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나흘 앞둔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재차 강조하면서 동시에 종전선언 합의에 서명할 수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비핵화를 하지 않으면 제재를 해제할 수 없다고도 말했다.
북미가 세기의 정상회담 결과를 담을 합의문 협의에 막바지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북한은 합의문에 CVID를 명기하는 것에 주저하고 있는 모양이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직접 마주앉아 CVID와 핵사찰단의 북한 영변 핵시설 조기 파견 등 각본 없는 담판을 벌여야 할 국면으로 보인다.
최근 성김 주필리핀 미국대사가 이끄는 미국 협상팀과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이끄는 북측 협상단의 판문점 실무협상이 종료됐으나 CVID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면서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체제보장이라는 세기의 협상에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를 볼 때 아직까지도 미국과 북한 간 비핵화 방식에 차이가 남아 있고, 비핵화 조건으로 요구하는 북한의 체제보장 과정 즉, 제재 해제와 경제 보상,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이후 주한미군 문제까지 어느 하나도 쉽게 타결이 이뤄질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지시간으로 7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은 반드시 비핵화를 해야 하며(They have to denuke), 비핵화하지 않으면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또 “회담이 성공적이면 한국전쟁 종전 합의에 서명할 수 있다”면서 미북수교 가능성과 함께 “김 위원장의 백악관 방문이 있을 수 있다”고도 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이날 김 위원장이 “비핵화할 의지가 있다고 내게 직접 말했다”면서 “(CVID를 위해) 김 위원장은 크고 담대한(big and bold) 결정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겉으로 보기에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든 트럼프 대통령이 12일 싱가포르에서 김 위원장과 마주앉기 전 협상 목표와 전략을 밝힌 것이다.
같은 날 트럼프 대통령은 “누차 말했지만, 이것(12일 열릴 북미정상회담)은 하나의 과정”이라며 “한 번의 회담으로 거래(one-meeting-deal)가 아니다”라고 했다. 또 “단순한 ‘사진촬영용’(photo op) 자리가 되지 않을 것이고, 최소한 좋은 관계로 시작해 좋은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여러 차례 회담을 열어 비핵화 협상에 나서기로 한 데에는 핵 문제와 체제보장을 일거에 해결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식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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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좌)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연합뉴스 |
지금까지 북한과 미국의 협상 과정에서 확인된 상황은 미국과 북한은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세부 내용까지 명확히 알고 있으며, 하지만 북미간 아직 합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고, 12일 북미 정상회담에서 빅딜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으며, 미국은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할 경우 많은 보상을 해줄 것이며, 완전한 비핵화의 핵심은 북한의 핵무기과 핵물질을 조기에 미국으로 반출하는 방식이다.
미국은 이미 북한에 트럼프식의 비핵화 방식을 전달했고, 그동안 북미는 성김과 최선희의 판문점 실무협상에서나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이 미국을 방문해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만난 과정에서 이를 논의해왔지만 아직 합의를 이루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앞으로 남은 수일동안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북한 비핵화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들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상회담이 개최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설득해서 성공적인 결과를 낸다면 모를까 별다른 성과없이 정상회담이 종료된다면 북한의 권위만 높여주는 실패한 정상회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 선임연구위원은 “모든 정상회담은 성공한다는 속설도 있지만 결국 회담의 목표인 북한 비핵화에 있어 얼마나 진전된 결과를 내 놓을 수 있는가가 이번 미북 정상회담의 성패를 결정짓는 핵심 쟁점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트럼프 식 비핵화 해법이 무엇인지 실체가 공개된 적은 없다. 하지만 미국 주요 인사들의 발언으로 추정해본다면 ‘신고 후 바로 핵무기와 핵물질을 미국으로 반출’하고 이후 북한 전역에 대한 폭넓은 ‘임의 사찰’을 강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신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은 북한의 핵 관련 신고 이후 핵무기와 핵물질을 미국으로 이전하는 방식에 대해 김 위원장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기존의 ‘신고-검증-폐기’ 순서에서 ‘신고-(핵심)폐기-검증-(기타)폐기’ 순서로 협상의 주도권을 미국이 가져가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초기적재’로 불리는 이 방식에 북한이 동의할 경우 완전한 비핵화가 되는 것으로 신 센터장은 “제재 해제를 위해 핵무기와 핵물질을 포기해야 하고, 나중에 남아 있는 핵무기의 일부라도 보유하고자 할 때에는 그간 포기한 핵무기의 기회비용을 생각할 때 다른 마음을 먹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6.12 정상회담에서 ‘초기적재’ 방식과 ‘임의사찰’을 포함한 비핵화 합의를 이끌어 낸다면 협상은 성공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에 합의를 못하고 다음번 정상회담을 기약한다면 또 다른 실패를 예고하는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다만 12일 북미 정상회담은 ‘북한의 비핵화 프로세스의 시작’이라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고, 북미 정상회담 이후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13~14일 서울을 찾아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을 한 뒤 14일에는 중국 베이징을 방문할 예정이어서 1차적으로 북미간 큰 틀에서 비핵화 합의를 이룬 뒤 이어지는 후속 회담에서 구체적 협상이 진행될 가능성도 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