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미륵불플랫폼, 유정복은 토박이플랫폼, 남경필은 김문수방패플랫폼 활용

   
▲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정몽준은 박원순이 구사한 플랫폼 고착화 전법에서 크게 졌다. 송영길은 유정복이 그물을 친 출생 플랫폼에서 밀렸고 김진표는 남경필이 집어 든 김문수 전지사라는 방패 플랫폼에 당했다. 부산에서 오거돈은 무소속 무플랫폼 고집으로 석패했고 대구에서 김부겸은 플랫폼 표준 싸움에 무릎 꿇었다. 강원도 최문순은 경춘 플랫폼으로 회생했고 광주 윤장현은 안철수 바이러스 플랫폼으로 체통을 지켰다. 한 곳만 더. 충남 안희정은 미래에서 온 그대, 미륵 플랫폼으로 연거푸 수성했다. 
 

이처럼 플랫폼이라는 새 개념은 정치공학이 난무하며 불꽃을 튀기는 선거판에도 용하게 쓰일 수 있는 전략이 된다. 예술이라 부를 만큼 기괴한 정치 현장에도 적용해볼 분석과 예측, 전망의 틀로서도 활용할 수 있다. 프레임 전쟁이다 진영 논리다 하며 정치인과 여론을 발가벗겨놓기 일쑤인 닳은 정치 논객들 입에 담기 전이라 더욱 참신하다. 미디어 플랫폼 전략으로 선거의 추억을 다시 한 번 건드려보자.

우선 직시할 것은 커뮤니케이션 지금 대세가 플랫폼이라는 사실이다. 선거는 벽보부터 시작해서 연설과 토론, 인터뷰, 홍보 등 전 과정이 미디어 활동이다. 간단하게는 홍보나 광고, 정치마케팅이라고 축약하지만 과학적인 태도로는 종합커뮤니케이션전략이라고 일컫는다. PR(public relations)과 IR(investor relations), PP(public policy) 그리고 PI(president image 또는 personal image)를 모두 합친 게 종합커뮤니케이션전략이다.

이 가운데 IR은 기업의 경우 투자자와 소통이지만 선거에서는 유권자, 특히 지지 세력에 대한 관리와 소통이 된다. PP는 정책 또는 대외 관계 활동이고. 모두 중요하지만 선거에서 가장 핵심적인 파트는 리더이자 개인으로서 형상을 보여주는 PI활동이다. 이러한 PR+IR+PP+PI 세트인 종합커뮤니케이션전략 성패를 가르는 그 어떤 바탕이자 토대로서 플랫폼 전략이 주목받고 있다.
 

플랫폼이란 물론 기차역 플랫폼과 표현이 같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시스템을 제공하기 위해 공통적이고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기본 모듈(토대)’을 말한다. 최초 플랫폼은 1923년 GM에서 나왔다. 슬로언 사장이 포드사 대량생산시스템에 대항하기 위해 고안한 소품종 다량생산 양식이 곧 강력한 새 시스템, 즉 플랫폼이 되었다. 포드는 양산 대중차 T형 포드에 전사적 자원을 집중했지만 GM은 3개 정도 플랫폼을 기축으로 뷰익, 올즈모빌, 캐딜락, 쉐보레 등 여러 브랜드를 다양하게 생산하는 유연하고도 풍성한 시스템으로 승기를 잡았다.

중후장대한 양산체제를 버라이어티한 플랫폼의 창의성이 꺾은 첫 사례였다. 이후 1949년 뉴욕 레스토랑에서 프랭크 맥나마라가 지갑이 없어 당황한 경험에서 비롯된 최초 신용카드 사업인 다이너스 클럽도 플랫폼 전략 새 지평을 열었다.
 

이렇게 공급자가 깔아놓은 판에 이용자들이 들어와 한 동안 규칙과 습관을 지키며 일상적인 생활, 소비, 수용 공간으로 확정하는 플랫폼이라는 개념은 제조, 결제, 지식 등 전 분야에서 성장해왔다. 하이라이트는 단연 음원유통 플랫폼인 애플 아이튠즈, 스마트폰 플랫폼인 앱스토어와 안드로이드다. 한국 최강 카카오톡도 플랫폼이고 세계 최대 동영상 포털 유투브, 검색 포털 구글과 네이버, 게임도 하는 구글 플레이, 스웨덴 온라인 음악서비스 스포티파이(spotify), 온라인 영상서비스업체 넷플릭스도 모두 플랫폼들이다.

   
▲ 6.4지방선거에서는 후보별로 다양한 플랫폼전략이 제시됐다. 서울시장의 경우 박원순후보(오른쪽)는 진보와 중도라는 프레임 구태를 벗어나 시민운동플랫폼으로 유권자들에게 파고들어 승리했다. 정몽준후보는 농약급식만으론 박시장의 시민플랫폼전략을 이기지 못했다. 야구르트 아줌마의 주문을 끊을 정도로 강력한 신제품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지금 미디어산업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로지 플랫폼 얘기뿐이다. 결국 종합커뮤니케이션전략 매개체인 미디어 자체 본성이 메시지에서 콘텐츠로 이행했었고 현재는 플랫폼으로 변화해 있다는 분석이다. 미디어는 플랫폼이라는 명제에서 선거 승패 원인을 진단해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후보는 플랫폼 고착화 전략을 펼쳐왔다. 진보나 중도라는 프레임 구태를 떠나와서 과반을 얻는 대중 정치인을 지향하는 오래가는 플랫폼 전법을 들여왔다. 야쿠르트 아줌마하고 한 번 거래하면 십 수 년도 이어 가는 고객 정서를 파고든 셈이다. 정몽준 후보로서는 야쿠르트 끊을 정도로 강력한 신제품을 들고 4년 이상 기약하는 새 플랫폼을 보여주지 못했다.

