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 늦은 출시 타이밍, 가격 논란으로 판매부진 크루즈와 '판박이'
저가 기본트림 추가, 사양변경 등으로 소비자 관심 되찾아야
[미디어펜=김태우 기자] 한국지엠의 기사회생 야심작 이쿼녹스가 지난달 100대도 판매하지 못한 97대에서 멈추며 초라한 성적표를 기록했다. 

지난달 완성차 업계는 개소세 인하 혜택으로 전반적으로 상승곡선을 그렸지만 유독 이쿼녹스만 판매가 감소하는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심지어 지난 7월보다 절반가까이 줄어든 성적이어서 마치 신형 크루즈가 신차효과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좌절했던 것과 같은 상황이다.

   
▲ 한국지엠 쉐보레 이쿼녹스 /사진=미디어펜


수입차라지만 완성차 업체가 판매하는 차종이 신차 효과가 한창이어야 할 시기에 월 두 자릿수 판매실적을 보인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굳이 다음 달 물량 서너대를 끌어와 세 자릿수를 맞출 생각을 하지 않은 걸 보니 매우 정직하거나 다음 달도 딱히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6일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지난 6월 출시된 이쿼녹스는 8월까지 석 달간 도합 673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판매 첫 달 385대였던 판매실적이 7월에는 191대로 반토막 났다가 8월 97대로 또 다시 절반 수준으로 꺾였다. 

한 발 늦은 출시 타이밍과 가격 논란이 이쿼녹스의 참패 원인으로 꼽힌다. 과거 한국지엠 군산공장에서 생산 판매했던 2세대 크루즈의 상황과 비슷하다.

국내 소비자들은 지엠대우 시절 '라세티 프리미어'에서 크게 바뀐 게 없는 케케묵은 1세대 크루즈 대신 미국에서 팔리는 세련된 신형 크루즈의 출시를 요구했고 한국지엠은 한참을 끌다가 결국 지난해 1월 2세대 크루즈를 출시했다. 

온라인상의 요구는 뜨거웠으나 오프라인상의 계약은 차가웠다. 원하는 걸 내놓았는데도 팔리지 않은 배경은 다소 늦은 출시 타이밍과 준중형차에 매겨진 소비자들의 니즈를 무시한 가격 책정이었다. 

결국 크루즈의 판매 부진은 한국지엠의 실적악화, 그리고 차량을 생산하던 군산공장의 폐쇄로 이어졌다. 

이쿼녹스 역시 지난해 국내 소비자들이 국내 출시를 고대하던 모델 중 하나다. 하지만 출시 시기는 한참 늦은 상황에서 노사문제로 더 늦어졌고 그 사이 관심은 신선함을 식상함으로 변화시키며 차갑게 식었다. 

중형과 준중형 SUV의 중간쯤 되는 애매한 차체 크기에 중형 SUV의 대명사 싼타페를 넘어서는 기본트림 가격 역시 소비자들이 이쿼녹스에 실망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이런 모습은 크루즈의 전철을 충실하게 밟고 있다. 

물론 출시 시기가 늦춰진 것은 불가항력적인 부분이 있다. 기왕이면 소비자들의 관심이 한창이던 지난해 하반기쯤 출시돼 만만한 구형 싼타페와 맞붙었다면 탄탄한 수요층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을 가능성이 컸겠지만, 사장이 국회 청문회에 불려가 한국 철수설에 대해 해명하는 어수선한 상황에서 신차를 내놓기는 애매했을 것이다. 

올 들어서는 일찌감치 이쿼녹스의 출시 준비를 마쳐 놓고도 군산공장 폐쇄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태로 차일피일 미루다 어차피 늦은 마당에 부산모터쇼를 마케팅에 활용하자는 판단 하에 6월 초로 출시가 결정된 것이다. 

가격은 수입차의 한계가 너무 컸다. 미국에서 생산해 배로 들여오는 이쿼녹스로서는 국내 공장에서 월 1만대씩 찍어내는 싼타페에 비해 원가경쟁력이나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올해 출시한 유일한 신차가 월 100대도 안 팔리는 상황을 방치할 수는 없다. 연식변경 등을 통해 가격과 트림을 재정비해 소비자들의 관심을 되돌려야 한다.

이쿼녹스는 LS, LT, 프리미어 등 3개 트림에 전자식 AWD 시스템을 장착할 경우 200만원이 추가되는 식으로 간결하게 운영된다. 미국에서 생산된 차량을 수입해 판매하는 특성상 다양한 옵션을 추가로 주문받기 어려운 상황이라 트림별로 선호도가 높은 옵션들을 기본 장착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일견 합리적인 트림 운영으로 보이지만 일단 이 방식이 국내 시장에서 잘 먹히지 않는다는 것은 판매실적을 통해 입증됐다. 

다소의 어려움을 감수하고라도 편의사양을 덜어낸 '깡통트림'을 추가해 상징적으로나마 진입가격을 낮출 필요가 있다. 특히 신기하지만 별 쓸모는 없는 햅틱시트(위험상황 발생시 엉덩이를 두들겨주는 기능) 같은 사양을 기본트림에까지 넣어 가격을 올릴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반대로 어댑티브크루즈컨트롤(ACC) 등 경쟁모델 대비 부족한 사양을 넣은 고급 트림도 추가해야 한다. 

가격은 기본트림 기준으로, 사양은 최고급트림 기준으로 언급하는 자동차 업체들의 상술은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지만 의외로 잘 먹힌다. 

다른 자동차 업체들이 잘 안 팔리는 한이 있더라도 기본트림을 '깡통'으로 구성하는 것은 유인효과 때문이다. 마트들이 일단 고객을 매장으로 끌어 들이기 위해 수익에 별 도움이 안 되는 미끼상품을 파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업계에서는 한국지엠이 가격과 트림 조정을 위한 연식변경에 나서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일단 기존 트림 구성대로 들여온 물량을 다 털어 내야 새로운 트림 구성을 적용한 차량을 주문할 수 있는데 아직 상당물량의 재고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기존 재고 때문에 개별소비세 인하 호기를 놓쳐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가격 조정이나 ACC를 장착한 트림 추가 등을 고민하고 있다"면서 "아직 연식변경 시기 등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김태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