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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회상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
최근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국내 3대 멀티플렉스 영화관 매점에서 판매하고 있는 팝콘(L사이즈)의 가격은 5000원으로 원가 613원에 비해 무려 8배 이상 높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이를 접한 언론매체와 네티즌들은 극장이 팝콘 가격을 부풀려 판매해 엄청난 폭리를 취하고 있다며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극장 주인들이 자신의 독점력을 믿고 막무가내로 팝콘 가격을 올릴 만큼 어리석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도 터무니없이 비싼 팝콘을 사먹을 정도로 순진하지 않다.
그렇다면 왜 영화관에서 판매하는 팝콘은 비싼가? 아래에서는 이 문제에 접근하는 한 가지 방식을 소개한다. 다만 비싼 팝콘 가격과 관련된 다른 중요한 문제, 즉 비용(팝콘 원가)과 가격(팝콘 가격)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비용이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격이 비용을 결정한다는 정도만 지적하고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소비자들이 값싼 가격에 좋은 품질의 물건을 구입하려고 하는 것처럼 판매자들도 자신의 이익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가격을 책정하려고 하는데, 가격차별(price discrimination)이 대표적인 전략이다. 가격차별이란 한 상품을 나이, 성별, 구입경험 등과 같이 눈에 잘 띄는 특성이나 소득수준, 상품에 부여하는 가치 등과 같이 관찰이 어려운 특성에 따라 가격을 달리 매겨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전략을 말한다. 예를 들면 영화관에서 성인과 청소년을 구분하여 각각 다른 입장료를 부과하는 행위나 저녁보다는 아침 시간대의 관람료를 더 싸게 매기는 행위 등이 이에 해당된다.
한편 일상에서 고정된 양을 구입하는 상품(주상품)과 다양한 양을 구입할 수 있는 상품(부상품)이 함께 판매되고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커피머신 판매자로부터 커피머신과 함께 원두 5봉지나 10봉지처럼 다양한 양의 원두를 구입하는 경우가 그 예다. 이처럼 주상품과 부상품을 함께 구입하게 하는 것을 경제학에서는 끼워팔기(tying, tie-in sales)라고 하는데, 이 또한 기업들이 이익을 올리기 위해 사용하는 가격차별 전략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소비자 A는 커피머신에 50의 가치를 소비자 B는 25의 가치를 부여하고 있고, A는 한 달에 원두 10봉지 B는 5봉지를 소비한다고 하자. 원두는 시장에서 언제든지 5의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고 하자. 만약 커피머신 판매자가 A, B의 가치를 알 수 있다면 A에게는 50의 가격에 B에게는 25의 가격에 커피머신을 판매하는 가격차별 전략을 사용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이들이 부여하고 있는 가치를 모른다는 것이다.
이때 판매자는 A, B에게 커피머신을 구입하려면 자신으로부터 원두까지 구입하게 하는 끼워팔기 전략을 사용함으로써 각 소비자가 커피머신에 부여하는 가치에 따라 가격을 달리 책정할 수 있다. 즉, 커피머신은 무료로 (대여해) 주고 A, B에게 원두를 시장가격 5보다 높은 10의 가격에 구매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시장에서 구입할 때보다 원두 10봉지를 소비하는 A는 50을, 원두 5봉지를 소비하는 B는 25를 더 지불하고 원두를 구입하는 것이 되지만, 각각 50과 25의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커피머신을 무료로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손해 볼 것은 없다. 결국 판매자는 커피머신과 원두를 함께 구입하게 함으로써 커피머신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A로 하여금 더 많이 지출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끼워팔기는 부상품(원두)의 소비량을 통해 주상품(커피머신)에 부여하는 가치를 측정하고, 이에 따라 가격을 매기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잉크를 함께 공급하는 프린터 판매자, 면도날을 함께 구입하게 하는 면도기 판매자도 끼워팔기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관의 팝콘 가격이 비싼 이유도 극장 주인의 끼워팔기 전략의 결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극장 주인은 영화관람 서비스, 즉 영화(주상품)와 팝콘(부상품)을 판매하는데, 영화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관객들에게 높은 가격을 부과하기 위해 팝콘 가격을 올리고 대신 영화 관람료는 낮게 책정한다. 관람할 영화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관객이 더 큰 사이즈의 팝콘 또는 더 자주 팝콘을 사먹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팝콘 가격을 올려 이들이 더 많이 지불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극장의 팝콘 가격이 극장 밖 슈퍼마켓의 그것보다 비싼 것도 청소년보다 성인의 영화 관람료가 더 비싼 것처럼 이익 추구를 위한 자연스러운 가격책정 현상이다. 폭리를 얻기 위한 것이라고 비난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정회상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hschung@ke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