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된(?) 글로벌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보니 '진짜' 경쟁…독일 주변국도 강한 중소기업 많아
“독일은 관료주의에 의한 비용과 폐해를 줄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새로 도입되는 규정이 중소기업에게 적합한지를 점검하는 ‘중소기업 테스트(KMU-Test)’는 중소기업의 경영활동에 직접적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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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틴 반스레벤(Martin Wansleben) 독일연방상공회의소 상근 대표 / 대한상공회의소 제공 |
마르틴 반스레벤(Martin Wansleben) 독일연방상공회의소 상근 대표는 26일 콘래드서울호텔에서 열린 ‘중소·중견기업의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위한 정책과 제도’ 컨퍼런스에서 중소기업 강국으로의 비결 중 하나로 이 같은 법체계를 꼽았다.
한독상공회의소와 콘라드아데나워재단이 공동으로 개최한 이번 한·독 국제 컨퍼런스의 주제발표자로 나선 반스레벤 상근 대표는 이와 함께 “독일 중소기업의 가장 큰 특징은 가족기업”이라며 “여러 세대를 걸쳐 성장해 기업규모가 커지더라도 기업에 대한 책임의 원칙(Prinzip der Haftung)이 지켜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따라서 경영자는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 단기적인 수치나 실적보다는 장기적으로 그 후손 또는 후임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심사숙고하게 된다”며 “중소기업 지원 인프라도 이러한 장기계획에 맞춰져 있어 가업승계가 원활히 일어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는 것은 물론 필요자금도 은행권으로부터 장기대출을 받기 유리한 구조”라고 덧붙였다.
반스레벤 상근 대표는 이 밖에도 가족경영의 장점으로 기업이 위치한 지역과의 긴밀한 연계, 근로자와의 끈끈한 유대감을 꼽았다.
하르트무트 샤우에르테(Hartmut Schauerte) 전 독일연방경제기술부 차관도 발표를 통해 “성공적인 중소기업 문화를 만들기 위한 전제 조건은 제도적 장치와 정치적인 제반여건”이라며 “독일 중소기업은 대도시가 아닌 지방과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데, 독일 지방정부, 자치단체들은 경쟁을 통해 자기지역 기업들에게 더 많은 인센티브, 유인메커니즘, 풍부한 아이디어를 제공함으로써 기업하기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자산에 부과되는 모든 종류의 세금은 중소기업의 건강한 발전에 독이 된다”며 “이런 관점에서 2008년 개정된 독일의 상속세제는 중소기업의 가업상속 부담을 획기적으로 낮추었다는 점에서 매우 자랑할 만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독일은 가업상속 후 경영기간과 고용유지 규모에 따라 가업상속자산의 85~100%를 한도 제한 없이 공제하고 있다.
가업상속 후 5년 간 가업을 영위하며 지급한 급여총액이 상속 당시 급여지급액의 400% 이상이면 85%를 공제하고, 7년간 가업을 영위하며 지급한 급여총액이 상속 당시 급여지급액의 700% 이상이면 100%를 공제한다.
[Zoom-in] 글로벌시장 절대강자, 독일 중소기업의 뿌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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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위키미디어(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Flag_map_of_Germany.svg) |
독일 중소기업의 신화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시작됐다. 중소기업은 1950~1960년대 ‘라인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독일경제의 숨은 동력으로 평가된다.
당시 중소기업은 직접수출은 물론 독일 내 대기업에 부품과 소재, 서비스 등을 대거 공급했다. 이를 통해 간접적으로는 해외수출에 기여했고, 경제 부흥을 이끈 실질적인 주역으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다.
독일 중소기업들이 세계시장 속에서 이른바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이 되면서 독일 내에서도 커다란 영향력과 그 입지를 구축해왔던 배경은 무엇일까. 바로 중소기업만이 보유한 강력한 기술경쟁력과 체계적인 기술인력 육성제도, 특히 국제화에 대한 선제적인 태도가 꼽힌다.
1986년 사상 최초로 수출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한 이후로 독일은 전세계적인 경쟁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수행해왔다. 제품이 지닌 높은 명성과 품질, 단위노동비용의 온건한 상승, 강력한 생산기반과 이원적 직업교육 시스템 등은 독일의 수출 성공을 유지시킨 원동력으로 평가된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독일에 히든 챔피언이 많은 이유는 19세기 말까지 군소국가집단으로 이뤄져 있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는데, 당시 성장을 꾀했던 기업들은 국제화를 강요받을 수밖에 없었다.
가령 바이에른 기업이 작센이나 뷔르템베르크에 있는 고객들에게 남품을 하는 경우, 이는 국제무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방성과 국제화 역량이 생성됐을 것이란 추측이 나온다.
독일은 프랑스와 러시아, 미국, 중국 등과 일찍이 무역을 시작함으로써 유럽과 전세계를 아우르는 규모로 성장했다.
독일의 많은 지역들은 전통적으로 뛰어난 역량을 보유했고, 이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예컨대 슈바르츠발트 지역에선 수백년 전부터 시계를 만들어왔는데, 융한스와 같은 소수의 기업을 제외하곤 모두 몰락했다.
하지만 정밀기계학적 역량을 바탕으로 해 새로운 산업이 생성됐다. 슈바르츠발트 지역의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투틀링엔에는 현재 의용공학 분야, 특히 외과용 기구 제조 기업이 400여개에 이른다.
독일의 경우 대부분 분야에서 경쟁이 무척 치열하다. 세계를 주도하는 국가들을 보면 흔히 다수의 강력한 지역 라이벌이 있기 마련인데, 독일의 경우 대부분 분야에서 열띤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독일의 모든 주에는 히든 챔피언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중에서도 베를린, 함부르크, 브레멘을 제외한 나머지 주에 특히 많이 분포돼 있다. 다른 나라와 달리 독일은 각 지역의 인재들을 활용하고, 그들을 지역 중심뿐만 아니라 각각의 해당 지역에 배치하는 데 좀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다.
독일 특유의 이런 분산 현상은 커다란 장점인 동시에, 이 나라에 많은 수의 히든 챔피언들이 존재하는 이유이자 탁월한 수출 성적에 대한 이유이기도 하다. 독일뿐만 아니라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의 경우에도 히든 챔피언들이 나라 전체에 고르게 분포돼 있다.
2007년 위기에 앞서 독일은 비판의 대상이었다. 독일이 지나치게 제조 부문에 의존하면서 서비스 사회로의 이행에 있어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이유에서였다.
실제로 독일 GDP에서 생산 및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고도로 발전된 다른 국가들보다 더 높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2007년 위기 이후로 이런 비판의 시각은 완전히 뒤집혔다. 소위 서비스 강국이라 자부하는 영국, 프랑스, 미국 같은 나라들이 경제적 위기에 크게 흔들렸기 때문이다. [미디어펜=김세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