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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운 |
부여시대 사람들이 생각했던(?) 샤먼적 인과관계
서진(西晉) 사람 진수가 지은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에 따르면, “부여 초기의 풍속에는 장마와 가뭄으로 사정이 순조롭지 않아 오곡이 제대로 익지 못할 때는 그 허물을 왕에게 물어서 왕을 바꾸는 경우도 있었고 왕을 죽이는 경우도 있었다(舊夫餘俗 水旱不調 五穀不熟 輒歸咎於王 或言當易 或言當殺)고 한다.
이 기록 자체가 위나라의 관구검이 고구려를 침략한 후에 그때 알게 된 고구려나 부여의 사정을 토대로 한 피상적인 것이어서 전폭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겠지만, 양국 간의 갈등 요소가 적은 부분이기에 적어도 이 부분은 사실에 가까울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 기록을 현대의 과학기술적 지식을 토대로 재해석하면, 장마와 가뭄은 기상이변일 뿐이어서 왕의 정치의 결과라고 볼 수 없다. 따라서 기상이변은 정치적 이해관계 충돌의 핑계였다고 보여진다. 물론 (인과관계를 제대로 파악한) 하나라의 우가 황하 상류에서 제방을 축조하여 홍수를 막았던 업적으로 왕이 된 사실이 있기에, 역사의 모범을 따라 치수를 게을리 한 탓으로 돌릴 수는 있다.
그러나 왕을 바꾸거나 왕을 죽인 뒤에 대대적인 제방축조를 했다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하나라의 우왕처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왕의 허물을 물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면 결국은 기상이변을 왕의 부덕함, 혹은 하늘이 왕을 버리는 징조로 해석하고, 반대파들이 왕을 공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기상이변에 대한 대처방법을 대안으로 내놓고 실행하는 대안세력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기상이변을 정쟁의 수단으로 보았던 세력이 있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선사시대는 물론 역사 시대 초기에 이르러서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인과관계를 명확히 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하늘의 뜻으로 여겼다고 한다. 하늘의 뜻을 전해주는 사람이 샤먼(shaman, 巫堂)이었는데, 이 종교적 지도자가 당연히 권위를 가졌을 것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거나 아니면 왕을 만들 권위도 가졌을 것이다. 따라서 샤먼이 마음을 고약하게 먹으면, 기상이변으로 인한 곤경을 이용하여 왕이 부덕하여 이런 일이 일어나니 왕을 갈아치우자고 선동할 수 있다.
그랬을 때 백성들 사이에서 그의 말이 가장 큰 설득력을 가졌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만일 그의 계시에 반발하면 군중을 동원해서 왕위에서 끌어내려 처형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렇게 추론해보면, 부여 초기의 풍속에서는 장마와 가뭄으로 대표되는 재난이 닥쳤을 때, 과학적 인과관계가 우선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과는 전혀 무관한) 샤먼적인 인과관계 설명을 업고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 작용했던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현대 문명의 사람들이 중시하게 된 과학적 인과관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러한 샤먼식 현실 해석은 과거의 서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쟁이나 국가의 대사에 관해서 신전에서 신탁을 받아서 대처를 하거나, 페스트균이 일으키는 흑사병 등에 대해서 마녀의 소행으로 여기고 마녀사냥을 하거나 하는 기록들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직업적 종교인들의 계시를 벗어나, 종교의 압도 분위기에 편승하여 ‘하늘’의 숨겨진 뜻과 섭리를 밝힌다는 명분을 가지고, 인과관계에 대해서 깊숙이 연구들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 과학이 발달했다.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을 겪으면서 공식적으로는 지동설을 포기했지만 실제적으로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지동설을 견지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가톨릭 수도사인 멘델도 유전법칙을 발견했으며, 19세기에 이르러 파스퇴르가 페스트균을 발견하고 더구나 나중에는 그 균이 쥐에 의해 전염된다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흑사병이 마녀의 소행이란 주장이 근거 없음이 드러났다. 