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2.4만불 성장판 닫혀...일자리 걷어차고, 경제 저성장늪에 빠지게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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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동근 명지대교수 |
조동근 명지대교수는 27일 미디어펜이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주최한 <기업정책과 한국경제의 진로>세미나에서 "
경제민주화는 인위적인 분배질서를 전제하고 있다"면서 "공정을 표방하지만, 강자의 것을 덜어내 약자에게 옮겨주는 것은 국민의 국가에 대한 의존을 타성화시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조동근 교수는 이날 좌승희 미디어펜 회장 겸 KDI 초빙교수의 주제발표(한국경제 재도약을 위한 기업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패널로 참석, 이같이 주장했다. 조교수는 "국가는 서로 대립되는 경제주체 간의 이해를 조정할 만한 ‘경제계산능력’이 없다"면서 " 경제민주화는 국가개입주의에 지대추구행위가 더해진 최악의 조합으로, 일자리를 걷어차고 경제를 저성장의 늪으로 빠지게 할 것"이라고 했다.
조동근교수는 이날 발표에서 대기업의 중소기업 납품단가 후려치기 문제 등에 대해 구체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실증적인 분석을 가해 주목을 끌었다. 삼성전자 현대차 등 대기업들이 중소협력업체의 등골을 빼먹어 자신들만 살찌고, 협력업체는 고사위기에 몰렸다는 야당, 좌파학자와 시민단체들의 비난에 대해 타당한 가설이 아니라고 지적한 것.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수익률은 양극화되지 않았으며, 대기업에 납품하는 협력업체 모두 매출액대비 총자산수익률과 매출액대비 영업이익률 등에서 동반성장했기 때문이다. 조동근교수는 "우리경제는 지금 국민소득 2만4000만달러에서 성장판이 닫혔있다"면서 각종 규제혁파와 경제자유의 신장을 촉구했다. 경제자유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성장하고, 국민소득이 높고, 청렴도도 제고된다는 것이다.
조동근교수는 이어 "대기업에 대한 사전적 규제가 증가할 수록 정경유착이 늘어날 수 있다"면서 "규제는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현장의 지식을 기업보다 더 잘알 수 없기 때문이다. 조동근교수는 마지막으로 "경제의 정치화와 경제평등주의 정책들이 지속되면 한국경제는 선진경제도약은 고사하고 후발경제에 추월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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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펜은 27일 오후 2시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기업정책과 한국경제의 진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좌측부터) 조동근 명지대 교수, 좌승희 미디어펜 회장 겸 KDI초빙교수, 전삼현 숭실대 법대교수,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 |
다음은 조동근교수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저성장의 구조화’ 조짐이 보이는 현 시점에서 좌승희박사의 문제 의식은 시의적절하다. 좌승희 박사의 경제관은 “자본주의 경제발전은 ‘앞 선자’의 성공노하우를 복제하여 동반 발전하는 것으로, 경제적 차이와 차등을 수반하는 과정이다. 성공하는 주체에게 자원이 집중되는 것은 발전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리고 경제력집중은 경제발전의 불가피한 자연스러운 과정이다”로 요약된다.
박정희 대통령이 압축성장을 위해 대기업을 지원했다고 생각하지만, 당시 대기업은 존재하지 않았다. 시장성과가 우수한 중소기업을 우대하고 앞장세우는 경제적 차별화전략으로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빠른 속도로 성장했을 뿐이다. 중견기업간 레이스에서 승자가 사후적으로 대기업이 된 것이다. 특혜시비는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개발년대 초기 시장은 존재하지는 않았지만 ‘실적과 지원을 교환’해 정부의존을 줄이고 성과주의를 정착해야 한다.
경제 활력저하와 양극화의 원인(遠因)은 1980년대 민주화 이후 ‘경제의 정치화에 있다. 성장하는 기업을 역차별하는 대기업에 대한 획일적 규제와 중소기업에 대한 획일적 지원 등 ‘반차별화 평등주의’ 정책이 일반화되면서 90년대 이후 경제성장의 정체와 동반성장 약화를 초래할 것이다.
한국 재벌의 가장 본질적 문제는 경쟁의 부족에 있다. 우리나라 재벌의 문제는 “자산규모도, 문어발도, 가족지배도 아니며, 총수의 쥐꼬리만한 지분”도 아니다. 그동안 재벌의 문어발 확장을 막고 전문화시킨다는 취지의 규제(투자, 출자, 지분, 업종 등에 대한 규제)가 대기업들을 ‘자기분야 독점자’로 고착화시켜 기업가 정신의 퇴조와 신(新)분야진출을 회피하게 했다. 대기업이 골목상권에 한 눈을 파는 이유도 재벌들 간의 경쟁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업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수립해야 한다. 정부의 규제보다 ‘강력한 경쟁자의 출현’이 더 효과적인 재벌독점행위 교정방안이다. 시장경쟁이 촉진되면 불공정관행도 사라지고 경제력집중도 나아가 정경유착도 해소될 여지가 생긴다. 정경유착을 탓하기 전에 왜 정경유착이 나타났는가를 성찰해야 한다. 정치적 목적에서 나오는 불합리한 규제를 만들어내는 정부의 규제권한이 클수록 정경유착이 조장될 수 있다. 경쟁이 규제를 대신하도록 해야 한다.
