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엽적 사안을 '중대한 하자' 침소봉대, 지주와 은행 모두에 상처 볼썽사나워

KB국민은행의 전산시스템교체 갈등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핵심 쟁점은 전산시스템 교체가 적법한 절차를 거쳐 이뤄졌는가 하는 점이다. 이사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KB은행 사외이사들은 적법한 절차를 거쳤으므로 아무런 문제나 의혹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사진은 이건호 행장도 처음에 지난해 11월 전산시스템을 IBM에서 유닉스체제로 교체하는 것에 동의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감사위원회에서도 문제가 없었다. 감사위원들은 정병기 감사가 뒤늦게 제기한 전산시스템 교체 중단을 요청하는 안건의 상정자체를 기각시켰다.

이건호행장과 정병기 감사는 이사회 결의 사항을 무시한채 최근 경영협의회를 통해 재검토 의견을 받아냈다. 이를 근거로 이사회에 재의결을 요청했지만, 사외이사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감사는 전산시스템 교체 문제를 내부 이사회에서 해결하지 않고, 감독기관인 금융감독원에 조사를 요청하는 돌출행동도 벌였다. 은행의 일을 내부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감독기관에 의뢰해 사태를 해결하려는 방식을 취한 것. 은행가에선 다들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조짐을 보이면서 이건호행장과 사외이사들간에 갈등도 수습되지 않고 있다. 이사회결의사항을 부인하는 이건호행장의 리더십에도 흠집이 생기고 있다. 정병기감사가 이사회를 절름발이로 만들고, 외부로 갈등을 확산시키려는 행태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행장의 우유부단한 리더십은 금융지주에까지 불똥이 튀게 만들고 있다.
 

KB국민은행 주전산기 교체논란에서 가장 핵심적 열쇠는 선정과정에서 ‘중대한 하자’가 있었느냐 여부다. 중대한 하자가 없었음에도 이 행장과 정 감사가 금융감독원까지 끌어들여서 문제를 삼는 것은 경영일탈 행위가 될 수 있다. 전산시스템 교체문제는 이사회와 감사위원회 등의 의결을 거쳐 진행됐기 때문이다. 절차적으로 종료된 사안에 대해 행장과 감사가 IBM이라는 특정업체를 비호하거나, 감싸고 돈다면 의혹이 돈다면 문제다. 배임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행장은 해박한 금융지식에다 강직하고 청렴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 문제가 이렇게까지 불거진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다.
 

반대로 중대한 하자가 있었음에도 이사회가 이를 거부했다면 이사회에 대한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을 수 있다. 이 경우에도 은행장 등 경영진과 이사진간에 상호불신이 도를 넘었다고 볼 수 있다.

   
▲ 이건호 KB국민은행장, 전산시스템 교체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기위한 리더십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이사회 중심의 경영을 회복하기위한 이행장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이건호행장과 정병기 감사가 강조하는 중대한 하자의 핵심은 전산기종간 성능테스트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대목이다. KB국민은행은 2013년 11월 전산기종간 BMT(Bench Mark Test, 성능테스트)를 전제로 유닉스를 주전산 기종으로 교체키로 의결했다. 정 감사는 이와관련, 17개 항목에서 성능테스트를 하기로 해놓고 10개 밖에 안했다며, 이는 중대한 하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KB은행IT본부는 정감사의 주장은 억지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당초 이 성능테스트로부터 확인하려고 한 것은 유닉스방식으로도 현재 IBM의 메인프레임 방식이 수행하는 수준의 대용량의 전산처리가 가능할 것이냐 하는 점이었다. KB국민은행은 2,800만 고객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최대 은행이다. 동시에 소매금융 중심이어서 전산처리 용량이 경쟁은행에 거의 두 배에 달한다.
신한은행 하나은행 등 다른 은행들은 이미 유닉스를 쓰고 있다. 우리은행도 기종변경을 결의한 상태다.

