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가장 중요한 덕목 '자유'를 스스로 지워…기 막힌 자기 모순
사회주의의 실상을 그대로 드러낸 유머가 있다. 질문은 "과거를 알 수 있습니까 아니면 미래를 알 수 있습니까?" 대답은 "미래는 알 수 있지만, 과거는 알 수가 없다." 대답을 한 사람들은 "미래는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역사발전론에 따라 예측이 가능하므로 알 수 있지만, 과거는 새로운 권력이 등장할 때마다 내용이 바뀌니까 알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2018년 5월5일은 우리에게 어린이날이지만 전 세계에서는 '칼 마르크스 탄생일'로 기억된다.

경제이론으로서 마르크스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과거의 유물이 된지 오래다. '사유재산 폐지와 생산수단의 국유화'는 이미 경제 운용에 있어 사망선고를 받은지 오래 됐다. 마르크스주의를 선택한 나라들도 소련과 동유럽을 포함해 모두 쇠망의 길을 걸었다. 현재 헙법에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표방한 나라는 중국 베트남 라오스 쿠바 정도가 남아있지만 이들 나라도 모두 '시장경제 체제'를 채택했거나 그 길로 나가고 있다.

사회이론과 역사이론으로서 마르크스주의는 '노동의 소외'와 '역사발전론'을 꼽을 수 있다. 마르크스는 산업사회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들의 삶과 역할에 주목하면서, 생산력과 생산방식 같은 하부구조가 법-제도-정치-철학-사고방식과 같은 상부구조를 좌우한다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제창했다. 하부구조인 생산형태와 소유형태가 파괴되고 새로운 형태로 발전하면서 역사가 발전한다는 '역사발전론'이 등장한 배경이다.

마르크스는 인류사회가 원시공동체사회, 고대 노예제사회, 중세 봉건주의사회, 자본주의 사회를 거쳐 결국 공산주의사회가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는 노동자와 농민에게 자본가와 지주계급을 타파하고 프롤레타리아계급이 지배하는 이상적인 평등사회인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혁명에 나설 것으로 호소하기도 했다.

   
▲ 진보라는 단어는 뿌리도 없고 내용도 없는 공허한 수사修辭에 불과하다. (칼 마르크스에 따르면) 진보라는 건 사회주의에 근접해 간다는 과정 외에는 그 뜻이 전혀 없는 빈 낱말이다./자료사진=연합뉴스

마르크스가 쓴 자본론(THe Capital)으로 인해 '자본(capital)'이란 단어는 오늘날까지 특권과 착취의 부정적 의미를 담게 됐다. 그런 까닭에 한국에서도 '자본의 순기능 즉 산업발전과 경제성장에 대한 기여'를 말하는 사람보다는 자본의 나쁜 측면을 말하는 사람들이 '인문학자 철학자' 등의 타이틀을 달면서 지식인인체 행세한다. 하지만, 역사에서 보듯이 마르크스가 말한 공산주의사회는 처절한 실패로 끝났다.

마르크스가 얘기한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채택한 나라들이 역설적으로 해낸 일은 '역사의 왜곡, 역사의 변경'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소련이다.

'러시아의 공산화(러시아혁명이 아니다. 일천만명 이상이 죽은 권력다툼이 왜 혁명인가?)'를 성공시킨 레닌은 후계자로 스탈린을 선택하지 않았다. 무식하고 거칠다면서 후계자로 트로츠키를 점찍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1924년 1월21일, 레닌이 죽은 그날에 트로츠키는 요양을 가고 있었고, 레닌의 시체를 독점한 스탈린은 장례식을 주도하면서 트로츠키를 속여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했다. 결국 권력은 스탈린에게 돌아갔다.

스탈린이 제일 먼저 한 일은 '트로츠키가 농민을 무시했다.'며 트로츠키를 반(反)농민주의자로 만드는 일이었다. 러시아는 당시 전형적인 농업국가이고 프롤레타리아의 절대다수는 농민이었다.  트로츠키는 시골 야노프카에서 태어났고 농민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사람이었는데 '선전선동의 왜곡'에 졸지에 농민의 역적이 된 셈이다.

스탈린은 '레닌과 트로츠키 떼어놓기'에도 나선다. 레닌과 트로츠키가 유일하게 의견 충돌이 있던 때가 1905년 1차 혁명이고, 그 이후에는 늘 한 몸이었는데 스탈린은 1905년의 트로츠키만 부각시키면서 반혁명분자, 반(反)레닌주의자로 몰았다. (국내에서 진보세력이나 시민단체 흉내를 내는 사람들이 과거 한 순간을 가지고 해당 인사의 전체 생애를 색칠하는 모습과 어찌 비슷하지 않은가?)

