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파 전성기에 진짜좌파에 대한 목마름 더욱 커져
'사민주의=반공 좌파'…우익의 전략적 파트너로 키워야
   
▲ 조우석 언론인
종북 좌파와 구분되는 진짜 좌파 사민주의(社民主義)가 존재한다면 우린 얼마든지 참아줄 수 있고, 그들과 공존도 가능하다. 그게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의 대안이라고 판단해서가 아니다. 그 정도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허용해야 정상이다. 결정적 이유는 따로 있다. 그래야 주사파 전성시대를 종식시킬 전략적 연대도 그들과 함께 모색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상식을 재확인한 게 원로 언론인 남시욱 이사장의 저술 <한국진보세력연구>개정증보판(청미디어 펴냄)이었다. 그 책의 서평 제목대로 온건좌파 사민주의 실종은 우리현대사의 비극이 맞다. 그리고 비극은 현재진행형인데, 투신자살한 노회찬의 소속당인 정의당 현주소가 그러하다.

의원 5명의 미니당이지만 지지율은 자유한국당을 앞선다는 그 당은 명색이 이념정당이다. 때문에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지만, 그걸 당 이름으로 올리진 않는다. 생존 당시 노회찬 등이 당명을 사회민주당으로 바꾸려 했다. 그게 정석이고, 유럽 복지국가를 만든 사민주의 노선을 분명히 하자는 취지인데, 당내 NL파의 반대에 밀려 결국 정의당으로 굳었다.

노회찬-심상정이 주축이던 그 정당의 현주소가 그렇다. 그 둘은 해산된 통진당의 전신인 민노당 시절 당내 종북세력과의 갈등 끝에 뛰쳐나오지 않았던가? 그만큼 사민주의의 현주소는 엉거주춤하다. 그와 다른 갈래에서 경제학자 정승일이 사민당 창립을 준비했던 게 5년 전이다.

장하준과 <쾌도난마 한국경제>를 함께 쓴 그 정승일 말이다. 하지만 그건 희망사항일뿐 등록도 못해보고 끝났다. 또 다른 갈래의 주대환 전 민노당 정책위원장의 경우 등록(한국사회민주당)까진 했다. 2016년 총선 전이다. 유감스럽게도 시도당 당원 수 등 정당 요건을 충족 못 시켜 끝내 등록 취소됐다. 사민당은 깃발만 들어보이다가 다시 접는 걸 반복할 뿐이다.

다분히 한국적 현상인데, 정치 선진국으로 가려면 가짜 좌파와 구분되는 진짜 좌파가 필요하다는 게 상식 아니던가? 종북과 주사파에 대한 염증-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사민주의 역시 결국은 빨갱이라고 몰아붙이곤 하지만, 구분할 건 구분하는 게 옳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주사파 강점기가 언젠가는 끝나고 그들의 한계가 만천하에 폭로될텐데, 그때를 예비하기 위해 사민당은 장려돼야 옳다. 쉬운 얘기다. '반공 좌파'가 존재한다는 걸 알면 된다. 일테면 6.25 당시 해외파병을 그토록 신속하게 결정해 대한민국을 살린 주역이 누구였던가? 미국 트루만 대통령과 영국 애틀리 수상인데, 둘은 각각 민주당과 노동당 소속이다.

   
▲ 의원 5명의 미니당이지만 지지율은 자유한국당을 앞선다는 그 당은 명색이 이념정당이다. 때문에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지만, 그걸 당 이름으로 올리진 않는다. 생존 당시 노회찬 등이 당명을 사회민주당으로 바꾸려 했다. 진짜 좌파인 사민주의는 보수의 '전략적 파트너'가 돼야 한다는 게 원로 언론인 남시욱의 '한국진보세력연구' 개정증보판이다. /사진=연합뉴스

각자가 리버럴-사민주의로 모두 '반공 좌파'다. 우리현대사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건국 이후 처음으로 사민주의 노선을 걸었던 조소앙의 사회당이 그러했다. 임정 요인 조소앙은 김구와 함께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했다. 하지만 공산당에 실망해 김구에게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했다.

