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무차별 선거메시지극심, '알지 않을 권리'도 보호받아야

   
▲ 황근 선문대교수
6.4 지방선거가 끝났다. 이번에 처음 실시된 사전투표제에서 보인 높은 참여열기와 ‘박근혜정권수호 대 정권심판’이라는 불꽃 튀는 쟁점에도 불구하고 투표율은 기대했던 것만큼 높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솔직히 지방선거에서 60%대에 육박하는 참여율이라면 그렇게 낮은 수치라고는 할 수 없다. 80~90년대 보여주었던 80~90%를 상회했던 획기적인 투표율은 자발성과 다양성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 정치시스템에서 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2012년 대선 때 나타난 50대 유권자들의 80% 투표율 역시 일상적인 현상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의 관심은 투표율이 어느 정당이 승리하고 누가 당선 되는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만 쏠려 있는 것 같다. 선거라고 하는 것이 정치권력을 놓고 벌이는 ‘끝장대결’이라는 점에서 결과는 매우 중요하다. ‘이기면 대박, 지면 쪽박’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주의국가에서 선거는 ‘권력을 가진 자 즉 통치자’와 ‘권력을 갖지 못한 자 즉 피통치자’간의 불평등 구조를 선거가 치루어지는 기간만이라도 한번 역전시켜보자는 심리적 동조기제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권력을 잡고 있는 자나 잡으려는 자 모두 평소 말로는 국민들을 하늘처럼 모신다고 떠들어대지만 실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는 정치인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아니 그런 정치인은 눈을 씻고 봐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선거 때만이라도 국민들을 위해 백골이 진토 되도록 분골쇄신(粉骨碎身)하겠다고 립 서비스하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건국 이래 수없이 치러졌던 선거에서 후보자들이 내걸었던 공약들 중에 1%만 이루어졌더라도 지금 대한민국은 경제대국은 물론이고 정치선진국 반열에 당당히 올라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이게 다 말로만이고 당선되면 화장실 들어갔다 나온 사람들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이 표변할 것’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투표하고 또 누군가를 지지해왔고 또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시지푸스의 바위나 ‘욕하면서 본다는 막장 드라마’처럼.
 

때문에 선거캠페인기간 동안만이라도 지하철 역 입구에서 또 건널목에서 평소 목에 빳빳이 힘주고 다니던 나리님들의 90도 절 받는 재미도 민초들에게는 하나의 낙이 아닐 수 없다. 또 실현 안 될 것은 뻔히 알면서도 장밋빛 공약들에 대해에 나름 카타르시스가 없는 것도 아니다. 때문에 허경영 수준(?)의 황당무개한 공약들도 재미라면 재미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지지난 대선에서 그가 10만표 가까운 지지를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나선 고승덕후보는 전처소생의 딸이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고후보가 자신과 남동생 등 피붙이를 전혀 돌보지 않았다"며 비판한 것에 대해 다른 후보의 공작정치라며 반격에 나섰다. 고승덕후보는 불특정 다수의 휴대폰가입자들에게도 상대방 후보 의혹등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유권자들은 '알 권리'도 있지만, '알지 않을 권리'도 있다. 차후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이같은 양면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방향으로 법이 보완돼야 한다.

그런데 이번 지방자치선거를 보면서, 이런 립 서비스도 지나치면 서비스가 아니라 폭력일 수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후보자들간에 벌어지는 이전투구다. 이미 우리 선거에서 네거티브 캠페인의 폐해는 일상화 되어 버린 지 오래되었다. 유력 지자체 후보가 아들 발언으로 패배하고, 교육감후보가 딸의 페이스북 발언으로 곤두박질 치는 것을 보면서, 또 30년지기라는 후보자간에 볼썽사나운 자식폭력 이전투구를 보면서 마음 편한 사람이 몇이나 있었을까?이 때문에 덕을 본 후보자들을 빼고.

그렇지만 더 불쾌한 것은 내가 왜 후보자 자식들의 발언이나 집안 문제를 듣고 불쾌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가화만사성이라고 후보들의 사생활도 투표결정 요인 중에 하나일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사적인 더구나, 불쾌하기 그지없는 메시지들을 선거 때라고 무조건 들어야 한다는 것은 솔직히 폭력이나 다름없다.
 

불쾌한 아니 전혀 듣지 않아도 될 서비스들은 또 있다. 선거기간 내내 휴대전화를 통해 마구 무단침입하고 있는 선거메시지들이다. 하루에도 수십차례 밤낮 가리지 않고 울려대는 내 지역 후보자들의 막가파식 선거메시지도 귀찮아 죽겠는데, 나와 아무 상관도 없는 강남구나 멀리 경북 청송, 충남 공주 출마자들의 메시지를 내가 왜 받아보아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전화메시지를 통한 선거운동이 합법이라고 하지만 자기 지역구도 아닌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무차별로 마치 크레모아 터트리듯이 선전물들을 뿌려대는 후보자들이 과연 이 나라와 국민들을 위해 정치하겠다는 사람들인가는 둘째 치고 정상적인 인격을 가진 인간들인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당선만 된다면 어떤 사람들이 어떤 피해를 입어도 괜찮다는 정치꾼들의 커뮤니케이션 폭력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을 괴롭히는 선거 커뮤니케이션 폭력의 하이라이트는 SNS다. 이미 대한민국 사이버 공간은 정치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정치지형화되어 버린 지 오래다. 더구나 선거 때만 되면 선거운동 메시지들은 물론이고 사이버 공간의 모든 메시지들이 정치적으로 오염되어 버린다. 그 와중에 사실 확인도 되지 않은 불쾌한 네거티브 메시지들이 확대 포장되어 SNS 공간을 도배해버린다. 때문에 합리적인 담론은 끼어들 틈이 있을 수 없다. 이번 선거 결과에서 보듯이, 네거티브 캠페인이나 사적 스캔들 함정에 걸린 후보자들은 도저히 살아남을 수가 없다. 설사 선거가 끝나고 그게 사실이 아닌 허위라고 밝혀지더라도 선거결과를 뒤엎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나경원 후보의 ‘1억 성형설’처럼 말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선거판은 국민들의 ‘알 권리(right to know)’는 신장되었는지는 몰라도 ‘알지 않을 권리(right not to know) 또는 혼자 있을 권리(right to let me alone)’은 마구 침해되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폭력공간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결과적으로 우리 선거판은 케이토(Kato) 교수가 제시한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권리(right to communicate) 중에 ‘홀로 있을 권리나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원천 말살하고 있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인간의 의사소통능력과 자유를 획기적으로 신장시켰다는 인터넷과 정보통신네트워크가 이런 커뮤니케이션 폭력을 더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발달 속도에 따라가지 못하는 인간들의 제어능력 한계 때문일 수도 있고, 기술을 인간의 탐욕스런 욕망구현 수단으로 인식하는 도덕성 문제일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 정치사회 수준이 인터넷이라는 최첨단 기술을 사용하는 수준에 그대로 투영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몰라도 되는 또 혼자 있을 수 있는’ 인간의 천부적 권리를 침해하는 커뮤니케이션 폭력은 반드시 사라져야만 할 것이다. 혹시 그것이 지금처럼 ‘똥탕물(?)’ 수준의 한국정치 수준, 선거문화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리는 단초일지도 모르겠다. /황근 선문대 언론광고학부교수,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