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가 위기다. 지난 5월 법무부 인권국장이 "기독교는 혐오집단이며, 기독교와 타협은 없다"는 폭언이 심상찮다. 정부가 반기독교 선전에 나선 모양새 때문인데, 기독교 단체 '에스더기도모임'을 가짜뉴스 공장으로 몰아가는 한겨레의 공세도 사납다. 그런 까닭으로 기독교 탄압 얘기가 나오는 판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문제로 가톨릭이 출렁댄다. 김정은에게 천사의 날개를 달아주자는 건가, 북한 선교의 문이 열리는 것인가? 실은 개신교-가톨릭 모두 좌익이념에 오염된 지 오래라서 문제다. 대한민국이 아픈데 기독교는 더 아픈 지금의 현주소를 두 차례 칼럼으로 나눠 싣는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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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우석 언론인 |
지식사회 논쟁사에서 단연 전설이 1950년대 <사상계> 지면에서 이뤄진 함석헌-윤형중 신부 사이의 설전이다. 잡지 발행인 장준하의 증언대로 바로 그 논쟁 이후 비로소 <사상계>는 "우리나라 전 지식층의 관심을 한 몸에 모은 잡지로 자리를 잡게 됐다." 치솟는 대중적 인기 때문에 <사상계>는 당시 판매부수 4만 부를 육박했을 정도다.
함석헌-윤형중 신부 논쟁은 훗날 언론인 손세일이 엮은 <한국논쟁사>(전5권, 1978년)의 앞자리에 오르는 영광을 차지하는데, 첫 글이 56년 1월 호에 실린 함석헌의 '한국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였다. 당시 주류종교로 떠오른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내용인데, 첫 문장이 이렇다.
50년대 함석헌-윤형중 논쟁의 빛과 그늘
"여기 기독교라 하는 것은 천주교나 개신교의 여러 파를 구별할 것 없이 다 한데 넣은 교회를 두고 하는 말이다." 자신은 무교회주의자 즉 퀘이커교도라는 걸 전제로 했다. 제도권 교회에 안 나가면서도 예수의 말씀을 실천하는 참교인, 뭐 그런 뜻이다. 그때 첫 글에서 함석헌은 교회 수가 늘어나는 현상을 나라가 망할 징조라고 질타하는 걸로 포문을 연다.
고려시대에 절간이, 조선시대에 서원이 성하면서 나라가 망한 것만 봐도 그렇다며 기독교의 이상 번창을 비꼬았다. 실은 그 글은 이름을 가리면 누구의 글인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보통 먹물의 글처럼 얌전하게 썼는데, 함석헌 특유의 구어체 스타일이 드러나고 대중 관심이 폭발한 게 그 직후다.
이듬해 쓴 '할 말이 있다'(3월 호)와 '윤형중 신부에게는 할 말이 없다'(6월 호) 두 꼭지가 화제였다. 그 새 윤형중은 '함석헌 선생에게 할 말이 있다' 등 반박을 두 번 했다. 논쟁 이후 60년 세월이 흘렀다. 지금 당시 글을 읽으면 무덤덤하고 별 내용이 없다. 해방 10여년인데 사회가 이 지경인 건 교회 탓이라는 함석헌의 비판은 우선 너무 포괄적이다.
세상 구원의 책임이 있고, 그래도 말이 통할 법한 집단이 교회라서 거길 향한 꾸짖음인데, 너무 도덕주의적 접근이다. 그리고 가톨릭 입장을 변호한 윤형중은 글 솜씨와 논리에서 함석헌에 밀렸으니 요란했던 논쟁에 비해 한국사회가 공유할 생산적인 그 무엇은 신통한 게 없었다.
인정할만한 건 그 글로 <사상계> 중심의 함석헌-장준하 등 비판적 지식인 그룹이 태동됐다는 시대사적 의미 정도다. 그걸 좌빨 지식인들은 거품을 물겠지만 건국-부국의 대한민국사를 소중히 생각하는 우리로선 심드렁한 얘기다. 사실 함석헌-장준하는 50년대 반 이승만 그룹을 형성했다가 60~70년대 반 박정희 구호 속에서 이른바 재야세력을 형성한 구심점이다.