결국 과학의 발달사는 샤먼식 재난 해석이 옳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과정이었고, 또 샤먼식 재난 해석을 업고 정치적 이해관계를 달성하려는 세력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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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와 왕십리역사 전동차추돌, 전방부대 총기살인 등과 관련해 무턱대고 대통령과 서울시장 국방부장관 등 최고책임자를 비난하고 퇴진운운하는 것은 봉건왕조시대의 정치적 갈등의 처리방식인 사면(무속)정치와 같다. 이런 비합리적 인과관계가 횡행하면 정상적인 국가개조와 개혁이 불가능하다. 이젠 과학적인 인과관계를 따져서 행동하고 개혁을 해야 한다. 박근혜대통령이 30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복지부 등 17개부처가 합동으로 만든 '나에게 힘이 되는 복지서비스' 책자를 살펴보고 있다. |
분과 학문을 하는 이러한 태도는 총론격인 신학과 철학에도 영향을 미쳤고 그것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인과관계를 철저히 따지는 분과학문의 사고방식 즉 과학적 사고방식이 현대 문명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제는 인과관계가 뚜렷하지 않으면 ‘가설(hypothesis)’ 취급을 받게 되고, 그 주장이 경험적이든 논리적이든 증명이 되어야만 되게 되었다. ‘하늘’의 숨겨진 뜻과 섭리를 밝힌다는 명분하에서 시작했던 연구가 이제 ‘합리론’의 무장을 하고 현대인의 사고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합리론’의 범위를 벗어난 주장은 ‘종교의 자유’ 차원의 주장으로 제한적으로 용인되는 것으로 상황이 역전되었다.
우리의 경우에는 조선왕조의 복권이 아닌 자유민주주의 혁명 성격을 띤 대한민국의 독립 건국과 함께 합리론적 사고가 지배하기 시작했다. 유교적 도덕주의 전통으로부터 벗어나 과학적 사고방식에 입각하여 교육이 이루어졌다. 이것을 교육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현실에 대한 샤먼식 인과관계 해석으로부터 벗어나는 확실한 계기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바로 이런 과학적 합리적 교육을 토대로 삼아 번영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개혁 출발은 샤먼적 인과관계 사고를 버리고 과학적 인과관계 사고로 문제에 대처하는 것
최근의 일련의 사태의 진행을 보면 일부 사람들이 아직도 샤먼적 인과관계 설명을 제대로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지원하러 온 사람에게 물병을 던지거나 욕설을 퍼붓는 일부의 행위들, 현장에 출동했던 현장 지휘관의 판단을 존중하지 않고 헌신적인 구조행위에 대해 ‘안방에 앉아서’ 구조를 제대로 안했다고 비난을 퍼붓는 일부의 행위들, 선장과 선원 그리고 선사의 책임을 묻기보다 신자유주의의 필연적인 결과라며 정부에게 책임이 있다고 비약하는 일부의 논리들이 그러한 사고의 발현으로 의심된다.
이러한 과도한 사회심리적 압박 속에서 구조에 헌신하던 잠수사들이 희생되기도 했다. 일부 언론과 지식층들이 가진 이러한 샤먼식 인과관계 사고가 일반 국민들을 오염시키는데 성공하는 듯하자, 이를 틈타 정부책임론을 제기하며 시위를 벌이고 청와대로 가두행진을 벌이는 사람들까지 나타났다. 새정치연합도 6.4지방선거에서 막바지에 정부책임론을 제기하면서 샤먼 정치에 가세했다.
이러한 잘못된 사고는 정부 여당이라고 자유롭지 않았다. 여당의 한 지도적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불과 며칠 밖에 되지 않은 신임 안행부 장관에게 ‘당신이 책임을 져라’고 일갈했고, 대통령은 해경이 제대로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면서 그 책임을 물어 해경을 해체한다고, 또 관피아(관료 마피아)를 척결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책임을 묻는 형식으로 ‘책임 인과관계’와는 무관한 총리의 사임을 받아들이고 후속 총리 인선 작업에 착수하는 한바탕 소모적 소동을 벌였다(물론 지명했던 두 명의 총리 후보가 이런 저런 사유로 자진 사퇴하고, 고분고분하면서도 청문회를 통과할만한 총리후보가 없자, 사필귀정, 책임이 없음에도 사의를 표명했던 총리 체제로 다시 되돌아가는 허탈한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
인과관계를 정확하게 따지지 않으면, 설사 이러한 샤먼적 정치운동이 성공한다손 치더라도 씻김굿으로 일시적으로 해결된 듯 기분이 좋아진 것에 불과할 뿐, 제대로 된 후속 대응으로 이어질 수 없다. 또 어떤 경우든 현장에서 잘 하지 않으면 사고를 막을 수 없다.