IBM은 그동안 하드웨어를 싸게 공급하는 척하면서 유지보수비용을 비싸게 받아가 국내은행들로부터 원성을 사왔다. IBM의‘포로’가 되면 빠져나가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최근 대부분의 은행들이 IBM의 과도한 유지보수비용에 대해 반감을 갖고 부품교체등이 가능하고 비용도 싼 유닉스체제로 전환했다. KB국민은행이 뒤늦게 막차를 타는 셈이다. 하지만 IBM은 대용량처리를 위한 메인프레임부문만은 유닉스시스템보다 자신들이 더 우월하다며 지난 40여년간 KB국민은행의 메인전산시스템을 독점해왔다.
 

이같은 문제를 감안하면 유닉스 방식이 IBM처럼 대용량 처리를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느냐를 확인하는 것이 BMT의 핵심이슈가 됐다. BMT을 통해 유닉스로도 대용량 전산처리가 충분히 안정적으로 가능하다는 결론이 났다. IBM도 자신들이 보유한 유닉스 기종을 들여와 성능테스트에 참여했고 성공을 인정했다. 유닉스방식이 안정적이라는 점은 이를 공급하는 업체들만의 주장이 아니었던 셈이다. IBM이 테스트의 유효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이 보다 더 객관적인 성능테스트가 있을 수 없다.
 

당초 17개 항목은 핵심 성능테스트에 미진한 부분이 있을 경우 보다 정밀하게 판단하기 위해 계획된 것이었다. KB국민은행은 10개 항목의 테스트로도 유닉스 방식으로 전환할 경우 생기는 문제에 대한 답을 얻었기 때문에 향후 1년간 실제로 전환을 하는 과정에서 반영해도 문제없는 7개 항목들은 공식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추후 검증하기로 했다. 그런데 정병기 감사는 단지 형식적인 숫자만 들어서 성능테스트의 객관성과 유효성을 폄훼하고 있다. 이는 의혹을 살 수도 있는 대목이다.
 

정병기 감사는 전환리스크를 축소하고, 유닉스 전환비용도 1,000억원을 축소하여 보고했다며 이는 잘못된 결정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이건호행장과 은행내부 경영협의회가 2013년 11월 유닉스로 전환하는 의사결정을 내렸으니 하자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은행IT관계자들은 정감사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말도 안되는 궤변”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주전산기를 새로운 방식으로 전환하는데는 리스크가 당연히 따르기 마련이다. 은행의 주전산기 선정을 위한 협의조정 기구인 스티어링 커미티(Steering Committee)는 이같은 전환리스크 문제로 인해 쉽사리 전환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 KB국민은행 특유의 보수적인 문화도 작용했다.

KB은행은 그동안 변화를 두려워한채 IBM에게 우선협상권을 부여, 전환리스크를 부담하지 않으려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협상기간내에 IBM은 자신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하여 국민은행의 조건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은행 이사진들은 치열한 토론 끝에 성능테스트를 하는 조건으로 6대 4의 의결로 유닉스를 선택하는 결정을 했다.
 

KB금융지주회사의 압력이 있었다면 치열한 토론과 6대 4의 박빙의 표대결이 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정병기 감사는 수많은 토론을 거쳐 성능테스트를 조건부로 의사결정을 한 것에 대해 전환리스크를 명시적으로 몇 개 나열하고 안하고를 물고 늘어졌다. 이것이 본질이 아닌데도 보고서의 수정이나 편집에 대해 조작내지 축소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성능테스트에서 전환리스크가 발견되면 KB국민은행은 불리한 조건을 감수하고 IBM을 다시 쓰겠다는 매우 보수적인 의사결정을 한 바 있다. 정감사는 그런데 보고서 한 페이지의 문구가 초안과 다르다며 이를 조작이라고 부풀렸다.
 

가격부분도 마찬가지이다. 불확실한 전환리스크 때문에 1,000억원의 우발적 비용이 생길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이것은 성능테스트를 하지 않을 때를 상정한 것이고 성능테스트를 거쳐 유닉스의 성능이 IBM의 메인프레임과 동등하다면 불필요한 비용이 된다. 성능테스트만 문제 없다면 기우에 불과한 비용을 정병기 감사는 현실적이고 필연적인 비용인 것처럼 과장한 것이다.
 

