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곳곳에 세월호 이준석 유병언, "나부터 잘하겠다" 반성문 공감불러

   
▲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삼풍백화점 붕괴, 최병렬 시장 내내 울고, 시민들도 50일간 눈물

“최 시장 울어요. 최병렬 시장 울어요. 너무 기가 막히나 봐요. 아무 말도 안하다가 눈물만 흘려요.” 20년 전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현장에 있던 한 여성이 이동 단말기를 통해 PC통신 게시판에 올린 글이다. ‘최틀러’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바늘이 있으면 콕 찔러보고 싶었던 사람이 최병렬이다. 진짜 혈액이 도나 혹시 외계인처럼 퍼런 액체가 흘러나오는 것은 아닐까.

그런 그도 내내 울기만 했다.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겪으면 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법이다. 사람들은 그가 우는 것을 보고 신기해하면서 울었다. 우리도 그렇게 오십 일을 울었다. 슬퍼서 울었고 분해서 울었다(미안해서 울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그건 ‘오바’다). 선배 하나는 그 날 이후 매일 술을 마셨다고 했다. 욕할 사람이 많은 것 같았지만 따지다보면 아무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더 분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세월호와 수많은 이준석과 수많은 유병언이 있었다. 다들 우울증이 왔다. ‘증’이 길어지면 ‘병’이 된다. 그건 먼저 간 사람들에게 대한 최악의 무례다. 그런데...이제는 눈물을 닦을 때인데 얘들은 대체 왜 이러니. 슬퍼했으니 이제는 짱돌을 들잖다. 시국 선언한 문인들 이야기다.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가 이들 주장의 요지다. 당연하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대한민국은 너무 빨리 발전했다. 덕분에 우리는 전통사회와 산업사회와 탈산업사회가 같은 공간 안에 공존 하는 세계 유일의 나라가 됐다. 경제는 압축성장이 가능하지만 민도(民度)는 그게 안 된다. 좀 어렵게 말하자면 환경과 의식의 비동시성이다. 공간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조화가 심하게 불일치한다. 첨단 시설을 갖춘 아파트에 까막눈 촌부가 입주한 꼴이다.

경제는 압축성장, 민도는 아직....

그 간극을 좁히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 누구를 위한 성장이고 누구를 위한 발전인지 이제는 따져봐야 한다. 여기서 누구란 당연히 우리고 사람이고 인간이고 대한민국 국민이다. 뒤쳐진 사람의 가치를 되살리는 것, 그게 우리의 할 일이다. 그런데 이게 왜 시국선언감이지?

진짜 재난 공화국은 김영삼 정부 때다. 목포에서는 항공기가 추락하고 전북 부안의 격포에서는 여객선이 침몰했으며 부산 구포에서는 열차가 이탈해서 승객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이른바 ‘3포’의 재앙 이후 본격적으로 한강 다리가 끊어졌고 삼풍백화점은 그 절정이었다. 그런데 그 시절 시국선언이 등장했다는 이야기를 소생은 들은 기억이 없다.

   
▲ 우리 주변엔 숱한 세월호와 이준석선장, 청해진 사주 유벙언씨가 있다. 세월호는 김대중 노무현정권을 거쳐 서서히 가라앉았다. 문인들이 시국선언을 하는 것은 박근혜정부를 극도로 싫어하는 탓이다. 짱돌을 들자는 선동적인 시국선언보다는 "나부터 잘하겠습니다"라는 반성문을 써야 공감과 울림이 있다. 삼풍백화점 무너졌다고 시국선언이 있었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세월호가 침몰한 후 해경과 민간어선들이 필사적으로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세월호는 김대중 노무현정권 거쳐 가라앉아

당연하다. 그건 시국선언 대상이 아니니까. 그러니까 지금 시국선언의 속마음은 현 정부가 싫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눈물을 안과 의사의 소견까지 첨부하여 조롱하고(김어준의 KFC 9회 방송을 보시라. 웃고 떠들고 녹화현장 자체가 정신병원이다) 정부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이다. 세월호가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쳐 가라앉은 것처럼 대한민국은 현 정부가 만든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우리가 만들었다.

정부의 발 빠르지 못한 대응과 물어뜯어도 시원찮을(이건 시인 마야코프스키의 표현이다) 관료주의도 결국 우리가 만든 것이다. 정상적인 논리라면 이 대목에서 필요한 건 시국선언이 아니라 반성문이다. 나부터 잘 하겠습니다, 라고 해야 공감도 되고 울림폭도 넓다. 무엇보다 분노 선동과 책임 전가는 길거리 좌익들이나 하는 짓이지 문인들의 영역이 아니다.

김수영도 말했고 김지하도 말했다. 풍자가 아니면 다 ‘꽝’이라고. 그게 안 되니까 선언 같은 걸 하는 게 아닐까요? 묻는 분들이 있다. 동의하고 싶지 않다. 명색이 문인인데 그렇게까지 말하면 그 사람들 너무 초라해지잖아.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