그들이 오늘의 운동권-좌파로 이어졌다는 게 뭐가 그리 대수인가? 그리고 함석헌 자체가 도덕적으로 마냥 떳떳했나? 훗날 얘기이지만 여자 스캔들 때문에 그가 스승 류영모로부터 징계 받은 건 세상이 다 안다. 결정적으로 함석헌은 기독교 성장의 정치문화사적 배경을 당시는 물론 이후에도 몰랐다.
그가 교회 수 증가를 '나라가 망할' 징조라고 질타했지만, 그것부터 헛소리였다. 당시 기독교 인구(개신교+가톨릭)는 100만 명대였다. 이승만이 집권했던 50년대 10년 동안에 기독교 인구는 두 배(85만 명에서 160만 명으로)로 증가했다. 표면적으로 어지러웠을지는 몰라도 그게 새나라 건설의 동력이었다. 그런 흐름이 이후에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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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신문이 보도한 '가짜뉴스의 뿌리를 찾아서'에서 에스더기도운동본부가 '가짜뉴스 공장'이었다는 기사에 대해서 사실과 다르다며 반박하고 있다. /사진=에스더기도운동 제공 |
한국기독교는 신앙공동체를 넘어 근현대사의 뼈대
박정희가 통치했던 60년대 기독교 인구는 다시 두 배(160만 명이 304만 명으로)가 됐고, 70년대에 또 다시 두 배에 도달했다. 70년대 말엔 신자 600만 명에 육박했던 것인데, 교회 성장과 대한민국 빅뱅은 함께 이뤄졌다. 즉 한국기독교는 신앙공동체를 넘어 근현대사의 뼈대다. 그게 포인트다.
필자는 신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 점을 자신 있게 증언할 수 있다. 포괄적으로 말해 조선조의 유교질서를 기독교 문명으로 깨는 위대한 실험에 성공했던 이승만,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는" 박정희의 노력도 기독교의 정신혁명 속에서 가능했다. 대한민국 건국은 정치체제-이념을 떠나 문명의 계절 변화를 알렸다. 그게 유교문명권에서 기독교 문명권으로의 전환이다.
이 문명사적 흐름이 50년대 그 시절에 잘 보일 리 없었다. 함석헌 아니라 그 누구라도 불가능했다. 아니 단 한 사람이 있었다. 그게 이승만이다. 그는 명저 <한국교회핍박> (1913년 저술)에서 "성경 안에 자유 평등 사상이 포함되어 있으니 그걸로 한국혁명의 기초를 잡자"는 담대한 비전을 선포했다.
대한민국 현대사는 그 비전이 구현된 과정에 다름 아니다. 대부분의 당대 사람들에겐 교회 증가에 따르는 부작용만이 눈에 들어오고 그게 도덕적 타락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50년대 <사상계> 논쟁은 그런 지엽말단을 둘러싼 시비였을 뿐이다. 그리고 그건 함석헌의 한계와 함께 대한민국 현대사의 위대한 역설을 상징한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그때와 완전히 바뀌었다.
기독교가 위기다. 세계선교사에 유례없던 성장세의 한국교회는 지금 망가졌다. 성장은커녕 교회공동화에 허덕인다. '1000만 성도'를 호언하는 개신교의 경우 절반 이상이 냉담자다. 가톨릭은 등록 신자 574만 명 중 80% 전후한 463만 명이 냉담자인데 좌익 사제들의 언동에 등 돌린 게 큰 이유다.
목회자만 그런 게 아니고 개신교-가톨릭 내부의 신자들까지 좌익 이념에 오염된 지 오래다. 사회의 갈등을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는 교회가 먼저 망가졌고, 세상 걱정의 대상이 된 것이다. 실제로 대형교회 목사는 사회 이슈에 대해 제 목소리를 못 내고, 가톨릭은 '거대한 빨갱이 양성소'로 지목 받는다. 정말 문제는 그게 손쓸 수 있는 지경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염수정 추기경은 무능력에 허수아비 신세이고, 이틈에 주교들은 좌파 정부에 동조해 날뛴다. 이런 와중에 나온 지난 5월 법무부 인권국장의 "기독교는 혐오집단이며, 기독교와 타협은 없다"는 폭언은 또 뭔가. 망가진 교회에 정부가 반기독교 자세를 취하는 게 무얼 뜻할까? 다음 회엔 망가진 교회의 구조 전체와 치유법을 드러낼 구상이다. 관심 바란다. /조우석 언론인
[조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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