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남북이 13일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고위급회담을 열고도 ‘9월 평양 개최’만 결정하고 정작 날짜를 특정하지 못해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올 가을 3차 남북정상회담은 지난 1차 남북정상회담 결과인 판문점선언에 적시된 것인 만큼 김 위원장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하지만 이번에 북측이 이날 회담 의제 중 가장 핵심인 날짜를 못박지 않은 배경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다양한 만큼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견인할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이 분수령을 맞은 셈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14일 전날 남북고위급회담 공동발표문에 정상회담 날짜가 포함되지 않은 것과 관련해 '날짜를 정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발표만 하지 않은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날짜가) 확정이 됐는데 발표를 안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미정”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에 김 위원장과 직접 마주앉아 교착 상태에 빠진 북미 간 비핵화 협상과 종전선언 합의에 대한 접점을 찾아보는 역할을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은 급할 게 없다는 식의 반응을 보인 것이어서 운전자 역할에 브레이크가 걸렸다는 평가도 있다.
미국이 북한의 종전선언 요구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종전선언으로 미국이 신뢰를 보여주지 않는 한 비핵화 문제에서 더 이상 진전은 기대할 수 없다고 요구하는 등 기싸움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미국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조만간 평양을 방문할 예정이고, 이 때문에 북측 당국에 변수가 생겼다는 관측도 나왔다. 우리 정부로서도 비핵화 문제에 진전이 없으면 남북관계 발전에도 한계가 있는 만큼 남북정상회담보다 북미 회담을 우선순위에 올리는 것을 환영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북측이 이런 이유를 들어 남북정상회담을 미룰 것을 제안했고 당초 가급적 빠른 시일 내 남북정상회담을 갖기를 바랐던 우리 정부도 북미 간 비핵화 대화를 지켜봐야 하는 입장인 만큼 북측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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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이 13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고위급회담을 갖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 왼쪽 안부터 박명철 민족경제협력위원회 부위원장, 김윤혁 철도성 부상,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 박용일 조평통 부위원장, 박호영 국토환경보호성 부상. 오른쪽 안부터 남관표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 천해성 통일부 차관, 안문현 국무총리실 심의관./통일부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정상회담 날짜가 특정되지 않았고,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후속 실무협의도 구체화되지 않은 점은 여전히 논란 거리로 남았다.
특히 전날 북측의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은 종결회의 때 “북남 회담과 개별 접촉에서 제기한 문제들이 만약 해결되지 않는다면 예상치 않았던 문제들이 탄생될 수 있고 일정에 오른 모든 문제들이 난항을 겪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압박했다.
일각에서는 북측이 자신들의 정권수립일인 9월9일에 맞춰 문 대통령을 초청하는 바람에 한미공조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 우리측이 이런 제안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럴 경우 북측이 자신들의 제안을 받지 않은 우리측에 불쾌감을 드러낼 이유가 충분하다.
하지만 북측으로서도 문 대통령을 9.9절에 초청하는 것은 남북관계에서 본질이 아니라는 전문가들의 평가가 나온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14일 오전 전화 인터뷰서 “그럴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으나 북측도 우리 정부가 그런 제안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그것보다 북측이 ‘9월 안 평양’이라는 데에는 합의하면서도 정작 날짜를 미정으로 남겨 압박 수단으로 썼다”고 관측했다.
이와 관련해서 청와대 관계자도 이날 오후 “문 대통령이 북측으로부터 9.9절 참석을 요청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 팩트”라고 밝힌 바 있다. 북측이 정상회담 날짜를 미룬 배경은 밝히지 않으면서도 이 사실만은 분명히 확인한 것이다.
북미 대화가 진전되고 있는 것이 맞다면 북측은 이번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조만간 있을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앞두고 남한을 압박용 지렛대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지금 남북과 미국은 비핵화와 종전선언을 놓고 얽혀 있는 관계에 놓여 있어 북미관계 진전없이 남북관계도 발전하기 어려운 구도이다.
북측은 아직 미국이 제시한 핵시설 신고 등 비핵화 로드맵을 받을지 결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남측에 미국이 종전선언에 합의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주문한 것이다. 리선권 위원장의 발언을 볼 때 남측에 최소한 남북경제협력에서라도 성의라도 보이지 않으면 남북정상회담도 장담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은 셈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로서는 한달여 기간이 주어진 3차 남북정상회담까지 북미 간 종전선언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숙제를 떠안았다. 종전선언 합의를 이루려면 당연히 북한의 비핵화 진전이 있어야 하는데도 아직까지 북미 비핵화 워킹그룹도 구성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즉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은 언제든 열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특히 이번 정상회담 전후로 비핵화 진전없이 남북 정상 간 만남이 ‘회담을 위한 회담’으로 끝날 경우 문 대통령이 감당해야 할 국내외 비난여론은 커질 것이므로 3차 정상회담 이전까지 북미 간 중재 역할이 더 무거워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최근 미국은 한미 간 긴밀한 공조를 강조하며 철저한 제재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전날인 13일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 비핵화 협상이 같은 속도로 진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 대변인실도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 일정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자 “남북관계 개선과 비핵화 협상이 따로 갈 수 없다”는 입장을 냈다.
폼페이오 장관은 73주년 광복절 축하메시지를 통해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 원칙을 재확인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국무부 자료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국민을 대신해 한국 국민에게 나의 축하를 전하고 싶다”며 “우리는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DPRK)의 비핵화(FFVD)에 대해 긴밀하게 공조해나가기를 계속해나가는 가운데 철통같은 동맹에 헌신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