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 전문가집단 좌파 도전에 무기력, 이기심으로 분열

전우현의 민족과 자유의 새지평(4) -자유주의자, 우파가 따스하지 않으면 대중은  좌파 품에 안겨

민족주의는 우리 근현대사를 이끌어온 핵심 키워드이다. 일제의 36년간 식민지지배와 해방, 그리고 6.25북한의 남침, 남북분단 상황 등...민족주의와 민족이란 개념은 항상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의 이념갈등에서 가장 첨예하게 부딪치게 만드는 핵심용어이다.  자유와 자유주의도 마찬가지다. 프랑스 대혁명이후 본격 발현된 자유주의는 서구의 근현대사를 추동한 핵심 키워드였다. 자유는 천부인권, 사유재산보호와 함께 서구의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발달을 이끌었다. 반면 공산주의는 급진적 민족주의, 전체주의, 사유재산권 부정 등으로 인류사에서 끔찍한 재앙을 초래했다.  전우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한국에서 나타나는 민족주의와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분석하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 전우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 시대는 전문성을 중시한다. 총리, 장관후보의 인사청문회에서도 어김없이 전문성은 논란거리다. 요즘 들어 벌이가 점점 줄어드는 의사, 변호사들도 전문성 없이는 생존하기 어렵다. 정부, 공공기관이나 회사, 학교에서 모두 요구하니 전문성을 가져야 높은 자리로 승진하고 좋은 학교로 입학한다. 전문성이란, 특정 직업이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과 정보를 기반으로 현실을 한정하거나 창조하는 힘을 가져 사회적으로 상당한 지위를 누리는 것이다.

전문성은 가치판단이 혼란스럽거나 위험하고 급박한 사회문제가 생길 때 정확한 판단을 제공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그러니 매우 중요한 사회적 자산이다. 정치가나 공무원, 기업인도 전문성을 가지고 있어야 서비스 질을 높인다. 그로써 국민과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다.

어느 국가사회나 수 백 년 전부터 전문직의 기능을 중시하여왔다. 이 경향은 지금도 여전하다. 전문가 양성의 필요성은 어떤 시대에나 어디에서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를 키워내려면 특정한 생산목적을 위해 지식과 기술을 집중해야 한다. 즉, 고도의 훈련과 경험이 요구된다. 전문가는 간단하고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사회 문제에 대해 더 정확한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실질적 능력을 증명할 때만 전문가로 인정된다. 전문가로 되는 것은 개인과 가문의 영광이다.

어떤 경우에 전문성이 있는가? 사실 그에 대한 정답은 없다. 전문성은 상식에서 판단해야 하고 사회일반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특정 직업의 당연한 권리도 아니다. 지식의 우수함, 직업의 희소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이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끊임없이 모습을 달리했다.

중세에서 법학, 의학, 신학 전공자는 대표적인 전문가로 나타났다. 이러한 전문가는 그 우수한 지식으로써 국가에 고용되기도 하고 교회에서 대중들을 교화하거나 자영업을 하였다. 중류계급이라도 고등교육을 받아 전문지식을 익힐 기회가 생기면 신분상승을 할 수 있는 통로로 활용되었다. 이러한 전문직 교육은 시장이나 노동현장이 아니라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학교는 지식과 기술의 체계적인 축적장소가 되었다.

그리하여 전문가는 소비자로부터 영향받지도 않게 되었다. 전문성을 갖추면 사회적으로 존경받는다. 그리하여 전문가 자신의 사회적인 자아, 사회적 정체성까지 결정한다. 다른 사회집단과 달리 어려운 사건, 사실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 때문에 권위를 만들어 나간다.

그러나, 전문성은 양 날의 칼이다. 사회적으로 필요한 지식을 가졌기 때문에 사회에 득이 되는 일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사회적으로 희소하다는 점을 무기로 일반 국민에게서 멀어지기도 한다. 전문성을 인정받으면 자신의 노동력에 특별한 지위를 인정받고, 배타적 영역이 생기기 때문이다. 전문성으로 독점적 지위를 인정받으면 자율성과 함께 배타성을 확보하려고 한다. 즉, 한 사회나 국가로부터도 자율적인 자기들만의 영역을 누리려고 보호막을 만든다.

거기에는 신분을 상승시키고 시장을 독점하는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서로 다른 전문가 집단은 각기 가치관, 태도, 행동을 달리한다. 같은 전문가 집단이라도 그 전문직이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이 있는가에 따라 다른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일반 국민이 볼 때 전문가 집단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많다.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과 일반 대중을 구분하고자 하는 성향이 강하다. 이 분야는 너무나 어렵고 복잡하여 일반인들이 근처에도 오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평범했던 시민이 전문가로 훈련되는 과정에서 생긴다. 자신이 들인 노력에 대한 보상욕구와도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국민의 상식으로부터 벗어나는 경우도 왕왕 생긴다.

더 큰 문제는 일반 국민으로부터 벗어나도 통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 집단 안에서 벌어지는 부정과 부패는 쉽게 덮어진다. 무식한 일반인은 아무리 설명해도 알 길이 없고 설명할 필요도 없다는 식이다. 오늘날 여러 분야의 전문가 벽을 허물고자 노력하기도 한다. ‘통섭’이라고 하거나, ‘융합’이라고 한다. 그러나, 얼마나 성과를 가져오는지는 의문이다.

