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0일까지도 연내 답방에 묵묵부답인 가운데 청와대는 김 위원장의 연내 답방 불발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이다. 

전날에도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출입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현재로서는 확정된 사실이 없으며, 서울 방문은 여러가지 상황이 고려돼야 하는 만큼 우리로서는 서두르거나 재촉할 의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7일 청와대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사랑채 앞 광장에 4.27 판문점 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모습을 담은 대형 그림을 설치하면서 주말 내내 언론의 관심은 김 위원장의 답방 일정에 쏠렸던 것이 사실이다.  

북한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동안에도 김 위원장의 답방 일자를 추정한 기사들이 쏟아졌다. 12월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기일인 17일이 있고, 또 한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특성상 가능한 날짜를 꼽아볼 수 있었다. 12~14일, 18~20일, 당일치기, 남북철도연결 착공식 참석 등 갖가지 시나리오들이 쏟아졌다.

사실 경호와 숙박 등만 준비한다고 치더라도 정상회담을 준비하는데 최소한 1주일 이상은 필요하고, 이런 차원에서 지난 주말과 이번주 초까지가 김 위원장의 연내 답방이 가능한 마지노선이었기 때문이다. 
 
마침 일요일인 9일 북한의 헬기 2대가 개성 남쪽까지 내려와 정찰하는 일도 벌어지면서 김 위원장이 방남할 경우 이동경로를 살피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한 언론은 김 위원장의 전용비행기가 12일 제주를 들렀다가 13일 서울로 올라올 것이라는 예측 기사를 냈다.    
언론이 김 위원장의 답방 일정 보도에 열을 낸 것은 북한의 특성상 김 위원장의 경호 문제 등으로 남북이 정상적인 발표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 때문이었다. 정부가 김 위원장의 답방을 가정한 여러 준비에 들어가면서 경호처, 군과 경찰이 가상으로 동선 훈련을 실시했고, 이에 따라 추정 기사도 만들어졌다. 청와대가 공식 발표를 하지 않는데도 이를 임박해서 발표하기 위한 ‘연막 작전’이라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가 “김 위원장 답방과 관련해 발표할 내용이 없다. 진척된 것이 없다”는 입장을 냈다가 다시 “북한을 더 이상 재촉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결국 무리하게 ‘김정은 모시기’에 집착했던 것이 아닌지 지적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청와대는 북한이 통보만 해주면 프레스센터가 마련되지 않아도 어쨌든 남북정상회담을 치른다는 입장이었다. 지난 평양정상회담 때 ‘3권 분립’ 원칙에도 불구하고 여야를 포함한 국회를 수행단에 올리려했던 집요함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결국 그동안 청와대가 김 위원장의 답방 일시를 명확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미리 설치해둔 ‘핫라인’이나 개성에 문을 연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무색할 만큼 북한과의 원활한 대화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언론도 갖가지 시나리오를 쏟아내며 북한 압박에 가세했지만 북한의 특성상 지도자의 방남을 임박해서야 발표할 것이라는 관측은 거의 어긋나버렸다. 

이날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김 위원장 답방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워낙 커 과열 보도가 증폭되고 있어 입장을 한번 정리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동안 청와대가 보여준 메시지들에서 김 위원장의 답방을 바라보는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지적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비핵화에서 진전이 없는 김정은 답방’이 어떤 파장을 낳을지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안일함이다.

‘김정은 답방’의 불씨는 앞서 지난 1일 G20정상회의를 계기로 아르헨티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난 문 대통령이 살려냈다. 한미 정상은 나란히 ‘답방의 공’을 김 위원장에게 넘겼지만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과 다른 셈법을 가질 수밖에 없다. 북한 입장에서 문 대통령을 활용할 절박함이 있지 않은 이상 답방은 오히려 김 위원장이 무엇인가를 제시해야 하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북미 간 비핵화와 상응조치라는 현실적인 문제와 연계돼 있을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북한이 진정 비핵화를 지속할 의사가 있고, 이에 따라 내년 초 북미 정상회담을 치러낸 이후에라야 김 위원장의 남한 방문도 고려해볼 수 있다는 것이 상식적이다. 

만약 청와대와 정부가 그동안 해온 말처럼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그 자체로 의미 있다”는 말로 무리하게 깜짝쇼로 만들고 지지율 올리기로 활용할 경우 ‘김정은 답방’은 결국 문재인정권의 부담으로 되돌아받을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사랑채 부근에 지난 7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악수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 설치돼 눈길을 끌고 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