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북미 비핵화협상이 교착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의 톱다운 방식의 의사결정 구도가 갖는 한계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물론 미국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북한 체제의 특성상 톱다운 방식으로 지시가 내려가는데 그 지침이 없다보니 미국과 접촉 자체가 안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싱크탱크에서도 북미 간 비핵화 실무협상이 첫발도 떼지 못한 현실을 놓고 양 정상이 만나야 무엇인가 결정되는 구조에서 벗어날 필요성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의 김연철 원장은 13일 통일부 기자단 간담회에서 최근 미국의 한반도 문제 관련 전문가들과 나눈 대화를 전하며 “협상 중에 지금과 같은 교착 국면을 극복하기 위해 북미가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장기적 로드맵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들었다”고 했다. 양측의 실무협상에 바통을 넘기는 수순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동안 문재인정부는 북한의 톱다운 의사결정 때문에 비핵화 협상이 빨랐다고 자평해왔다. 처음으로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된 것이나 이후 미국이 취한 한미군사훈련 유예, 북한이 조치한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마시일 엔진실험장 폐기 등이 모두 신속하게 이뤄진 것이 바로 톱다운 방식의 결정 때문이었다는 것에 동의한다.
또 문재인 대통령은 북미대화가 단절될 때마다 직접 나서서 중재하는 톱다운 방식으로 대화를 이어가는 동력을 만들어왔다. 지난 6.12 북미 정상회담이 무산될 위기에서도 문 대통령이 중재역할에 성공하면서 센토사선언을 탄생시킨 것이 사실이다.
지난 11월 북미 고위급회담이 무산되고 올해 안에 개최될 것으로 예상했던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내년으로 연기되자 문 대통령은 다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김정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에 대한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물론 비핵화 진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이렇게 한미 양국의 정상이 직접 비핵화 협상을 주도해나가는 방식을 취해온 것은 북한의 특성상 지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의사결정 체제라는 점을 감안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김 위원장의 비핵화 결단이 사실이라면 디테일한 기술적인 과정은 실무협상으로 넘겨야 진전을 꾀할 수가 있을 것이다. 미국의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북한의 최선희 외무상 부상이 여태 같은 테이블에 앉지 못한 것은 김 위원장의 승인 한마디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문재인정부의 중재역할도 지금부터는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톱다운 방식에서 벗어나 실무협상의 단계로 들어서는 데 맞춰져야 할 때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진전될 수 있도록 남북 워킹그룹이나 남북미 워킹그룹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 정상은 지난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추진을 약속했다. 5조 3항에 ‘남과 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해나가는 과정에서 함께 긴밀히 협력해나가기로 하였다’라고 명시했다.
표현대로만 보면 남한이 비핵화 협상에 직접 개입할 주체라는 데 김 위원장의 합의를 이끌어낸 것이어서 앞으로 북미대화만 지켜보고만 있어서는 안될 근거이기도 하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도 최근 발간한 ‘정세와 정책’에 게재된 ‘2018년 북한의 대남‧대외정책 평가와 2019년 전망’이란 제목의 글에 “남북 정상이 다시 만나게 되면 9월 평양정상회담에서 합의하고도 진전을 보지 못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가 우선적으로 논의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김 위원장이 통 큰 협상을 진행하도록 남북미 고위급회담과 워킹그룹이나 남북 워킹그룹 구성이 필요하다”고 제안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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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사랑채 부근에 지난 7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악수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 설치돼 눈길을 끌고 있다./연합뉴스 |