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청원…'삼권분립' 근간 해칠 수 있어 우려
법·원칙 적용 아닌 과반수 청원 '인민재판'과 유사
[미디어펜=조우현 기자]청와대 국민청원이 현대식 ‘인민재판’으로 변질, ‘삼권분립’을 침해하고 있다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기업인들의 이름이 수시로 올라오며 반(反)기업정서 표출의 장이 되기도 했다.

2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따르면 이 부회장 등 기업인의 이름이 수시로 거론되며, “휴대폰을 고쳐달라”는 민원부터 “이 부회장을 다시 구속시켜 달라”는 청원까지 심심찮게 게재되고 있다.

이 부회장과 관련된 국민청원은 총 1375건이다. 이 중에는 “삼성 그만 좀 괴롭히자”, “법인세 폐지로 기업 들어와야 청년실업 저출산 해결”이라는 긍정적인 글도 있지만, “삼성 범죄 집단에 대해 꼭 처벌 바란다”며 ‘반기업 정서’를 표출하는 청원이 대부분이다.

지난 4일에는 청와대가 이 부회장의 항소심을 맡은 정형식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파면하라는 국민 청원 답변 내용을 대법원에 전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법치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당시 청와대는 “단순히 청원 답변 내용을 법원행정처에 전달한 것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청와대가 이 같은 청원 내용을 전달하는 것은 사법부의 독립성을 해치는 행위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 2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따르면 이 부회장 등 기업인의 이름이 수시로 거론되며, “휴대폰을 고쳐달라”는 민원부터 “이 부회장을 다시 구속시켜 달라”는 청원까지 심심찮게 게재되고 있다./사진=청와대 국민청원 화면 캡쳐


당초 국민청원은 청와대가 지향하는 ‘직접 소통’의 수단 중 하나로,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국정철학을 실현하고자 도입된 것이다. 이 제도를 통해 어느 곳에서도 보호받지 못했던 억울한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순기능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특정 청원에 20만 명 이상이 응답하면 정부의 공식 답변이 이어지는 방식은 삼권분립의 근간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법과 원칙에 따르지 않고, 단순히 몇 명이 동의했느냐에 따라 정부가 움직이는 것이 ‘인민재판’의 형태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인민재판은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에서 시행됐던 것으로, 재판의 기준이 ‘법’이 아닌 ‘집단적 문책’이라는 점에서 위험요소가 다분하다. 청와대가 실시하는 국민청원 역시 이와 형태가 유사해 “‘인민재판’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정 부장판사 사건을 언급, “삼권분립이 존재하긴 하냐”고 지적했다. 그는 “사법부가 청와대 법무사의 사무소가 됐다”며 “사법부도 권력의 충견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현진권 전 자유경제원 원장은 “청원제도는 ‘IT 시대의 인민재판’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며 “최근에는 정부의 홍위병을 앞세워 적을 치기 위한 수법으로 활용되는 경향이 짙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법이 ‘국민정서’라는 이름으로 침해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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