기업정책을 ‘정치의 손’에서 ‘시장과 법치의 손’으로 넘겨야 한다. 그 길이 정치적 구호 하에 외국에 선례도 없는 계열사규제, 투자규제, 지분규제, 지분보유형태 규제 등에서 벗어나 기업정책을 정상화하는 길이 될 것이다.
기업정책의 탈정치화를 위한 기업리더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대기업 리더들의 국민경제적 리더십결여가 재벌문제의 정치화를 부추기고 있다. 중소기업 리더들도 대기업규제와 중소기업 보호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국민경제적 관점에서 기업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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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동근 명지대교수는 27일 미디어펜이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주최한 <기업정책과 한국경제의 진로>세미나에서 "경제민주화는 인위적인 분배질서를 전제하고 있다"면서 "강자의 것을 덜어내 약자에게 옮겨주는 것은 국민의 국가에 대한 의존을 타성화시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
발제자의 주장을 “가설로 정리해 보면 결코 기각될 수 없는” 논리구조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반(反)시장주의자들은 이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그들은 일반대중을 향한 설득에 열중이다. 실제로는 설득이 아닌 오도에 해당한다.
경제력집중 및 수익률 양극화에 대한 오도도 문제다. <그림1>이 좌파들이 제시하는 경제력 집중의 근거다. ‘GDP대비 재벌의 매출액’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범주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배(GDP)와 사과(매출액)를 비교하는 꼴이다. <그림-2>는 ‘전체기업 매출액 대비 재벌 매출액 비중’으로 “10대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고 있다”는 증거가 발견되고 있지 않다.
<그림-3>, <그림-4>는 대·중소기업 총자산순이익률(ROA)과 매출액대비 영업이익률 추이를 나타낸 것이다. 이들 그림은 대·중소기업간 ‘수익률 양극화’ 증거로 제시되는 논거다. 하지만 <그림-3>을 잘 보면, 대기업이 IMF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착실히 수행했기 때문에, 2001년 이후 대기업의 ROA가 높게 나타난 것이다. <그림-4>는 매출액대비 영업이익률을 표시한 것으로, 대·중소기업간 수익률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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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GDP대비 재벌의 매출액 비중 추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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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전체기업 매출액 대비 재벌의 비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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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3> 대 중소기업 총자산수익률 추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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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4> 대중소기업 영업이익률 추이 |
우리경제는 저성장의 덫에 갇혀 있다. 2만4000달러에 성장판이 닫힌 경제로 전락하고 있다. <그림-5>는 2010년 이후 분기성장률 추이를 표시한 것이다. 전기대비 분기성장률은 1%미만에 머물고, 동년 전기대비 분기성장률은 4%미만으로 떨어져 있다.같은 수치는 4만불 소득에나 어울리는 성장률 수치다. 우리경제는 성장판이 닫힌 청소년에 비유될 수 있다.
<그림-6>은 1990년부터 2012년까지 실질경제성장률과 실질투자증가율의 추이를 표시한 것이다. 실질경제성장률과 실질투자 증가율은 정확히 동행하고 있으며, 실질투자증가율 추세선은 2010년에 횡축을 끊고 지나가고 있다. 투자활성화를 통해 실질투자증가율을 끌어올리지 않으면 ‘저상장의 구조화’를 반전시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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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5> 2010년 이후 분기성장률 추이: 저성장의 구조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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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6> 실질경제성장률과 실질투자증가율 추이 |
대기업의 중소기업 후려치기 가설이 타당한 것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를 근거로 중소기업 보호하는 법들이 양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유력인사는 2010년 7월 28일 "삼성전자가 5조원이라는 분기 최고 이익을 냈다는 언론보도를 보고, 삼성전자가 (사회와) 더불어 함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를 떠올리며 가슴 아팠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유력인사의 발언은 그대로 여론을 형성하는 단초가 됐고, 정부 각료들의 후속 발언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우리 기업이 전 세계를 상대로 괄목할만한 실적을 올린 것에 대해 가슴 아팠다고 말한 것은 사려 깊은 행동이 아니다. 유력인사의 발언은 ‘반(反) 대기업 정서’에 불을 질렀고,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중소협력업체 쥐어짜기”는 일반대중에 다시 한 번 각인됐다.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협력업체를 쥐어짜는 것이 ‘진실’이라면, 대기업과 협력관계를 맺은 사실(fact)을 공시할 경우 협력업체의 주가(株價)는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다. 반대로 협력업체의 주가가 올랐다면, 시장이 협력관계 그 자체를 긍정적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협력 수주 사실을 KRX 수시공시나 자진공시로 발표한 날짜를 사건일(event date)로 간주하고 평균누적비정상수익률을 계산. A전자와 협력관계를 맺은 협력업체 모두의 계약체결 공시자료를 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본 연구는 30개 협력업체의 협력 수주에 대한 공시를 분석했는바, 이들 기업의 주가는 약 2.5% 정도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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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7> 협력관계 공시에 따른 누적초과수익률 |
중소기업협동조합 납품단가 협의권은 협동조합에게 일종의 단체협약(collective bargaining)을 부여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제3자인 중소기업협동조합의 권한이 강화되고 이해 당사자인 중소기업의 이익은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협의권 부여는 부품거래 시장을 온통 정치판으로 만들 것이다.
