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때나 아무 곳으로 부름받는 사람은 행복한 골퍼

방민준의 골프탐험(9) - 친구와 선후배가 금요일 오후에 주말라운드 '5분대기조' 합류 요청시 난 몇번째 순위일까 

화사한 꽃들이 만발하고 녹음이 짙어지는 골프시즌이 돌아왔다. 겨울동안 '밭'을 열심히 갈아온 주말 골퍼들을 설레게 하는 골프 시즌을 맞아 국내 최고의 골프칼럼니스트인 방민준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의 맛깔스럽고 동양적 선(禪)철학이 담긴 칼럼을 독자들에게 배달한다. 칼럼에 개재된  수묵화나 수채화는 필자가 직접 그린 것들이어서 칼럼의 운치를 더해준다. 주1회 선보이는 <방민준의 골프탐험>을 통해 골프의 진수와 골퍼의 바람직한 마음가짐을 가다듬기  바란다. [편집자주]

   
▲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골프는 이제 선택받은 일부 계층만이 즐기는 스포츠라는 굴레를 어느 정도 벗었다. 여전히 골프에 대해 이질감을 갖는 사람이 적지 않으나 경제적 능력만 허락한다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스포츠로 자리 잡은 느낌이다. 
 

다른 스포츠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 때문에 보통 사람들의 스포츠로 인식되는 데는 한계가 있겠지만 최근엔 필드에 나가지 않고도 유사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스크린골프가 대중화 되어 남녀노소 불문하고 즐길 수 있는 스포츠로 입지를 넓혀가는 추세다. 특히 기업을 경영하거나 개인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골프는 거의 필수 스포츠로의 하나로 꼽힌다. 
 

그렇다고 건강하고 돈 있고 시간 있으면 맘껏 즐길 수 있는 게 골프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골프만큼 동반 플레이어를 구성하는데 복잡 미묘한 상수와 변수가 적용되는 스포츠도 찾기 어렵다. 대부분의 구기운동이나 단체로 이뤄지는 운동은 참가자들이 그냥 열심히 하기면 하면 되지만 골프에서는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동반자가 될 수 없다.

한번 가정해보자. 특정한 친구나 선후배의 입장에서 골프 라운드를 하고 싶은 사람을 우선순위로 꼽을 때 나는 과연 몇 번째가 될까. 의외의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입장에서 선호하는 골프 메이트를 꼽아 봐도 어떤 종류의 골퍼가 환영받는 골퍼인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주말에 라운드가 예정되어 있는데 금요일 오후 한 사람이 불가피하게 참여할 수 없다고 통고해와 급히 한 사람을 충원해야 할 상황이 되었을 때 조인 요청을 할 사람들을 우선순위로 떠올려 보자.
 

격식을 따지지 않는 친구가 제일 먼저 떠오를 것이다. 시일이 촉박한데다 미리 예고된 것이 아니기에 이것저것 따지는 사람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지킬 것은 지키는 친구라면 골프 메이트로서 금상첨화다.  이런 친구들은 일단 골프장을 탓하지 않는다. 거리가 멀든, 시간이 이르든 늦든 오케이다. 날씨도 탓하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라도 클럽하우스에 출현하는 것을 철칙으로 여기고 가능한 한 기를 쓰고 라운드를 하려고 한다. 

   
▲매너가 좋다는 것은 최상의 호객 조건이다. 골프 룰을 철저히 지키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음은 물론 동반자를 배려하는 태도가 몸에 배었다면 기분 좋게 초대하고픈 골프 메이트가 될 것이다. /삽화 방민준

아무 때나 연락해도 만사 제치고 참여하는 골퍼는 환영받는다. 이점 매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부분이다. 대개 골프 약속을 하면 한두 달, 짧아도 두세 주 전에 하는 것이 예의인데, 금요일 저녁쯤에 전화를 해서 내일 또는 모레 골프를 하자고 하면 분명 결례인 것은 확실하다. 상대방의 일정이나 입장은 염두에 두지 않고 일방적으로 본인이 편리한 대로 요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전화를 하는 사람은 그대로 “이러면 결례가 될 텐데”하면서 어려운 입장이 되고, 전화를 받는 사람은 또 그대로 “내가 얼마나 함부로 대할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하루 이틀 전에 라운드 요청을 하는 거냐.”라며 불쾌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각도로 생각해보자. 그런 결례를 무릅쓰고 전화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을 좋은 파트너로, 이렇게 결례를 해도 이해할 수 있는 골프광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이런 전화가 걸려오면 만사 제쳐두고 나가는 것이 상책이다. ‘저 친구는 골프에 관한 한 아무 때나 연락해도 괜찮은 친구’라는 인상을 심어준다는 것은 자신이 바로 그에게는 최고의 골프 메이트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정말 불가피하게 거절할 사유가 있다면 정중하게 사양하고 다음번에 꼭 다시 연락해줄 것을 요청하는 것을 빠뜨리지 않는 것이 골퍼의 예의고 전략이다.