반칙이긴 하나 구독 신문, 배달 음료 바꾸려면 자전거 한 대 쯤 선물로 덥석 안겨줘야 했는데 속 좁은 ‘농약급식’ 테이프만 틀어댔다. 이에 아웃복서로 빙빙 돈 박원순 후보는 교체비용도 크고 희미한 새 플랫폼을 물리치고 시민운동 플랫폼을 고착화하는 전략을 지속적이고 일관된 태도로 지킬 수 있었다.
 

인천은 태어난 고향에서 구청장 했던 경험까지 살려 일하겠노라는 유정복 후보를 택했다. 난적 송영길 후보와 대비시킨 감성적 토박이 플랫폼으로 승기를 잡았다. 이 출생의 공감 플랫폼 위에서 유정복후보 개인 리더십 형상이 되는 PI 전략은 호감– 매력– 선택으로 불을 지폈다. 송후보가 임기 때 중앙과 적극 공조해가며 야권 이미지를 흐린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해주는 야성이라는 출생 플랫폼을 스스로 무너뜨린 결과를 가져왔다.

경기에서는 김문수 – 남경필로 묶어세운 ‘새누리당의 야당’ 이라는 방패 플랫폼이 이겼다. 석패한 김진표후보는 관료 이미지가 너무 강해 관피아를 배격해야만 하는 사회적 플랫폼이라는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부산과 대구는 지역정당, 지역주의라는 구태를 확인한 듯 했으나 적어도 PI와 종합커뮤니케이션전략 면에서는 플랫폼 격돌이 잘 드러났다. 오거돈 후보는 단일화 후에도 무소속을 고수한 값을 치렀다고 본다. 야권보다는 야당이라는 정당플랫폼을 도외시한 이상주의적 독자 플랫폼은 역시나 조직도, 세력도 취약했다. 동정표가 큰 변수였지만 읍소하는 정도로 몸을 던지지는 않았다. PI 측면에서 역시 관피아라는 망령이 삼켜 버린 예다. 대구 권영진후보는 상대 후보를 추켜세우는 양반 플랫폼으로 표용했다. 이변은 없다고 믿고 초조해하지 않는 한결같음을 미덕으로 내세워 전통을 중시하는 주민들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강원도 최문순 후보도 ‘네 네 도지사’ 별명답게 잘 듣고 낮은 데로 향하는 강원도 기질을 최대 자산으로 활용했다고 본다. 지방 독립 정서가 강한 강릉과 달리 서울 경기와 잘 섞이는 경춘 플랫폼을 활용해 야당이지만 중앙과 잘 섞이는 리더라는 PI로 이겨냈다. 충남 안희정 후보는 두 말할 것 없이 옛날 충청 맹주인 JP와 완전 대조되는 밀짚모자 쓴 케네디 PI로 성공했다. 너무 정치적이었지만 국가지도자 대망론은 언젠가는 집권하고 싶은 지역민들에게 미륵불 같은 미래 플랫폼으로 다가왔을지 모른다.
 

요약하면 메시지 구호 전달과 감정 호소로 띄우는 프레임 경쟁 식 구태는 더 이상 선거 결정 요인이 될 수 없음이다. ‘정권심판’과 ‘정권수호’라는 여야 프레임 전쟁이 부각된 듯해도 실제 유권자들은 각자 선거구에서 생활자로서 느끼는 우월한 플랫폼을 선택했다. 이 플랫폼은 야쿠르트 배달이나 신문 구독처럼 꽤나 오래가는 성향일수도 있지만 아주 사소한 리더 몸짓 하나, 즉 PI 전략 한 컷에 변심하는 초민감 터치 폰과도 같았다.

거듭 확인한대로 진보 보수로 대결하는 이념 성향과 프레임 대결보다 일꾼, 인간미, 친근감, 지역 밀착, 공감, 상식 같은 핵심어들로 집약되는 마음속 교두보, 즉 플랫폼 경쟁이 두드러졌다. 미디어 플랫폼 리더 애플과 안드로이드 경쟁 상황처럼 선거도 품질과 편의성, 수월함, 실질적 가치로 정면 승부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플랫폼 씽킹에 익숙해지는 유권자들은 점차 늘고 있다. 탈이념으로 향하면서 생활자 자신 일상과 습관 공감을 사로잡고 매혹시키는 토대를 제공하는 플랫폼 창출 정치인만이 지속 가능하게 일할 수 있다는 교훈이다. 미디어도 콘텐츠도 아닌 플랫폼이라는 상황 설정이 선거와 정치를 개조하기 시작했다./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