린에 데뷔해 '밤의 태양'(1948), '마음의 고향'(1949) 등에 출연하며 스타로 떠올랐다.

신상옥 감독과 운명적인 만남으로 사랑에 빠진 고인은 1954년 신 감독과 결혼했다. 신상옥 감독과 배우 최은희는 한국 영화 중흥기의 중심 인물이었다. 부부가 함께 찍은 '꿈'(1955), '지옥화'(1958), '춘희'(1959), '로맨스 빠빠'(1960) , '백사부인'(1960) '성춘향'(196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로맨스 그레이'(1963) 등은 한국 영화의 역사가 됐다.

최은희는 김지미, 엄앵란과 함께 1950∼60년대를 대표하는 인기 및 흥행 여배우로 원조 트로이카로 불렸으며 총 13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연기와 함께 여성감독으로도 활동하며 '민며느리'(1965) '공주님의 짝사랑'(1967) '총각선생'(1972) 등을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1967년에는 안양영화예술학교의 교장을 맡아 후진 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신상옥 감독과 이혼했던 고인은 1978년 1월 홍콩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치돼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 해 7월에는 신상옥 감독도 납북됐고 북한에서 재회했다. 

북한에서도 두 사람은 영화 일을 계속해 '돌아오지 않는 밀사'(1984년), '사랑 사랑 내 사랑'(1984년) 등 모두 17편의 영화를 찍었다. 최은희는 북한에서 출연한 영화 '소금'으로 1985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신 감독과 최은희는 19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 방문 중 미국 대사관을 통해 망명에 성공, 8년여 만에 북한에서 탈출했다. 10년 넘는 망명 생활 끝에 1999년 영구 귀국했다.

국내로 돌아온 후에도 고인의 활동은 이어졌다. 2001년 극단 '신협'의 대표로 취임했고, 2002년 뮤지컬 '크레이즈 포 유'를 기획·제작했다. 

함께 운명적이면서도 영화같은 삶을 살아왔던 신상옥 감독이 2006년 4월 11일 먼저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허리 수술을 받는 등 건강이 나빠졌고 최근에는 일주일에 세 번씩 신장투석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으로는 장남인 신정균 영화감독 등 2남 2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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