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 서민보다 부자가 더 혜택, 소득불평등 조장 정권위협

   
▲ 박대식 국제경영원 전문위원
IEA (국제에너지기구)와 IMF (국제통화기금) 등 국제기구들이 개도국의 에너지 보조금 지원정책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과도한 에너지 보조금으로 상당수 개도국들이 재정에 압박을 받는 것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낮은 가격으로 에너지를 과용하고 이것이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IMF는 에너지 보조금을 없애 에너지 사용을 억제할 경우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5%이상 줄일 수 있다고 추정한다.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 이집트, 이란 등 대부분의 산유개도국들은 물가안정과 서민생활을 지원한다는 목적으로 휘발류, 가스, 전기료를 국제시장가격보다 낮게 책정해 왔다. 그리고 국내 에너지 가격과 국제시장 가격과의 차이를 정부재정으로 보전해 왔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20~30달러에 불과했을 때는 부담이 되지 않았지만 최근 몇 년간 국제유가가 100달러를 넘는 고공행진을 하자 문제가 된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2009년에 45조 루피아에 불과하던 유류에 대한 정부보조금 규모가 2013년에는 300조 루피아로 4년간 무려 7배 이상 급증했다. 에너지 보조금이 인도네시아 정부 예산의 20%를 차지할 정도다. 이집트의 경우도 에너지에 대한 보조금 지출이 의료재정의 7배에 달하며 이집트는 재정적자가 GDP 14%나 된다. 이 정도 되면 재정적자 자체도 문제지만 정책의 다양한 선택이 어려워진다. 에너지 보조금 한 항목이 전체 예산의 20%를 차지하면 인건비와 경직성 경비를 제외하면 새로운 분야에 쓸 돈이 없다.
(우리나라도 사정이 비슷하다.)

IEA가 추산한 바에 따르면 각국 정부들이 자국 서민들을 위해 에너지 보조금으로 지원하는 규모가 연간 5400억 달러(2012년)로 이 규모는 이들 개도국들이 해외에서 받는 공적 원조액의 무려 4배에 달한다. 국제기구의 주장은 개도국 정부가 에너지 보조금 규모를 조금만 줄여도 교육이나 의료부문에 지출할 예산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IMF의 보고서는 개도국에서 에너지 보조금으로 혜택을 받는 계층 중에서 소득 상위 20%가 전체 지원금의 40%를 가져가고 하위 20%가 받는 혜택은 전체의 7%에 불과하고 에너지 보조금이 당초 서민생활의 안정이라는 취지와는 다르게 오히려 소득불평등을 조장한다고 지적한다. 에너지 보조금은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시스템을 왜곡시키는 한편 지나치게 낮은 에너지 가격은 한정된 자원의 무분별한 사용을 부추켜 환경오염을 유발할 수 있다.

   
▲ 이라크 내전 격화로 국제 원유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세계각국이 자국민에게 지원하는 에너지보조금이 천문학적으로 급증하면서 재정을 압박하고, 정권을 전복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과도한 에너지 보조금을 줄여 복지와 교육부문재원을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들이 수니파 반란군에 맞서 무장을 한채 전의를 다지고 있다. AP/뉴시스

그래서 국제기구에서는 개도국 정부에 에너지 가격을 통제하기 보다는 특정 계층에게 에너지 바우처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지원시스템을 바꾸는 한편 보조금을 지속할 경우의 문제점을 사회이슈화하여 지속적으로 국민에게 홍보 혹은 교육시킬 것을 권고하고 있다.

실제로 수년 전부터 상당수 개도국들이 에너지 보조금 개혁을 계획하고 실행에 나섰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의 경우 휘발유 가격인상을 추진하다 집권당이 선거에서 참패했고 말레이시아는 작년 보조금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가 새해벽두부터 수천명의 반대 데모에 시달렸다. 이집트의 봄은 밀가루 가격인상이 촉발하지 않았던가.

남의 일이 아니다. 지금 선심을 쓰면 다음 세대가 고스란히 그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우리도 사회 구석구석에 적지 않은 보조금을 숨겨놓고 있다. 지금은 몇푼 안된다고 안심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그것이 큰 눈덩이가 될 지도 모른다. 호미로 막을 수 있을 때 조금씩이라도 정상화시켜 놓아야 한다. 그래야 다음 세대가 고생하지 않는다. /박대식 국제경영원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