그런데 전문성만으로서는 다른 사람을 포용할 수 없다. 나아가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지도력을 인정받을 수 없다. 사람을 포용하려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태도를 지니고 그 바탕 위에서 이익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큰 틀의 신념이 있어야 한다. 어떤 내적인 규범에도 얽매이지 않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영리를 추구하는 행위는 역사상의 모든 시기에, 그리고 어디에서나 항상 있어 왔다.

대한민국처럼 갈등하는 국민을 통합해야 하는 지도자의 품성으로는 부적합하다. 괴테는 말했다. “영혼이 없는 전문가, 가슴이 없는 향락주의자, 이 공허한 인간들은 일찍이 인류가 도달하지 못했던 단계에 도달했다고 자부할 것이다.” 일반국민들은 이러한 전문가에게 결단코 가슴을 열어주지 않는다. 그보다 좀 못하더라도 따스함을 지닌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연다. 만일 전문가인 자유주의자, 우파가 따스하지 않다면 대중은 서슴없이 선동가인 좌파 품에 안긴다.

이는 민주화 이후 특히 2007년 대선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우파가 정치력으로써 좌파세력을 제압하지 못한 문제의 원인이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좌파가 선거라는 합법적인 대뷔무대를 통하여 서울시, 경기도라는 가장 중요한 수도권의 교육감을 당선시키고 학생교육 기관을 점거하여 그 우세를 점하게 되었다. 그 필연적 결과로써 우파를 공격하는 정치적 주장인 무상급식의 선동, 초중고교 학생의 좌경화 유도교육이 행해졌다.

우파는 항상 전문가 집단으로 성격지워지고 이러한 정치적 혼란기에 일반 국민, 중도성향의 시민을 지도·포용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했다. 전문성만으로는 통합의 정치를 할 수 없었다. 좌파로부터의 집요하고 맹렬한 도전은 예정된 바였음에도 우파 구심점인 대통령마저 정치적 장악력이 부족했다. 좌파에 비해 각계의 전문가 위주라고 할 수 있었던 우파는 무기력할 뿐 아니라 특유의 집요한 이기심 때문에 분열하기까지 했다.

이는 다른 부작용을 불렀다. 2007년 이후 우리나라의 국제경쟁력이 약화한 데서 필연적으로 맞게된 경제 위기와 또 그것이 초래한 국방위기라는 나락으로 빠졌다. 우파는 평소 사상적 기초체력을 다졌어야 했다. 불행하게도 우파 정치가는 그러지 못했다. 좌파를 제압할만큼 신념이 무장되어 있지 않았다. “21세기 우리나라에 이념(대립)이 어디에 있느냐?”, “나는 여의도 정치에서 벗어나겠다”, “정치보다 경제에 집중하겠다” 등등을 핑계삼았다.

그러나 그 말은 너무 공허했다. 이들은 당선이라는 달콤한 꿀 항아리에 빠져 그 꿀 항아리가 좌파의 횃불과 죽창에 포위되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였다. 즉, 대한민국 정국이 좌파의 공격에서 벗어나 안정궤도에 진입한 것으로 착각했다. 그러니 우파 내부의 고질적인 이권다툼, 차기 대권을 놓고 상대방을 약화시키려는 작은 싸움에 골몰했다. 10년 지난 이야기를 이제 와서 꺼내는 것은 먹고 살아가는 경제위기를 해결하는 시간을 놓쳤다는 원통함 때문이다.

과거 좌경화로 시간을 잃어버린 것이 큰 실패라고 한다면, 이명박 정부의 어정쩡한 통합력 부족은 작은 실패로 기록될 것이다. 이러한 실수 내지 실패들은 직후의 정국, 경제 상황에 결정적인 포탄을 날렸다. 그를 만회하기 위해 우리 국민, 민족은 상상 이상의 피땀나는 희생을 해야 한다. 생각건대,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을 감싸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정치인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니 얄팍한 전문성을 가진 겁쟁이 우파로는 안된다.

사회에 대해 따스한 애정을 가진 신념가가 시대정신이 요구하는 지도자다. 그 힘만이 좌파를 이긴다. 이 대목에서 민족주의에 관심을 가지기를 권면한다. 전문성을 넘어 민족의식까지 덤으로 가져보기를 원한다. 국민통합이 쉬워질 것이다. 민족을 사랑하는 것 자체가 큰 포용성인 까닭이다. 모두에게 돈 몇 십만원을 지급하는 ‘묻지마 복지(이른바 보편적 복지)’의 달콤한 유혹을 이기고 정말로 어렵고 소외된 사람부터 돌봐야 한다고 국민을 설득할 힘도 생긴다.

찢어진 이념의 갈등, 계층갈등으로 상처받은 국민의 공동체에 대한 귀속욕구는 지도자와 지식인들의 성숙한 의식과 결단으로만 채워진다. 현실적으로 가장 큰 이익에 대한 확신(민족주의)에서 우러나오는 애국적 행동으로만 국민통합을 이루고 국정을 지도한다. 그러니 전문성만으로는 부족하다. /전우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