세월호 참사 사고도 사실 우측으로 5도 변침하라는 이야기를 잘못 알아듣고 좌측으로 15도 변침한 것이 사고의 시작이었다. 일반 도로에서도 파란 신호등에 좌회전하면 마주 오는 차와 사고가 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둘째로, 배의 균형을 바로 잡으려고 애를 썼지만 잡을 수 없었던 것은 평형수 부족, 화물 과다 적재 및 화물의 고박 부실 때문이었다. 평형수 점검, 화물 적정 적재 및 화물의 고박 점검 책임자는 선장과 안전관리자, 위탁회사 관계자였다.
신자유주의적 규제완화 때문이 아니라, 있는 안전 규정을 대충대충 하고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 때문이었다. 선령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린 것 때문에 배가 중간에 똑 부러지거나 물이 줄줄 새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셋째로 구조하러 왔던 해경에도 전문 잠수 구조사가 없었고, 구명조끼를 입은 사람들 밖에 없었다. 더구나 전문 잠수사들조차 하루 두세 차례 밖에 구조를 하지 못할 정도로 물살이 센 곳이어서, 목포해경서장의 선내진입 구조 지시에도 불구하고 그 휘하의 해경123정 근무자들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배에서 학생들을 구조하는데 애쓰다가 안타깝게 숨진 선생님들의 사정을 볼 때, ‘뒤늦게’ 선실에 뛰어들었다 하더라도 희생을 당하면 당했지 쏟아져 들어오는 바닷물 때문에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다.
넷째로 참사사고 현장에서의 질서를 잡지 않으면 제2차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에, 구조를 위해 수많은 배와 헬기들과 잠수사들이 부근에 있었지만 그들을 마구 투입할 수가 없었다. 안전과 체계적 대응을 위해 질서를 잡는 행위를 수수방관했던 행위로 매도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서울시 지하철 2호선 왕십리역 추돌사고도 신호기 이상을 알고도 고치지 않은 잘못이 있다. 앞 열차와의 간격도 확인하지 않고 진입한 것이나, 추돌 이후 적절한 안내방송이 없었던 것도 마찬가지 잘못이었다. 안전예산 920억원을 전액 삭감한 것은 시장의 잘못이나, 구체적 사고에 이르게 된 과정은 담당자들의 잘못이지, 시장이 책임질 일은 아니다.
22사단 총기난사 사고도 북한의 도발에 주로 신경을 써야 할 국방장관 등 상급자들이, 군대내 왕따 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휘했음에도(물론 구체적 실현에는 미흡함이 많았을 것이지만), 병사들 간의 왕따 행위가 일어났다면 그것은 그들 간의 잘못이다. 누구도 왕따를 하라고 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왕따 현상에 대해서 더 관심을 가지고 그에 알맞게 상담전문 정신과 군의관 배치 등 대책을 세우는 것은 정당하나, 군내의 크고 작은 사고를 가지고 국방장관이 모두 책임질 일은 아니다.
사실 큰 재난을 당하여 사회심리적으로는 많은 감정적 반응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은 맞다. 인과관계가 분명해야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듯이, 도덕적 비난을 위해서도 어느 정도의 인과관계는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적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일부의 샤먼적 선동에 휘둘리기 쉽다. 따라서 우리는, 법적 책임에 이르는 인과관계를 분명히 따져서 이야기를 해야 하고, 인간의 일반적인 약점에 따른 미처 예상치 못했던 일에 대해서는 감정적인 비난보다는 차분히 대응 방안을 보완하는 쪽으로 신경을 쏟아야 한다.
이처럼 모든 것을 정부책임론으로 몰아가는 샤먼적 인과관계사고를 벗어나, 담당자가 현장에서 잘하도록 하는 과학적 인과관계 사고로 전환하고 행동하는 것이 이 시대 진정한 개혁의 출발이다. /박종운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