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윤광원 기자] 제2차 세계대전도 끝났다. 세계는 '대표 승전국'인 미국을 줌심을 재편됐다.

세계는 엄격한 통제가 가능한 화폐체계를 원했다. 이는 자유무역시대를 주도했던 '금본위제'의 퇴출을 의미했다. '대공황'을 유발한 디플레이션의 고통을 더 이상 겪고 싶지 않았다.

그건 바로 '달러 기축통화' 체제였다.

달러를 금 1온스 당 35달러로 '고정'해 놓고, 미국 정부가 '금 태환'을 보장했다. 다른 나라들은 달러에 환율을 '고정'(페그)했다.

금본위제와는 뭐가 다를까.

달러는 지폐라서 '무한정' 찍어낼 수 있다. '화폐공급'에 제한이 없다는 말이다. 또 각국은 '고정환율제'지만 환율 변동을 다소 '용인', 통화정책을 '포기'하지 않았다.  경기상황에 따라 달러 '수급조절'을 통해 대응이 가능했다.

각국은 달러를 준비자산으로 보유하면 '이자'를 받을 수 있었다. 금을 보유해야 할 땐 비용이 드는데, 달러를 미국 국채로 바꿔놓으면 이자 수입이 생긴다.

금본위제 시절 금 채굴과 운반에 필요한 막대한 비용도 종이와 잉크 수준으로 줄었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기축통화국이 누릴 수 있는 효익을 미국에 '집중'한 것이다. 영국은 처음부터 반대했지만, 미국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유럽은 브레튼우즈 체제 출범 이후 무역적자가 늘어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미국은 유럽에 대규모 '원조'를 풀었다. 바로 '마샬플랜'이다. 제1 교역 상대인 유럽의 '경제부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런 미국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브레튼우즈 체제 유지의 관건은  미국의 '충분한 금 보유'다. 달러화의 가치는 미 정부의 금 태환 '보장'이 유효해야 유지 가능하다.

문제는 통화발행은 증가했으나, 미국의 금 보유 규모는 반대로 감소했다는 사실이다.

1960년 시장에서 금 가격은 1온스 당 40달러로, 브레튼우즈 체제의 공식 가격을 5달러 초과했다. 당연히 각국은 미국에 '금 태환'을 요구했다.

그러나 브레튼우즈 체제는 바로 무너지지는 않았다. 독일 등 선진국들은 달러화 '약세'에도 불구, 이 체제 '붕괴'를 원하지 않았다. 달러 '페그'에서 오는 '환율 안정'에 따른 대 미국 '무역흑자' 때문이다.

그러나 '한계'는 분명했다.

미국은 무역적자 확대와 부채 증가로 빠르게 금을 소진했고, 달러 평가절하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1971년 8월 우드로 닉슨 미 행정부는 '금 태환 중지'를 선언했다. 미국은 달러화 평가절하를 위해 관세 10%를 부과했다.

그래도 소용 없었다. 결국 1973년 2월 금 1온스 당 42달러로 '추가' 평가절하했다.

이는 달러화에 대한 신뢰에 '치명타'가 됐다. 바로 브레튼우즈 체제의 '종말'이다.

사실 브레튼우즈 체제는 태생부터 '딜레마'를 안고 있었다.

기축통화 지위 유지를 위해서는 달러화 '공급'이 필수다. 이는 필연적으로 '달러 약세'를 유발하게 마련이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도 이에 한 몫 했다. 달러 약세는 기축통화 지위를 '위협'하고, 경상 적자를 '불허'하면 세계 경제가 위축된다.

달러화는 금 태환에 대한 '우려'가 없을 때만 매력적이다.

미국의 대외부채 규모는 1960년 이미 금 보유 규모를 앞질렀고, 금 가격도 그 해 온스 당 35달러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브레튼우즈 체제가 13년이나 더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준비자산으로 금 대신 달러를 사들인 독일 등의 '국제 공조'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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