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한국 야구가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프로야구 최정예 멤버들을 내세우고도 한 수 아래로 여기는 대만에, 그것도 실업선수들에게 당한 패배니 이만저만 수모가 아닐 수 없다. 이게 다 오지환·박해민 때문인 것 같아 안타깝다.

선동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대표팀은 26일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야구 B조 1차전에서 대만에 1-2로 졌다. 

이날 한국 선발 라인업을 보자. 선발투수는 양현종. 국내 최정상 좌완 투수였다. 타순은 이정후-안치홍-김현수-박병호-김재환-양의지-손아섭-황재균-김하성으로 구성됐다. 각 팀에서 내로라하는 강타자들이었다.

   
▲ 사진=KBO 공식 SNS


하지만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양현종은 1회 대만 3번타자 장젠민에게 3루타, 4번타자 린지아요우에게 투런홈런을 얻어맞고 2실점했다. 이후 6회까지 안타 2개만 더 내주고 무사사구에 추가 실점 없이 던졌으니 충분히 제 몫을 해냈다. 그런데 린지아요우에게 던진 실투 하나가 피홈런으로 연결됐다. 노볼 투스트라이크에서 3구째 던진 직구가 가운데로 몰렸다. 결국 이 때 2실점한 것을 한국은 끝내 따라잡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양현종을 포함해 이어 나온 최충연 등 투수진은 그래도 제 몫을 해냈다. 타선 침체가 문제였다.

대만은 선발 우셩펑 등 세 명의 투수가 이어던지며 1실점으로 한국 타선을 눌렀다. 이 세 투수 모두 실업야구 소속이다. 즉, 한국 프로 최고 타자들이 대만 실업 투수들에게 농락당한 것이다. 한국은 김재환이 4회말 솔로홈런을 때려 뽑아낸 점수가 전부였다. 이날 총 6안타를 쳤다. 김재환이 홈런 포함 2안타, 안치홍이 2안타, 이정후와 박병호가 1안타씩 쳤을 뿐이다. 최다안타를 치고 있는 김현수, 한동안 수위타자였던 양의지, 방망이를 거꾸로 들고 나가도 3할은 친다는 손아섭, 메이저리그 맛까지 보고 온 황재균, 유격수로는 역대급 타자라는 김하성이 모두 무안타 침묵했다.

에이스 투수가 결승 홈런을 맞고, 타선이 제 몫을 못했으니 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경기 내용을 되돌아보면 한국대표팀은 무슨 '저주'에 걸린 듯했다. 

잘 던진 양현종이 실업 선수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4번타자'인 린지아요우에게 하필 실투를 한 것부터 심상찮았다. 1회말 선두타자 이정후가 볼넷을 골라 나가 바로 반격 기회를 잡는가 했으나 안치홍이 잘 밀어친 강한 땅볼 타구가 1루수 정면으로 갔고, 2사 후 박병호의 잘 맞은 타구는 좌익수 글러브로 빨려들어갔다.

2회말 2사 1, 2루에서 김하성이 친 안타성 타구가 라이너로 좌익수에게 잡혔고, 5회말 2사 3루에서 김현수의 호쾌하게 잘 맞은 안타성 타구도 이상하게 중견수 쪽으로 향했다. 6회말 무사 1루에서 김재환이 친 강한 타구는 안타 대신 투수 글러브에 빨려들어가 병살 플레이로 연결되고 말았다. 그렇게 찬스에서 맥을 끊는 불운한 타구들이 이어지며 한국은 패배의 길을 걸었다.

이번 대표팀은 사상 유례없이 대회 시작도 하기 전에 욕을 먹고 비난을 받았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아시안게임 출전을 목표로 병역을 미뤄온 오지환과 박해민을 대표로 뽑았기 때문이다. "야구대표팀의 은메달을 기원합니다"는 조롱이 봇물을 이뤘고, 병역과 관련한 저주에 가까운 비난이 쏟아졌다.

대만전에서 한국이 실력 발휘를 못한 것이 이런 여론(?)과 무관하지 않다. 당사자인 오지환 박해민의 스트레스야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해도, 다른 대표선수들도 상당한 심적 압박감을 안고 대회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첫 경기부터 반드시 이겨야할 상대인 대만을 만나 1회 실점으로 부담감이 생기자 선수들은 경직돼갔고 경기는 꼬여갔다.

   
▲ 사진=KBO 공식 SNS


선동열 감독이 오지환 박해민을 선발한 것이 이런 사태의 시발점이 됐다. 감독이 예상되는 논란에도 두 선수를 선발했으면 그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선 감독은 이유를 설명했고, 금메달로 보답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첫발부터 헛디뎠다. 대만전에서 실업 투수들에게도 쩔쩔 맸으니 앞길이 험난하다. 한국은 대회 3연패에 실패하고, 오지환과 박해민은 많은 야구팬들의 '기원'대로 군대를 가는 것일까.

물론 한국은 여전히 가장 강력한 금메달 후보다. 남은 경기 전승을 하면 우승할 수 있다. 전력 자체로는 유일하게 '전원 프로'로 구성된 한국이 대만, 일본보다 앞선다. 첫경기 대만전 패배가 오히려 쓴약이 돼 선수들의 분발을 이끌어낼 수 있다. 결승에서 대만을 다시 만난다면 얼마든지 혼내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금메달을 딴다고 해도 결말은 꼭 해피엔딩일 것 같지가 않다. 오지환과 박해민은 선발로 나설 주전들이 아니다. 약체팀을 상대할 때 출전 기회는 갖겠지만, 메달 경쟁을 벌일 일본이나 대만전에 나서 죽기살기로 뛰며 승리에 기여할 활약을 펼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즉, 한국이 금메달을 획득해도 둘은 "한 게 뭐 있는데 금메달이냐" "금메달 박탈하자"는 말을 들을 것이 뻔하다. 

예고된 새드엔딩에 첫 경기부터 충격적인 패배로 찬물을 뒤집어쓴 야구대표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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