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선동열(55) 야구대표팀 감독이 자진 사퇴했다. 선 감독은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사퇴의 변이 담긴 입장문을 발표한 후 대표팀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전후로 선동열 감독에게 많은 비난이 쏟아졌다. 대표팀을 선발하면서 특정 병역미필 선수를 명단에 넣은 것이 비판을 촉발했다.
대표팀은 아시안게임에서 다소 실망스런 경기력을 보여주긴 했지만 목표로 했던 금메달을 따고 돌아왔다. 하지만 금메달로도 선동열 감독이나 야구대표팀에 대한 팬들의 비난을 누그러뜨릴 수 없었다.
|
|
|
▲ 사진='더팩트' 제공 |
잘 알려진 대로 이후 선동열 감독은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고, 감독으로서의 소신을 밝혔고, 국회 국정감사에 불려나가 곤욕을 치렀으며,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국내 야구 일정이 마무리되자 감독 사퇴를 했다.
야구대표팀 전임감독을 맡아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책임지기로 되어 있던 선동열 감독이 중도 사퇴한 일은 야구계에 안타까운 일이다.
선동열 감독이 사퇴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장문의 입장문에는 그의 심경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감독으로서 금메달의 명예와 분투한 선수들의 자존심을 지켜주지 못한 데에 대해 참으로 참담한 심정", "스포츠가 정치적 소비의 대상이 되는, 그리하여 무분별하게 증인으로 소환되는 사례는 제가 마지막이길 간절히 희망", "사퇴하는 것이 야구에 대한 저의 절대적 존경심을 표현" 등의 문구가 아프게 다가온다.
선동열 감독은 서운한 감정도 내비쳤다. 자신을 국감 증인으로 소환해 망신주기식 발언을 쏟아냈던 손혜원 의원(더불어민주당), 역시 국감에 출석해 전임 감독 불필요론을 설파한 정운찬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에 대해서다. 선 감독은 이들로 인해 은퇴 결심을 굳히게 됐다는 것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국가대표 사령탑으로서 선동열 감독에 대한 평가, 중요한 국제대회(2019 프리미어12, 2020 도쿄올림픽)를 앞두고 감독 공석이 된 야구대표팀의 운명 등은 차치하고 선동열 감독이 사퇴하면서 던진 화두는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정치의 스포츠 개입. 선동열 감독은 대표팀 선수 선발 문제 때문에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불려나왔다. 야구를 잘 알지 못하는 국회의원이다보니 선동열 감독이 선수 선발 의혹 등에 대해 해명하자 지적 또는 반박한다는 것이 '그 우승(아시안게임 금메달)이 그렇게 어려웠다고 생각지 않는다'는 황당한 발언이었다.
선 감독은 "국가대표 감독의 국정감사 증인 출석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으며, 대한체육회 역사상, 국가대표 감독 역사상, 한국야구 역사상 처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스포츠가 정치적 소비의 대상이 되는, 그리하여 무분별하게 증인으로 소환되는 사례는 제가 마지막이길 간절히 희망합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떠한 경우에도 정치와 스포츠는 분리되어야 마땅합니다"라고 당연한 얘기를 강조했다. 선 감독이 사퇴하면서 남긴 주요 화두다.
|
|
|
▲ 사진=KBO 공식 SNS |
감독의 고유 권한. 스포츠에서 어떤 팀이든 감독은 상당한 권한을 갖지만, 그에 따른 엄청난 책임감과 의사결정의 고뇌를 안고 있다. 결과에 대해서는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감독은 아무나 하지 못하고, 어느 종목이든 감독을 선임할 때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선동열 감독은 KBO에 의해 대표팀 전임 감독으로 선임됐다. 그런데 정운찬 총재는 국감에서 "개인적으로 전임감독제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전 총재 재임 시절 전임감독제를 도입했으니, 정운찬 총재는 전임감독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국감 자리에서 할 얘기는 아니었다. 총재의 의지가 그렇다면, 어떻게 대표팀을 운영하는 것이 더 좋은지 야구계 의견을 두루 물어 제도적 보완점을 마련하면 된다. 굳이 도쿄올림픽까지 전임감독제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 서면 공론화해서 제도를 고치면 된다. 가뜩이나 선동열 감독이 궁지에 몰려있는 상황에서 개인 의견을 국감 증인으로 출석해 밝혔어야 했을까.
총재의 대표팀 감독에 대한 인식이 이렇다 보니 선동열 감독이 주로 TV 중계를 보며 선수들의 기량을 체크한다고 증언했던 것에 대해 "TV로 선수들을 살핀다고 한 것은 불찰이라고 생각한다"는 의견도 말했던 것이다.
감독이 팀을 잘못 운영하거나 질책할 일이 있거나 요구하는 성적을 못내면 경질하면 된다. KBO가 선임(전임 총재 때지만)한 대표팀 감독의 고유 권한을 KBO 수장인 총재가 이렇게 가볍게 여기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선동열 감독도 "전임감독제에 대한 총재의 생각, 비로소 알게 됐다. 내 사퇴가 총재의 소신에도 부합하리라 믿는다"는 말을 남겼다. 선동열 감독이 떠나면서 던진 또 하나의 화두다.
[미디어펜=석명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