러시아의 사회주으는 트로츠키의 이념, 유산까지 모조리 뜯어 고쳤다. 그러고도 모자라 스탈린은 1940년 8월 멕시코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트로츠키에게 자객  라몬 메르카데르(Ramón Mercader)스를 보냈고, 트로츠키는 등산용 도끼에 찍혀 사망했다.

하기야 '역사 비틀기'를 넘어 '역사 뒤집기'까지 국내에서 완벽하게 성공한 사람도 있다. 바로 김정은 위원장의 할아버지인 김일성이다. 김일성의 젊은 시절은 만주를 떠돌던 마적 수준에서 모든 항일운동을 주도한 '구국의 영웅'으로 탈바꿈했다. 북한에 널려 있는 수많은 항일유적지가 이를 잘 보여준다. 그의 '역사 뒤집기'는 급기야 혈통까지 들어가 '백두 혈통'이라는 희대의 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러시아 얘기를 더 하자면 트로츠키는 사회주의의 환상만 본 사람이었다. 트로츠키가 1917년 1월 뉴욕을 처음 찾았는데 "거대한 빌딩군, 가스레인지, 전화, 엘리베이터…아이들이 순식간에 뉴욕의 포로가 됐다."라는 감상문을 썼다. 그러면서도  '달러( Doller)의 도덕 철학이 완전히 석권한 나라다' '인류의 문명이 버려질 대장간이다.'라는 식으로 조롱했다.

하지만 그는 틀렸다. 100년 뒤 미국은 더 풍요로워지면서 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반면, 그가 온 인생을 바쳤던 사회주의 소련은 역사의 조롱거리가 되고 사라졌다. 특히 민주주의 나라인 미국은 사회주의 소련처럼 과거사를 부정하지도 않고, 전임자를 격하하지도 않았다.

일본의 나카소네 총리는 "정치인은 역사와 국민 앞에 늘 피고인이다"는 말을 남겼다. 그래서인지, 권력을 잡은 정치인은 역사에서 좋은 평판을 얻고자 '과거 비틀기'에 나선다. 왜곡의 결말은 늘 비극이지만 그래도 새로운 권력자는 과거를 잊고 다시 '새로운 역사 창조(?)'에 나선다.

대한민국도 늘 예외가 아니다. 특히 역사적으로 내 편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은 후하게 평가를 내리고, 역사적으로 네편이 돼야 내게 유리한 사람은 혹독하게 깎아 내린다.

김영삼 정부는 '5공 청산'으로, 김대중 정부는 '역사 바로 세우기'로 과거를 뒤졌다. 노무현 정부는 '부패 정치 척결'로,  이명박 정부는 '참여정부 수사'로, 박근혜 정부는 '역사 교과서'로 과거를 새롭게 만들려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1년 동안 '적폐 청산'으로 과거를 뒤지고 새롭게 만들려고 하고 있다. 그러한 와중에 감옥에 갔던 대통령, 감옥에 있는 대통령이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부분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과 문재인 정부가 드디어 역사 손보기에 들어갔다. 국가체제인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대한민국 수립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바꾸겠다고 한다.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라는 표현도 지우겠다고 한다.

북한의 공식 명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영어로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 DPRK)이니 이제 남한이나 북한이나 모두 민주주의 공화국이 된 것일까? 하지만 역사는 안다. 아무리 이름으로 한껏 포장을 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역사 비틀기, 역사 손보기'는 늘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역사 비틀기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나라의 특성이지, 민주주의 나라의 특성이 아니다.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만든 사람들은 스스로를 진보학자라고 평가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진보'라는 말의 의미를 알고 있는 것일까?

진보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자유존중, 인권존중, 민주주의'이다. 자유가 가장 소중한 덕목으로 꼽히는데, 그들 스스로 자유를 지우려고 하니 이건 정말 '기가 막힌 모순'이다. 더욱이나 진보진영이 '우리 민족끼리'라면서 호의를 보내는 북한에는 '자유존중, 인권존중, 민주주의가 전혀 없다'는 게 현실이다.

결국 지금 진보학자들이라는 분들은 사실상 뜯어보면 진보가 아니라 그냥 좌파일뿐이다. 그것도 사회주의 이념에 어느 정도 호감을 갖는 좌파 정도라고 하는 게 보다 정확한 표현일 수도 있겠다. /김필재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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