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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경수 전 청와대 춘추관장 |
‘지방선거 당선자는 대권 잠룡’이란 그릇된 언론보도 태도
6.4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한국의 언론은 선거결과에 대한 분석 기사를 연일 쏟아내고 있다. ‘승리 없는 지방선거 정국주도권은 누구에게’, ‘충청, 이번에도 캐스팅 보트’, ‘박근혜 마케팅에만 의지한 여당, 비전·리더십 보여주지 못한 야당’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 분석 기사 가운데 꼭 들어가는 것 중 하나가 지방선거와 차기 대권과의 연계구도 분석이다. 즉, 지방선거 결과로 새로운 잠룡들이 떠올라 차기 대권 구도를 뒤흔들어 놓았다는 분석기사이다.
대표적인 것이 아래 예시한 기사들이다.
‘지방선거를 통해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희정 지사가 강력한 대선주자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한국일보)
‘원희룡 제주지사 당선인과 남경필 경기지사 당선인이 대선주자군에 편입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재선 성공으로 일약 야당의 유력 대선주자로 떠올랐다. 안희정 충남지사도 재선 성공으로 대선주자급으로 격상됐다.’(세계일보)
‘경기도지사에 오른 남경필 후보도 여권의 예비 대권후보 명단에 존재감을 깊이 새겼습니다. 원희룡, 홍준표 두 후보도 제주와 경남에서 큰 표 차로 승리함으로써 유력한 잠룡의 입지를 한층 더 굳혔습니다.’(YTN)
시도지사는 대권 잠룡인가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시도지사를 임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대권후보 반열로 올려놓고 분석하는 한국 언론의 보도 태도는 1997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이인제 경기지사 때문에 시작된 것으로 풀이된다. 처음 실시된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경기지사로 당선된 이인제 지사는 임기 중인 1997년에 신한국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나섰고 경선에서 탈락하자 국민신당을 만들어 출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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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경필 경기도 지사(오른쪽)가 경기도 교육감에 당선된 이재정씨와 함께 경기도 선관위회의실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2002년 경기지사에 선출되었던 손학규지사 역시 유력 대권후보로 거론되다 지사직을 마친 뒤 2007년 대통령 선거를 위해 당을 옮겨 민주당 경선에 나섰다. 2002년 서울시장에 선출되었던 이명박 시장 역시 임기를 마친 뒤 나선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되면서 경기지사와 서울시장 당선자들은 항상 유력한 대권후보로 언론에서 언급되었다.
수도권 광역자치단체장으로 한정되었던 지방선거 승리자에 대한 언론의 대권후보 취급은 2010년 지방선거 이후 그 대상이 더욱 확대되었다.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2010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김두관 경남지사에 대해 당시 언론은 차기 대권후보로 지칭하였고 여기에 고무된 김두관 지사는 임기도중 지사직을 사퇴하고 민주당 대선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경선에서 탈락하였다.
지방선거 승리는 대권 잠재 후보라는 언론의 보도 관행은 이제 그 대상이 전국으로 퍼진 느낌이다. 2014 지방선거가 끝나자 언론에서 대권후보로 거론되는 인사는 수도권의 박원순시장, 남경필지사를 넘어 충남의 안희정지사, 경남의 홍준표지사, 제주의 원희룡지사 등으로 그 범위가 더욱 넓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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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한 박원순시장이 부인 강난희 여사와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
언론의 그릇된 ‘시도지사는 대권 잠룡’ 프레임
언론에서 시의 적절한 기획기사를 작성해 보도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고 권리이다. 그리고 수용자들 역시 이런 유의 기사에 관심을 보이기 때문에 언론에서는 수용자의 요구에 부응한다는 측면도 물론 있다. 따라서 지방선거가 끝나자 언론에서 지방선거 결과와 향후 정국 구도에 대한 분석은 물론 더 나아가 3년 뒤에 있을 대통령선거까지 지방선거 결과를 연계시키는 것에는 크게 무리가 없을 수 있다.
그런데 언론에서 간과한 것이 있다. 지방 선거가 끝나고 처음 당선된 시도지사에게 가장 급한 것은 시정과 도정의 파악이고 이어서 선거공약을 어떻게 실행시킬 것인지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재선 혹은 3선에 성공한 시도지사에게는 그동안의 행정 결과에 대한 유권자의 요구 사항을 파악해 사안별로 유지, 보완,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일 것이다.
즉, 시도지사 당선자에게는 엄청난 현안이 기다리고 있는데 언론에서 이 부분에 대한 언급 없이 다음 대권구도 틀이라는 프레임으로서 당선자들을 보도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주민들은 지방선거에서 지방자치를 위한 시도지사를 뽑은 것이지 다음 대통령선거에 나설 후보를 뽑은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릇된 언론 보도의 부작용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시도지사가 임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대권후보 반열로 올려놓고 차기 대권구조를 분석하는 한국 언론의 보도 태도는 그동안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지방선거 승리자를 언론에서 차기 대권의 잠룡으로 취급하면서 이인제지사, 김두관지사 등이 이러한 언론의 헛된 보도에 고무되어 임기도 마치지 않고 지사직을 내놓았다.
물론 경선에서 혹은 본선에서 떨어진 것은 본인의 책임이지만 이들이 그만둔 지사직을 다시 선출하기 위한 수백억 원의 재·보궐 선거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들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비용 외에 무형의 낭비는 더욱 심각하다. 이들이 시장이나 지사직을 수행하면서도 결국 관심은 대권에 있기에 자신도 모르게 지방 행정을 등한히 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낭비되는 행정력을 계량하기는 힘들지만 상당히 클 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주민에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지방선거는 대선 전초전이 아니다
많은 언론들이 지방선거를 차기 대선의 전초전으로 지칭한다. 그러나 지방선거는 지방선거일 뿐이며 대선을 위한 전초전이 아니다. 그리고 광역단체장 당선 자체가 차기 대권후보로 가는 지름길은 더더욱 아니다. 그보다는 당선된 뒤 시정을 또는 도정을 어떻게 잘 이끌었는지가 차기 대선을 위해서는 더 중요한 일일 것이다. 국민들은 지방선거 당선자가 만일 대통령후보로 나왔을 경우 이들이 당선됐다는 사실보다는 이들이 그동안 얼마나 지역 행정을 잘했는지를 기준으로 대통령 감을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론도 지방선거에 당선됐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이들을 대권후보로 취급하기 보다는 당선자들이 자신을 선출한 지역 주민들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그리고 얼마나 잘하는지 등을 수시로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통령으로서의 자질 여부를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평가 작업은 정기적으로 꾸준히 이루어져야 하기에 언론으로서는 매우 힘든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언론이라면 이런 작업을 해야 한다. 오로지 흥미만을 위해 무책임하게 당선 다음날 당선자와 차기 대권구도를 연계해 보도하는 것은 소위 ‘황색 언론’들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당선자들을 지속적으로 평가하고 그 결과를 국민들에게 알려주어 차기 대선을 위한 올바른 판단 근거를 제공하는 것은 ‘진정한 언론’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곽경수 전 청와대춘추관장,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