적법하게 진행되던 국민은행의 주전산시스템 선정 프로세스가 암초에 부딪친 것은 4월 14일 이사회 결정을 불과 열흘 앞둔 시점에서 IBM대표의 개인 이메일 한 통으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건호행장은 2013년 7월 취임 시 공교롭게 은행IT분야 주요 임원으로 IBM에서 상무를 지낸 인물을 영입했다. IBM은 KB국민은행과 계약이 종료될 때마다 그동안 행내 IBM출신 인사가 주요 의사결정 프로세스에 개입해온 측면이 강하다.
 

KB국민은행은 더 이상 갈등과 내홍을 접고 일치단결해서 전산시스템 교체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 정답은 이사회결의를 존중하는 것이다. 이사회에서 수차례 검토해서 전산시스템을 교체키로 한 것을 이제와서 번복시키려는 것은 모두를 패자로 만드는 것이다. 전산시스템 교체문제야 말로 은행의 백년대계를 위한 것이다. 적법하게 진행된 것을 지연시키는 것은 자해행위다.
 

내년 7월로 예정된 교체가 지연되면 수개월간 임시로 IBM측에 그 기간만큼 관리비용을 비싸게 내야 한다. IBM은 자기네 전산시스템에 묶어놓을려고 수개월치 관리비를 마치 1년치로 달라고 생떼를 쓸 가능성이 높다. 월세를 전세로 달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경우 수백원의 비용을 추가로 낭비해야 한다. 이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주주와 고객들이 알면 난리칠 일이다.
 

정병기 감사는 ‘중대한 하자’ 운운하며 교체작업을 고의적으로 지연시키려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면 당장 중단해야 한다. 지엽적인 사안을 꼬투리잡아 침소봉대해서 발목을 잡으려 한다는 의혹을 사지 말아야 한다.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고객인 KB국민은행을 붙잡으려는 IBM의 필사적인 로비와 농간으로인해 지금의 볼썽사나운 사태가 벌어진 것은 아닌지 곱앂어봐야 한다.
 

IBM은 지금 특별입학시험을 허용해달라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과 같다. 전산시스템 교체선정 문제는 지난해 11월에 이미 마쳤기 때문이다. 입학시험은 그때 치른 것이다. IBM의 지금 행태는 입학시험에 탈락한 학생이 다시금 자신을 특별히 합격시켜 달라고 강변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답답하다. 낙방한 학생이 뒤늦게 울며불며 난리치며 자신도 합격시켜달라고 하는 것은 입학시험규칙을 무효화시키는 것이다.
KB은행의 전산시스템 교체는 카드와 공동으로 진행한다. 카드는 이미 이사회에서 이를 교체키로 하고, KB국민은행의 결정을 따르기로 했다. 전산시스템교체가 지연되면 카드에도 부담을 준다.
 

정병기 감사는 은행의 전산시스템 교체에 금융지주가 개입했다며 의혹을 부풀리고 있다. 하지만 금융지주의 CIO는 은행 등 계열사 IT임원과 중장기 IT투자계획을 협의하게 돼 있다. 공동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전산시스템 교체사업의 경우 은행이 전체의 3분의2인 1300억가량, 카드가 600억가량을 부담하게 된다. 계열사간 공동으로 이뤄지는 전산시스템 교체작업에 대해 금융지주가 개입했다며 공연히 의혹을 부추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금융감독원은 KB국민은행의 전산시스템기종선정을 둘러싼 문제에 대해 검사를 실시중이다. 만약 중대한 하자가 없을 경우 이 문제를 평지풍파식으로 제기한 정감사등이 책임져야 할 것이다. 이사회결정을 준수하고, 이사진간에 순리로 풀면 된다. 시간이 없다. 갈등과 분란은 모두를 루저로 만들 뿐이다.[미디어펜=이서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