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체비평 '한 신문의 추락에 관한 보고서'를 상하 편으로 나눠 게재한다. 우선 동아일보 사건팀장 신광영 기자가 며칠 전에 쓴 칼럼 '알츠하이머라는 전두환… 기억에서 탈출할 자격 있나'가 문제다. 맹랑하게도 그 글은 현대사의 분수령인 1980년대에 대한 운동권적 인식으로 온통 오염돼 있어 우릴 놀라게 했다. 더 큰 문제는 왕년의 동아일보가 신문의 근본까지 잊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2월 그 신문의 창업주(인촌 김성수)에 대한 건국훈장 서훈을 취소했는데, 당시는 물론 지금껏 사실보도를 누락한 데에 이어 관련사설-칼럼을 내보낸 바 없다. 신문 정체성을 흔드는 폭거에 대한 완전 침묵 내지 굴종적 지면제작이 그저 놀랍다. 때문에 이 매체비평은 특정신문 아닌 언론 죽음에 대한 문제제기다. [편집자 주]
[매체비평 연속칼럼]'한 신문의 추락에 관한 보고서'-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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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우석 언론인 |
'동아일보의 침묵 6개월'은 실로 미스터리다. 지난 2월 그 신문의 창업주 인촌(仁村) 김성수(1891~1955)에 대한 건국훈장 서훈을 취소한 국무회의 결정을 놓고 사실보도부터 외면한데 이어 관련 사설-칼럼 단 한 꼭지를 지금껏 내보낸 바 없다. 신문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좌파정부의 폭거에 대한 굴종적 지면제작이라서 그저 아연할 따름이다.
동아일보는 2년 뒤 창간 100주년을 맞는데, 자기 역사와 존재 이유를 내걸 걸고 싸웠어야 했다. 그런 동아에 대한 비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인촌 서훈 취소란 특정매체를 떠나 한국언론 전체의 명예와 직결됐다. 더구나 이 나라를 파탄내온 친일파 논쟁이 핵심이다.
때문에 이 사안에 나 몰라라 해온 언론계 전체의 직무유기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어쨌거나 상반기 언론계 최대 참사가 분명한 이 사안의 발단은 노무현 시절 과거사위의 하나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다. 진상규명위가 2009년에 조사활동을 마감하며 펴낸 최종보고서에 인촌을 친일파 1005명의 한 명으로 분류한 것이 문제의 씨앗이다.
민간단체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파 4000여 명을 담은 <친일인명사전> 펴냈지만, 대통령 직속기구 진상규명위의 결론은 무게가 또 달랐다. 이 기구가 친일파로 분류한 인사에 대한 서훈 취소도 그 여파다. 실제로 독립유공자이면서 친일경력이 있다는 장지연 등 18명의 서훈이 취소됐다.
본래는 19명이었는데, 인촌만 잠시 빠졌다. 주무부처 장관을 상대로 인촌기념회가 소송을 걸었기에 보류된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1,2심 패소에 이어 대법원이 '인촌=친일파'로 확정 판결한 게 1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난해 4월이다. 그게 국무회의에 올라와 서훈 취소로 마무리된 게 지난 2월이다. 이 어수선한 와중에 동아일보가 할 일은 자명했다.
사실보도는 기본이고 이 취소 결정의 부당성을 알리는 사설-기명칼럼으로 지면을 도배했어야 옳았다. 대법원 판결, 국무회의 상정 전후 대대적 캠페인이 필수였다. 사운(社運)을 건 정면대결인데, 인촌 방어만이 아니고 좌파 정부의 난동에 맞선 현대사 지키기가 핵심 아니던가?
그런데도 동아는 한 줄 보도 없이 침묵을 선택했는데, 그게 뭘 의미할까? 동아는 창업주에 대한 확신이 없어 몸을 사리는 걸까? 아니면 바보 신문이거나…. 천하의 동아가 이러면 안 된다. 대법원 판결이야 사법적 진실일뿐 역사적 진실의 몫은 따로 있다. 판결 자체가 '법률 꽁생원들'의 단견이라고 치고 나오는 공세적 지면제작은 박수를 받았을 것이다.
사실 건국 70년이 다 돼 친일파 타령을 반복하는 한국사회의 퇴행성에 질린 사람이 어디 한둘일까? 또 인촌이 누구던가? 일제하 언론인-교육자요, 대한민국 건국의 핵심 정치인이 아니던가? 당대 최대의 지주(地主)로 출발해 근대적 자본가로 몸을 일으켰으니 그 자체로 신화다.