그리곤 사민주의와 꼭 닮은 삼균(三均)주의 깃발 아래 만든(1948년 말) 게 사회당이다. 창당대회에 이승만 대통령이 비서관을 보내 축사를 낭송했는데 정말 멋졌다. "공산당과 싸우는 나라에서는 사회당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우익정당 일색인 마당에 사회당이 생긴다니 반갑고, 더구나 조소앙 선생이 이 당을 한다니 반갑다."( <한국진보세력연구> 144쪽)

그런 움직임은 1950년대 후반 서상일의 민혁당 등으로 내내 이어진다. 의회민주주의 수용을 내세운 서구 사민주의와 같은 맥락이다. 그 직전인 1956년 창당된 조봉암 진보당도 결국은 사민주의다. 당 강령에 "소비에트공산주의는 진정한 사민주의와는 상용할 수 없다"고 선언하지 않았던가?

그런 흐름이 1980년대 주사파 득세 이후 돌연 끊겼지만, 1960~80년대까지 고정훈의 민주사회당, 김철의 사회당 등으로 이어졌다는 것도 중요한 대목이다. 왜 그들은 반공 좌파였을까? 1951년 사회주의인터내셔널(SI) 대회가 올린 깃발이 선명한 반공산주의였다는 걸 기억해두자. 고정훈이 창당 때 "철두철미한 반공정신"을 내세운 것도 그 맥락이다.

그래야 한국 풍토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판단을 했겠지만, 뭣보다 기형적 좌파인 김일성-김정일 집단은 결코 안 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1980년대 후반 주사파 등장이란 정말 말도 안 되는 역사의 후퇴다. 그게 이후 30년 반(反)국가세력으로 자라났다는 점도 다시 놀랍다.

당면한 국가위기 앞에 잠도 잘 안 온다는 분도 주변엔 많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중요한 게 종북 주사파란 역사의 돌연변이에 불과하며, 언젠가는 자기모순 때문에 무너지고 만다는 신념이 아닐까? 정상적 좌파, 진짜 좌파와 비교해보면 그들의 몰골이 정말 흉측하다는 점도 재확인해두자.

아직도 민중-민족 타령을 하는 그들의 본질은 자폐적 민족주의자다. 그래서 조선조 말 위정척사파의 후손이며, '역사 괴물'이다. 북한 전체주의 세력과의 동거 속에 마지막 전성기를 누리지만, 메뚜기도 한철이다. 언젠간 그들이 정리된 뒤 정통 우익과 진짜 좌파가 이념 시장에서 경연을 벌일 것이다. 그 전에 필요한 게 있는데, 그건 좌와 우 사이의 ‘역사적 화해’다.

우선 사민주의자들은 대한민국 우익세력에 대한 서운함을 거둬들여야 옳다. 조봉암을 사형시킨 이승만 박사, 혁신계(사민주의를 가리키던 옛 용어)의 암흑기를 만들었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불신이 저들에겐 없지 않다. 사민주의를 짧게 쓰고 용도폐기해왔다는 원망인데, 이해 못할 게 아니다.

그걸 덜어주고 달래는 게 우익의 임무다. 동시에 사민주의 계열 역시 '평양 것들'과 완전히 다르다는 확신을 우리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혁신계의 아킬레스건인 대중성을 획득할 수 있다. 그런 역사적 화해 위에 새로운 시작을 꿈꿀 때가 지금이다.

맞다. 진짜 좌파인 사민주의는 우리의 '전략적 파트너'가 맞으며, 그것밖에 대안이 없다는 것을 새삼 보여준 게 <한국진보세력연구>개정증보판이다. 좋은 책은 역사적 상상력을 키워주는 건 물론 현실적 대안 모색에도 일정한 도움을 주는 법이다. 감사한 것은 그 때문이다. /조우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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