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동건 기자] 소재 기근에 허덕이는 극장가에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은 어느덧 하나의 보증수표가 됐다. '26년'(2012),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 '내부자들'(2015), '강철비'(2017), '신과 함께'(2017)까지 프레임에 갇혀 있던 캐릭터들은 스크린을 통해 새롭게 부화했고, 서로 핏대를 세우고 눈물샘을 자극하며 대중의 마음에 깊숙히 스며들었다.
'여중생A'도 이러한 웹툰 원작 영화의 강세 속에 큰 날개를 달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너무 쉽게 본 걸까. 포장지를 벗기고 나니 웹툰의 영화화가 꼭 정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 '여중생A'(감독 이경섭)는 마음 둘 곳이란 컴퓨터 화면밖에 없던 여중생 미래(김환희)가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상처를 극복해나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학교 내에선 집단따돌림, 학교 밖에선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미래가 자신의 글을 통해 재능을 인정받고, 친구들과의 관계를 회복해나가는 성장담이다.
'여중생A'는 기본적인 이야기의 틀과 캐릭터는 원작을 따르지만, 서사를 전개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방향을 확 틀었다. 미래의 심리 묘사는 완전히 배제됐고, 그 대신 게임을 좋아하는 미래의 특성에 기반한 판타지적 연출이 가미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어마어마한 오판이다. 세상을 받아들이는 미래의 유약한 시선과 예술적 감성은 원작의 가장 큰 무기였고, 미래의 내적 표정을 들여다봄으로써 가정폭력·학교폭력 문제를 살갗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그저 원작 캐릭터의 외피를 흉내내는 데 머무르고, 늘 봐왔던 폭력의 초상을 재연하기에 급급하다. 그래서인지 얇은 펜선으로 그려낸 무채색 캐릭터들이 살아 숨 쉬었던 원작에 반해 영화 속 인물들은 제 대사를 마치고 퇴장하는 종이인형처럼 시들거리기만 한다.
'여중생A'가 지극히 현실적인 소녀의 성장담으로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던, 한 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던 이경섭 감독의 작법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여중생A'의 생명력은 없어진다.
허5파6 작가의 '여중생A'가 왜 그토록 큰 사랑을 받았는지, 독자들이 왜 아직까지도 이 작품을 보물처럼 아끼는지 '여중생A'의 애독자였던 기자는 잘 알고 있다. 미래가 겪는 문제들은 동화적인 상상력으로 땜질하기엔 너무나 처절한 것들이었고, 현실과 환상의 괴리에 모든 이들이 공감하고 함께 아파했다. 미래는 점차 온몸으로 부딪히며 그 간극을 좁혀나갔고, 독자들은 수많은 여중생 중 하나일 A를 온 마음으로 응원하게 됐다.
우울과 고독이 집약된 미래의 감정을 외로워하는 게임 캐릭터와의 만남 등으로 은유하는 데 그치니 그 깊이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중생A'는 가장 현실적이어야 할 작품이다. 미래는 거대한 어둠과 쓰라린 아픔 속에서도 자신의 감성을 묵묵히 써내려갔고, 이후에는 자신의 글을 통해 크고 작은 성취를 맛봤다. 그 성취가 삶을 윤택하게 만들었고, 여중생A의 회색빛 표정을 무지갯빛 행복으로 바꿔놓았다. 그렇게 미래는 비로소 미래를 꿈꾸게 됐다.
이러한 서사는 온전히 무시되고 그저 '함께 창문 닦기'로, '담임선생님 난 뺏기'로 학급생들과 대통합을 이룩하니 10초 분량의 학교폭력 근절 캠페인 영상보다도 기승전결이 떨어진다. 학교폭력을 소재로 한 작품이야 '파수꾼'(2011), '명왕성'(2012), '여왕의 교실'(2013), '우아한 거짓말'(2014), '학교' 시리즈 등 해마다 나왔다. 여기에 '여중생A'는 아무런 차별점 없이 소재를 보탰을 뿐이고, 주동자와 피해자, 방관자들이 급격히 화합하는 모습으로 학교폭력의 무게를 쉽게 잊는 무책임까지 더했다.
이런 '여중생A'에 어떤 말을 남겨야 할까. 원작 모독이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미디어펜=이동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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