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모두가 스마트폰 속으로 빠져들어 거북이 목이 된다. 왼종일 들었던 머리가 지끈지끈해지는 뉴스의 홍수에 빠져드는 이가 있는가 하면 혹자는 게임으로, 또 누군가는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들여다본다. 퇴근길의 모습이다.

무료함의 무기력이 시계추처럼 반복되는 퇴근길의 일상. 이러한 일상을 바꿔줄 단비 같은 책이 나왔다. 각 분야 28명의 필자들이 참여한 백상경제연구원의 ‘퇴근길 인문학 수업’ 시리즈 ‘멈춤’ 편은 매일매일 조금씩 나를 바꾸는 퇴근길 30분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백상경제연구소는 서울경제신문의 부설 연구기관으로 2013년부터 지금까지 8만여 명의 수강생을 모은 ‘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이하 고인돌)’로 대중의 갈증을 풀어왔다. ‘퇴근길 인문학 수업’ 시리즈는 ‘고인돌’ 콘텐츠를 바탕으로 1인 저자의 학문적 깊이에 의존하는 대신 집단지성의 시너지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36개의 주제를 선정해 하나의 그릇에 담기 어려웠던 ‘인문학’의 범위를 ‘멈춤’ ‘전환’ ‘전진’ 이라는 생의 방향성으로 나누어 담아낸다. 그 첫 만남이 ‘멈춤’이다. ‘퇴근길 인문학 수업’ 시리즈의 첫 포문을 연 ‘멈춤’편은 속도경쟁 사회에 지친 사람들이 인문학이라는 그늘에 잠시 멈춰 자신을 돌아보고, 지적 목마름을 축일 수 있도록 설계됐다.

스터디에 참여하지 않아도, 도서관에 가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의 배움터인 셈이다. ‘멈춤’편은 문학ㆍ역사ㆍ철학과 같은 전통적인 인문학은 물론 생태ㆍ경제ㆍ건강ㆍ영화ㆍ연극ㆍ역사ㆍ경제ㆍ고전 등 인간을 에워싼 문명의 결실을 폭넓게 다뤘다.

우리의 역사부터 남들은 잘 버티는데 나만 힘든 것 같은 인간관계, 회사에서는 종일 엑셀 파일을 들여다보지만 정작 내겐 없는 경제관념, 밤하늘에 떠 있는 빛나는 별들의 이야기까지….

정통 인문학자는 물론이고 정신과 전문의, 배우, 소설가, 고전 번역가, 영화평론가, 경제학자, 군사전문기자, 철학자 등 독자에게 한 발 더 다가가려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친절하고도 생생한 언어가 가득하다.

때문에 독자들은 현실에 존재하나 모호한 인문학 ‘개념’들을 쉽게 이해하고, 스스로 ‘관념’적 사유를 즐기는 차원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차근차근 커리큘럼을 따라가다 보면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을 읽는 식견을 얻을 수 있다.

씨줄과 날줄이 만나듯 다양한 지식들의 접점을 찾는 통섭의 기쁨은 덤이다. 바쁜 일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롯이 나만을 위한 인문학 수업의 지침서로 부족함이 없다.

대중교통에 몸을 싣고 달리는 순간이나 집에 돌아와 잠들기 전까지 퇴근 후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해 쓰는 시간은 많지 않은 요즘, 이 책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30분 독서 생활 패턴에 맞춰 설계됐다.

일상과 밀접한 주제는 물론 독자의 적극적인 개입을 유도하는 커리큘럼이 숨어 있다. 오늘은 무엇을 배울지 한눈에 알 수 있는 수업 시간표이자, 어떤 방식으로 지식을 취해야할지를 알려주는 매뉴얼이다. 순서에 상관없이 마음에 드는 주제를 골라 읽으면 된다. ‘퇴근러’를 위한 최상의 틈새 읽기 전략이다.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정의의 반대말은 불의다. 불합리와 일맥상통한다. 한국 사회의 정의를 논하려면 정과 의리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최소화해야 한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태도가 불의를 눈감아주는 행위를 합리화한다. 정과 의리의 핵심은 이기주의다. 지역에 따라, 당 배지 색깔에 따라, 출신 학교에 따라 ‘우리가 남이가’ 정신으로 하나가 된다.” -본문 62쪽 〈너를 이해해〉

“첫사랑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첫사랑의 애틋함을 간직하는 이유도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과 연관이 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이성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꼈을 때, 그 감정은 가장 강렬하게 기억된다. 이후 몇 차례 연애를 경험하면, 점점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간절함이나 애틋함도 무뎌진다.” -본문 275쪽 〈쉽게 풀어보는 경제원리〉

“깨달음이 없는 공부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내 앞에 돈오점수의 세계가 열려 있다. 문득 나를 깨치고 서서히 닦아나가는 주체는 나 자신이다. 내가 나를 깨닫고, 내가 나를 닦아, 나를 부처로 승화하라. 해답은 내 마음의 근저에 있다.” -본문 409쪽 〈한국의 사상을 말하다〉

추전사를 보면 더욱 명료해진다.  윤후명 시인은 “지금 우리의 인문학은 대학을 쫓겨나다시피 나름의 길로 가고 있다. 그러나 지구가 돌고 있는 한 인문학은 대지에 뿌리내려야 한다.”며 “이 알맞춤한 인문학 안내서가 그 길을 친절히 알려주리라 기대한다.”고 전했다.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는 “이 책에는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읽으면 딱 좋을 길이와 소재의 글들이 듬뿍 들어 있다. 하지만 만만하게 보지는 마시라. 은근히 몰입하게 만든다”며 “자칫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책으로든 스마트폰으로든 훌륭한 읽을거리가 될 것”이라고 강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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