동아일보 창간, 보성전문(고려대) 경영에 이어 '일제시대의 삼성전자'인 경성방직도 일으켰다. 결정적으로 대한민국 건국도 인촌 없인 설명 안 된다. 제2대 부통령 역임보다 중요한 건 우남 이승만, 해공 신익희와 함께 그가 건국에 이바지한 공로다. 무엇보다 한민당의 오너였다. 즉 지금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민주당 계열 정당의 뿌리가 인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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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대 총학생회가 지난 3월 8일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인촌 김성수의 동상을 철거하고 인촌기념관·인촌로 명칭 변경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17년 대법원 판결로 친일행적이 인정된 인촌은 고려대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의 교장을 역임했다. /사진=연합뉴스 |
때문에 친일 시비란 거대한 삶의 공과 과 양면성일 뿐이다. 그런 인촌 방어에 동아일보가 실패했다는 건 근현대 언론-교육-제조업의 신화에 먹칠한 건 물론 건국사를 정의가 실패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부끄러운 역사로 만든 꼴이다. ‘대한민국=친일파의 나라’라는 좌익 논리에 대한 굴종이다.
때문에 동아는 따져 물었어야 했다. 해방 직후 반민특위 활동 때 왜 인촌의 이름은 거론된 바 없고, 조사대상자도 아니었던가? 왜 인촌이 친일의 거두로 키워진 건 1990년대 이후부터인가? 즉 김영삼의 역사 바로 세우기는 친일파 시비가 정신병 수준으로 고질화되는 계기였고, 이후 친북-반일-반미 움직임과 연계해 대한민국 해체 촉진 쪽으로 줄달음질쳤다.
인촌에 대한 친일 시비는 이 과정에서 더욱 고약해졌고, 결국 여기까지 왔는데, 동아의 침묵을 이렇게 비유한 분이 있다. "부모가 총칼을 든 깡패에게 겁박-능욕 당하는 걸 지켜보면서도 오불관언 외면하는 자식….' 동아의 200명 편집국 기자와 편집간부-경영진은 그런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동아만이 문제인가? 고려대 출신 수십 만 졸업생과 교직원은 또 뭔가? 훗날 세월이 좋아져 서훈 재추서를 할 수도 있는데, 명분 축적을 위해서라도 동아일보-고려대는 정신을 차렸어야 했다. 어쨌거나 동아의 침묵은 특정 매체를 떠나 한국언론의 죽음이며, 대한민국 국가 해체의 징후인데, 신문업계에선 동아의 침묵 이유를 두 가지로 꼽는다.
첫째 그 신문 사장을 역임했던 김학준을 비롯한 2000년대 초반 경영진-편집 간부진이 문제였다. 그들은 친일파 시비와 관련해 지면제작을 통한 정면승부 대신 조용한 해결방식을 선호했다. 그게 결정적 패착이었다. 동아가 쥔 무기는 명분과 지면뿐인데 그걸 포기하다니….
둘째 그래서 문제인데, 더 큰 구조적 이유가 있다. 한국사회에 구조적 변화가 시작되고 좌익 운동권이 날뛰던 1980년대 이후 상황에 대응할 능력과 용기를 동아일보가 잃었다는 게 결정적 문제가 아닐까? 사실 그 신문은 80년대 이후 길을 잃었다. 동아일보는 1950년대 반 이승만 캠페인으로 재미보고, 60~70년대 야당지 컨셉에 매달렸던 게 전부다.
그게 일제하 민족지라는 후광(後光) 덕에 한때 그럴싸하고 커보였지만, 실체는 대단한 게 아니었으며 그것마저 80년대 이후 빠른 속도로 소멸해갔다. 좌익 운동권이 발호하며 일제하 일간지 발행 자체를 친일로 몰고 가려는데, 그에 대한 방어조차 못한다는 건 그 신문의 죽음을 뜻한다.
'동아의 침묵'에 필자인 내가 흥분하는 이유가 짐작이 되시는가? 나는 언론인 신분일 뿐 동아일보에서 밥 먹은 바 없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하는데, 오늘 결정적 지적을 마저 하려 한다. 오래 전 신문시장에서 3위로 밀려난 동아를 두고 사람들은 말해왔다. 그 신문은 사람을 키우지 못했고, 오너가 무능했다고…. 모두 맞는 말인데, 더 큰 맹점이 하나 더 있다.
동아일보가 내세워온 반 이승만, 반 박정희로 대표되는 반독재 민주주의가 다분히 허상이라는 것, 그게 포인트다. 즉 그건 위선적이고, 취약하기 짝이 없는 리버럴리즘에 불과하다는 게 내 오랜 판단이다. 그런 납작한 리버럴리즘 따위론 운동권 논리를 돌파하지 못한다.
또 현대사를 좌익논리로 물들인 수정주의 사관 앞에 삽시간에 무너지기 마련이다. 80년대 이후 동아가 걸어온 길이 그랬고, 현 편집국 구성원도 그 논리에 함몰됐다. 서울 성북구에 이어 전북 고창의 '인촌로'가 개명을 추진 중이라지만, 지금 상황은 그런 차원이 아니다. 거듭 밝히지만 동아의 죽음은 국가해체 위기 국면의 대한민국 현주소를 재확인해준다. /조우석 언론인
[조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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