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가운데 한국인을 가장 잘 표현한 사람으로 오구라 기조 일본 교토대 교수라는 사람이 있다. 1988년부터 무려 8년간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유학했던 일본인 대학원생이 본국으로 돌아가 어떤 잡지에 기고한 것을 한 출판사가 출간을 제안하며 시작된 2년의 역작이다.
오구라 교수는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란 책에서 한국사회를 "사람들이 화려한 도덕 쟁탈전을 벌이는 거대한 극장"이라고 묘사했다. 도덕과 무관한 활동을 하는 운동선수와 연예인도 도덕을 외치며 필사적으로 자기선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수가 노래만 잘하면 된다든가, 운동선수가 경기 성적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으로는 한국에 적응할 수 없다. 관료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도덕적으로 조금이라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을 벌이면 사회의 손가락질로 매장시켜 버린다. 정치인의 평가도 그의 정치활동이나 정책 구현능력이 아니라 도덕의 잣대로 평가해 버린다. 이를 보고 송호근 교수 같은 사람은 '순백사회'라고 지칭했다.
한국인 사회는 자신이 얼마나 도덕적인가를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 뒤에야 비로소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이다. 권력과 부도 도덕과 결합해야 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현실은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현실에서 도덕이 권력이나 부와 결합되는 과정에서 거의 모든 도덕이 상처를 입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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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은 1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셀프후원' 위법 판단에 즉각 사의를 표명했다./사진=연합뉴스 |
정치는 진흙탕에서 핀 연꽃이라는 표현이 있다. 여기서 연꽃이 피려면 진흙탕이라는 존재를 만나야 한다. 맑은 물에는 연꽃이 자라서 피어날 수 없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맑은 물과 순백의 연꽃'을 동시에 요구한다. 그런 사람이 어디 있을까? 예수 부처 공자 등 여러 성인들이 와도 한국인들이 요구하는 기준을 맞출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고도의 도덕수준을 요구하는 한국인들이 자신은 그만큼 도덕을 지키고 있는가? 안희정 전 충남지사,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 정봉주 전 의원, 강성권 전 문재인대통령 보좌관 등의 사례에서 보듯이 전혀 그렇지 않다. 도덕쟁탈전과 관련해 한국인의 이중성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한국인의 이중적인 심리는 철학자인 마사 누스바움 시카고대 교수의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마사 누스바움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동정심 또는 자비심을 느낌으로써 자기가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쉽게 얘기해서 남이 잘못했다고 손가락질을 하거나, 저는 대형 사고의 피해나 역사적 사실에 대해 마음이 아픔을 느낍니다고 말했을 때 자신이 도덕적인 인간이 됐다고 느낀다는 얘기다. 도덕쟁탈전에 나선 연예인이 추모식에 가서 연설을 하고, 국민적 관심사가 쏠린 사고에 '공감 댓글'을 다는 게 이와 비슷하다.
그들 스스로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 세상은 변화된 게 없고 서로 손가락질만 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셈이다. 자신의 일상을 보여주는 연예인이 오히려 사회에 기여하는 일은 추모식에서 추모사를 할게 아니라 '초저출산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2세를 낳는 일이 될 것이다.
도덕쟁탈전은 갑질 논란으로 이어진다. 갑질은 사전에 보면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이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갑질이 존재하려면 반드시 을이라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 을이 아무렇지 않게 여기거나 오히려 기분 좋게 받아들이면 이건 갑질이 아니다.
예컨대, '욕쟁이 할머니집'이라는 식당이 있다. 개인적으로 '욕'을 싫어해서 그런 집에 가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은 할머니가 하는 욕을 '정겨움'으로 해석하지 갑질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이건 갑질이 아니다. 결국 갑질의 개념에서는 제 3자가 자의적으로 해석할 부분이 있고 그렇지 않을 부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구분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제3자들이 나서서 특정인을 마구잡이로 '갑질했다'고 공격한다. 특히 연예인과 정치인이 주로 그런 대상이다. 이렇게 댓글을 다는 사람들, 기사를 보도하는 언론인들이 스스로 엄청난 갑질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을까? 아마 모른다면 그들은 '내로남불의 대명사'로 지탄받던 김기식과 비슷한 '제2의 김기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언론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기레기라고 욕하고 수준이 낮다고 여긴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굳이 따지자면 언론인들 특히 젊은 기자들이 언론의 기본을 지키지 않는 데서 발생한 문제로 보인다.
좋은 언론인의 두 가지 덕목이 있다면 '호기심'과 '균형 감각'을 들 수 있겠다. 호기심이 있어야 기사 취재를 할 수 있으니, 호기심은 필수 불가결한 덕목이다. 균형감각이란 어떤 사건에 가해자가 있을 때 반드시 피해자의 입장도 들어보고 반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언론보도는 여론재판이라고도 하는데, 재판에서 반드시 검사의 반대편에 변호사가 있듯이 여론 재판에서도 반론을 들어봐야 한다.
본인이 보수이든 진보이든 관계없이 기사를 쓸 때는 사실에 입각해서만 쓰거나 보도해야 한다. 본인의 생각은 가급적 담지 않는 게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방법이다. 균형감각을 잃은 기자는 언론인이 아니라 '정말 수준낮은 기레기'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다고 여겨진다. 그런 기자들이 한국사회에 꽤 있다. /김필재 정치평론가
[김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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