제3자 개입으로 주인-대리인 문제가 발생하며 협상기간이 길어지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의 비용이 높아지게 된다. 납품단가 협의를 통해 원자재 가격상승에 따른 위험을 모두 대기업에 전가하면 대기업은 이를 피해가는 방법을 찾게 된다. 중간재를 생산하는 계열사를 만들던가, 구매계약을 외국 중소기업과 맺으려 할 것이다. 협의권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보는 쪽은 보호하려는 중소기업들일 것이다.
부당 단가인하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은 논리적으로 성립하기 어렵다. 가해행위가 의도적이고 그러한 사실을 은폐하려 했으며 그러한 가해행위를 적발하기가 쉽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납품 가격인하는 의도적 가해행위도 아니고 숨기거나 은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납품 가격은 협상력을 반영한 것이다.
부당발주 취소, 부당반품은 계약을 명료하게 하는 것으로 불이익을 피할 수 있다. 기술탈취를 막기 위해서는 ‘M&A를 통한’ 기술거래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외국의 경우 벤처기업이 개발한 기술을 사주는 쪽은 대기업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기업이 벤처기업을 잡아먹는다고 인식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자본공유가 상생의 바탕이다. 이를 막는 각종의 투자규제, M&A규제는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중소기업간 동반성장은 조정경기에 비유할 수 있다.
조정(漕艇)경기에서 1명의 캡틴과 8명의 선수를 한 팀으로 가정할 때, 가장 이상적인 팀 구성은 “네 명의 왼손잡이와 네 명의 오른손잡이”이다. 성적이 더 이상 오르지 않기 때문에 안정적 ‘균형상태’다. ‘균형 상태’는 패자를 계속 솎아낸 결과 사후적으로 얻어진 ‘결과’일 뿐. 코치(정부)는 어떤 선수가 오른손잡이고 왼손잡이인지를 모르고 알 필요가 없다.
동반성장의 파트너는 “서로가 서로를 모색하며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선택하는 것이 맞다. 정부의 판단에 의한 짝찾기는 인위적 ‘2인3각’으로 ‘동반지체’를 부를 수 있다. 대기업·중소기업 협력은 협력에 따른 거래비용을 낮추어야 자생적인 협력기반이 구축된다. ‘중소기업보호’라는 명분에 치우쳐 대기업들의 일방적 지원이나 양보를 강요하면 협력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겨우 먹고 살 만큼의 이익만 보장”, 이는 경제원론의 ‘정상이윤’에 가까운 ‘정의롭고 도덕적’인 개념이다. 시장이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풍족한 이윤을 누린다면 ‘새로운 진입자’를 불러들일 것이다.
경제민주화는 정치논리의 경제에의 외연적 적용이다. 경제민주화는 인위적인 분배질서를 전제하고 있다. “공정을 표방하지만”, 강자의 것을 덜어내 약자에게 옮겨주기 때문이다. 국가는 서로 대립되는 경제주체 간의 이해를 조정할 만한 ‘경제계산능력’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경제민주화는 “국가개입주의에 지대추구행위가 더해진 최악의 조합”으로, 일자리를 걷어차고 국민의 국가에의 의존을 타성화 시킬 수 있다.
좋은 세금의 조건으로 ‘정치적 책임’을 언급한 경제학자는 스티글리츠(Stiglitz)다.
누가 세금을 부담하고 그 세금의 사용으로 인한 혜택의 귀속이 명백하면, 그 세금을 제안한 정치집단에 대한 유권자들의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 현실은 정반대이다. 정치인들은 부담과 혜택의 귀속을 분명하게 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대신 ‘형평성과 공동선’ 등의 정치논리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경제자유도가 높으면 일인당 국민소득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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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8> 일인당 GDP와 경제자유도의 관계: 2004~2009 |
경제자유도가 높으면 국가청렴도도 높아진다. 경제자유도가 높은 사회가 투명하고, 투명한 사회일수록 청렴지수(CPI지수)가 높기 때문이다. 부패의 여지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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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9> 경제자유도와 국가청렴도의 관계 |
사전적 규제의 범람하고 있다. 정부는 기업보다 현장지식에 강한 가? 기업의 행위를 사전적으로 제약하는 규제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정부의 대기업 규제권한이 늘어날수록 정경유착은 오히려 더 늘어날 수 있다. 어느 정도의 경제력 집중이 한국경제발전에 적절한 수준인지, 어떤 지배구조가 최적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경제력 집중 없이 경제발전은 가능하지 않다. 기업가정신이 발현되지 않고서 한국경제의 발전을 도모할 수는 없다.
경제문제를 정치적으로 접근해온 경제의 정치화와 경제평등주의 정책들이 지속되면 한국경제는 선진경제도약은 고사하고 후발경제에 추월당할 수 있다. /조동근 명지대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