매너가 좋다는 것은 최상의 호객 조건이다. 골프 룰을 철저히 지키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음은 물론 동반자를 배려하는 태도가 몸에 배었다면 기분 좋게 초대하고픈 골프 메이트가 될 것이다. “골프만큼 남을 속일 기회가 많이 주어지는 게임도 없을 것이다. 또한 골프만큼 기만행위를 한 사람이 상대방으로부터 경멸을 받는 게임도 없을 것이다.” 19세기 골프 애호가 프란시스 메이트가 청년들에게 골프를 권하기 위해 쓴 책에서 한 말이다. 남이 못 볼 것이라고 생각해 볼을 치기 편하게 옮기거나 OB가 분명한데도 아니라고 우기고, 스코어를 줄여 신고하는 행위를 하는 골퍼는 조인 요청 순위에서 맨 끝으로 밀려난다. 도덕성 정직성은 좋은 골프 메이트가 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핸디캡이 낮다는 것은 결코 좋은 골프 메이트의 필요충분조건이 못된다. 프로 못지않은 훌륭한 기량을 갖고 있어도 동반자를 배려하지 않고 자기 기분에 따라 플레이하는 고수는 환영받지 못한다. 기량은 좀 떨어지지만 라운드 자체를 즐기고 동반자들과 담소를 나누며 잘 어울린다면 골프 메이트로서는 중상위에 랭크될 수 있다. 좋은 매너에, 겸손하고, 격식도 안 따지고, 누구와도 잘 어울리면서 좋은 실력까지 갖추었다면 그는 최상의 골프 메이트가 되기에 충분하다.

많은 사람들이 은퇴해서 실컷 골프나 치자고 생각하지만 골프 메이트 구하는 게 그리 간단치 않음을 절감한다. 경제적 여건과 건강 여건이 일치하지 않는다거나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어 곤란하다거나 하는 기본조건을 맞추는 것조차 쉽지 않을 뿐더러 이 같은 조건을 고루 갖추었다고 해도 호불호(好不好)의 감정에 따라 마음에 맞는 3명을 짜 맞추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이럴 때 자신이 만약 아무나 아무 때나 아무 곳으로라도 부름에 응할 수 있는 골퍼로 두루 알려져 있다면 참 행복한 사람이다.
 

이밖에도 골프에 대한 이론과 기능을 겸비하고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가르치려고 덤벼드는 골퍼, 동반자가 속이지 않고 플레이하는지 감시의 눈을 번뜩이는 친구, 내기에서 딴 돈을 고스란히 챙기는 친구는 골프 메이트 순위에서 한참 뒤로 밀린다.

앞에 열거한 여러 가지 선택기준과 조건들을 종합해보면 사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골프 메이트의 수준을 다음과 같은 다섯 단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골프매너다. 아무리 골프를 잘 쳐도 동반자를 배려하지 않는 골퍼는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 한다. 비신사적인 행위와 부정행위의 낙인이 더해졌다면 ‘불가촉 골퍼’로 전락하고 만다.

둘째는 골프 열정이다. 골프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골프매너는 갖췄을 터이니 사실 가장 중요한 선택기준이나 다름없다. 골프에 대한 열정으로 충만한 사람은 우선 격식을 따지지 않는다. 아무 때나 연락해도 군소리는커녕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달려오고 날씨나 골프장, 동반자를 가리지 않는다. 이른 새벽 전화를 해 한 시간 후에 어디 골프장으로 나오라고 해도 달려 나올 사람이다. 곰곰이 따져보면 이것저것 재지 않고 동반요청을 해온다면 요청받는 입장에선 상대방이 자신을 0순위 골프 메이트로 인정한다는 셈이어서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셋째는 바른 셈이다. 라운드와 뒤풀이에 따르는 비용을 동반자들이 골고루 나누어 부담하는 것은 동반자 모두를 당당하게 만든다. 이는 동등한 조건에서 플레이를 펼치는 골프정신에도 부합된다. 누군가가 비용을 100% 부담키로 돼있다고 해도 바른 셈은 필요하다. 가령 내기를 해서 땄다면 캐디피를 내준다거나 뒤풀이 비용으로 보태는 것도 바른 셈의 한 방법이다. 그럴 기회도 없다면 공을 한 박스 사서 동반자들에게 나눠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매번 내기로 돈을 챙겨가는 사람은 밉상이다.

넷째는 골프를 즐기는 자세다. 동반자들과 싱그러운 잔디 위를 걸으며 담소하는 것 자체를 즐거움으로 여기고 게임이 잘 풀리든 안 풀리든 한 샷 한 샷에 정성을 쏟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좋은 동반자가 될 수 있다. 미스 샷을 내고도 불쾌감을 드러내지 않고 기대 밖의 스코어에 내고도 그럴 수도 있다며 태연히 받아들이는 골퍼라야 초청자명단 우선순위에 오를 수 있다.

마지막이 실력이다.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골프실력이 실은 동반요청을 할 때는 중요한 기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이상하지만 사실인 걸 어떡하랴. 물론 앞의 다른 조건들을 다 충족한다면 실력 있는 골퍼가 환영받겠지만 하나라도 결격사유가 있을 경우 골프실력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초청자명단의 맨 끝자리는 골프만 잘 치는 사람의 몫이다.

각 항목의 최고점수를 5점으로 환산해 자신의 골프메이트 지수를 매겨보면 의외의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5점이 넘으면 매우 훌륭한 골프 메이트라고 보면 틀림없을 것이다. 10점 미만이라면 자신을 심각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의 골프메이트 지수는 과연 얼마일까.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